<전라도문화수수께끼> 진안 만취정 ‘황룡오리출상원도’의 비밀
구례 산동의 용소에 다섯 마리 잉어를 놓아주자 승천하는 모습
전라도 관찰사 하연의 후손들이 진안 운교리에 만취정을 지어
| 2024. 03.21(목) 15: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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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은 본래 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사천(沙川)·기문화·두치강 등으로 불릴 정도로 고운 모래가 유명하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어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진안군 백운면 중심지에서 운계로를 따라 임실군 관촌면 방향으로 가다보면 섬진강 상류를 건너는 백마교(白馬橋)에 이른다. 이 다리에서 왼쪽 제방은 ‘진안고원길’의 한 구간으로 ‘삼계석문 천변길’이다.
백마교에서 500m 위치에 진안·무주 국가 지질공원의 한 곳인 진안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서면 강 건너 거대한 바위 절벽을 이룬 삼각주 퇴적층을 볼 수 있다. 이 퇴적층은 약 1억 년 전 자갈, 모래, 진흙 등이 쌓여 만들어진 진안층 퇴적암이라고 하는데 절벽 줄무늬(층리)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선상지 삼각주의 형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1억 년 전의 물의 흐르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지질자원이다.
삼각주 퇴적암 층리 바로 오른쪽 절벽에 소나무 몇 그루 사이로 정자 한 채가 보인다. 만취정((晩翠亭))이다. 정면 2칸과 측면 2칸의 원기둥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는 용머리 모양의 익공 (기둥에 익공이라는 부재를 넣은 양식)이 단촐하고 처마는 부연을 갖췄다. 전면에 만취정(晩翠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에 송객정(送客亭)이란 또 하나의 현판이 있다. 한 정자에 두 개의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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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안쪽에 민화 한 폭 걸려 있는데 거센 강물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다섯 마리의 잉어가 용으로 변신해 승천하는 모습이다. 황룡오리출상원도(黃龍五鯉出象源圖)라는 제목이 선명하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1609년에 발간한 <신옹부유책(神翁遺符冊)>에 이 민화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하연(1376~1353)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 하연이 1422년에 전라도 지방을 순시하는데, 구례 산동 지역에서 그의 꿈에 황룡이 나타나 자신의 다섯 아들을 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아랫사람이 5마리의 잉어를 찬거리로 잡아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례 산동의 용소에 놓아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 다시 그 황룡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관찰사 하연이 승천하는 용을 보고 싶다고 했다. 3일 후 용소에서 커다란 황용과 5마리의 잉어가 용으로 변신하여 승천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 그 장면을 민화로 재현한 것이 ‘황룡오리출상원도’이다.
<신옹부유책>에는 360년 이후에 하연의 후손 중에 오룡(五龍)이 탄생한다는 예언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후손 중에 시문(詩文)에 출중한 다섯 형제가 태어나 이곳에 만취정을 건립하고 우애를 나누었다는 역사적 설화가 있는 곳이다.
하연(河演, 1376~1453)은 조선 초기에 영의정을 지낸 문신이자 시인이다. 정몽주의 제자로 단종의 왕위 계승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단종의 폐위 이후 낙향하여 대대로 절의를 지키며 살았다.
만취정에 이름이 새겨진 다섯 형제 가운데 담락당(湛樂堂) 하립이 있다. 하립은 하연의 12대 후손으로, 여류시인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의 남편이다. 하립과 김삼의당은 부부 시인으로서 남원에서 태어나 진안 마령으로 옮겨 오래 살았다.
구례 산동의 용소를 배경으로 한 설화가 이곳 진안 백운면 만취정의 주제로 되살아난 까닭을 알 것도 같다. 만취정의 민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섬진강 상류의 빠른 강물을 배경으로 구례 산동 용소의 전설이 이곳에서 되살아난 것이 아닐까? 이곳 강물의 흐름에서 잉어가 황룡으로 변신하여 승천하는 장면이 상상된다. 섬진강 거센 강물은 큰 용 한 마리의 기세 좋은 용틀임이었다.
다시 전망대로 돌아와 삼각주 퇴적층 바위와 만취정을 바라보면 감물에 비친 운교리 퇴적층 바위에서 승천하는 거대한 황룡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만취정’과 ‘송객정’이라는 다른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뭘까? 아마도 구례 산동의 용소에서 다섯 마리 잉어를 강물에 풀어준 것을 ‘나그네를 환송한다’는 의미로 송객(送客)이라 했고, 하연의 후손들이 이곳에 만취정을 지어 별칭으로 송객정이라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진안 백운면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 1억 년의 지질 시대 역사를 간직한 지질 명소가 만취정 정자에서 만난 민화 속의 설화와 역사로 얽혀서 생명력 있는 지질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 오마이뉴스 이완우 기자 제공>
<문화通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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