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문화수수께끼> 순창 쌍치의 피노리(避老里)란 지명은 왜 붙여졌을까?
당파싸움이 심할 때 노론들의 횡포를 피해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고려 충숙왕 때 순창임씨들이 기거했고 이후 목씨들이 들어와 형성
| 2023. 09.13(수) 09: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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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피노(避老) 내동(內洞) 상동(上洞)과 함께 금성리에 속했고 1971년 행정 분리로 피노, 내동, 신촌 3개 행정동으로 분리되었다. 옛날에는 하치동방의 소재지로서 일찍부터 이 부근에 여러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동학혁명을 일으킨 녹두장군 피체지로 유명한 마을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전봉준 장군의 피체(被逮) 유래비를 비롯 전봉관 관이 세워져 있다.
1897년 하치등방이 하치등면으로 바뀌면서 소재지가 되었으며 5일장이 있었다. 이곳은 담양·광주에서 전라감영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지로 객주집과 여각이 많았다. 시장거리에서 통시암골 안에 10리 길은 비를 맞지 않고 처마 끝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큰마을이었다. 통시암골에 헌병대와 양조장이 있었으며 가운데쯤에 면사무소와 김곡초등학교, 소방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피노라는 지명은 어째서 붙여졌을까?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조선조 중엽 노론과 소론의 당쟁 속에서 노론을 피하여 목씨(睦氏)들이 들어와 살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물론 그보다 오래전인 고려 충숙왕 때 하치등방(下置等坊)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미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근거로는 순창임씨는 임연(林演)의 아들 중연(仲沇)이 고려말 충숙왕 때 우상시(右常侍)·밀직부사·첨의찬성사가 되어 순창군에 봉해졌고 그의 아들 선미(先味)는 태학사(太學士)로서 퇴폐한 예법과 세속을 바로잡는 데 힘쓰다가 고려가 망하자 은거하여 두문동(杜門洞) 72현(賢)으로 일컬어진다. 순창임씨는 평택임씨의 한 갈래다.
여기서 잠시 조선조의 당파싸움에 관해 살펴보자.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면서 송시열 송준길 등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으나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한다. 노론의 거두는 송시열, 소론의 거두는 윤증이다. 영조가 집권하면서 다시 노론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사도세자의 죽음을 계기로 시파(時派), 벽파(僻派)로 나뉘는데 사도세자를 동정하는 파를 시파, 영조의 처사를 옹호하는 파를 벽파로 부른다. 벽파는 노론계이며 시파는 남인과 소론계를 일컫는다.
시파와 벽파의 대립은 소론·노론의 대립으로 번져 심화 되었다. 영조 말에는 영조 즉위에 공이 많은 노론의 벽파가 우세했으나, 정조 때에는 장헌세자를 동정한 소론인 시파가 득세하였다. 그 뒤 순조 때에는 다시 벽파가 정권을 잡았다. 1801년(순조 1)의 신유박해(辛酉迫害)를 계기로 시파인 소론과 이에 동조한 남인 세력은 몰락하고 노론 독주 시대가 조선 말기까지 지속되었다.
목씨들이 이곳으로 들어온 것은 경종 1~2년에 발생한 신임사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신임사화란 신축년(辛丑年)과 임인년(壬寅年)에 일어난 사화라는 뜻이다. 이 사건은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 사이의 당파싸움에서 소론이 노론을 역모(逆謀)로 몰아 소론이 실권을 잡은 사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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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말년에 소론은 세자인 균(₁ : 뒤의 경종)을 지지했으며, 노론은 연잉군(延?君 : 뒤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이후 소론은 경종 보호의 명분을 더욱 확고히 하였고 노론은 연잉군 추대의 의리로 맞서 이후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경종은 자식이 없고 병약하다는 이유로 노론에서는 왕위 계승자로 연잉군의 책봉을 관철하였다.이에 소론에서는 과격파인 사직(司直) 김일경(金一鏡)을 우두머리로 한 7인이 노론 4대신 ‘왕권교체를 기도한 역모’라고 공격하는 소를 올려 소론 정권으로 교체되는 환국이 단행되었다.
소론의 강경론자들이 노론의 과격한 처단을 요구하고 있을 때 목호룡(睦虎龍)은 노론 측에서 경종을 시해하고자 모의했다는 고변을 올리게 되는데 이 고변에 의해 국청(鞫廳)이 설치되고 역모에 관련된 자들이 잡혀서 처단되는 대옥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경종이 재위 4년만에 죽고 세제인 영조가 즉위하자, 임인옥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일경과 목호룡은 처단되었고, 임인옥안(壬寅獄案)은 번안(飜案 : 안건을 뒤집어 놓음)되었다.
여기에 목호룡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후손들이 피노리로 들어와 정착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현지사 간, 순창의 지명고 참고>
한편, 이곳 피노리는 동학을 이끈 전봉준 장군이 체포된 곳이다. 전봉준 장군은 1894년 4월 28일 전주 감영에 입성하고 열강인 일본·청국의 간섭기라 잠시 쉬었다,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승리하자 일본의 내정간섭을 분쇄코자 동학군이 서울로 북상, 10월 21일 천안 목천의 세성전투에서 관군 (김홍집 내각)과 왜군의 연합군에 의해 공주 우금치 대작전이 실패하자 계룡산으로 피신했다.
전봉준은 며칠 후 심복 동지 11명을 데리고 순창 접주 오동호 (吳東昊)의 안내로 그의 누이의 집인 피노리 골방에 은신했고 나머지는 다른 빈집에 은거했다. 그런데 전봉준 장군이 갑자기 신열이 나고 병을 앓아 다음 날 심복인 김경천(金敬天)에게 약도 짓고 세상 물정도 탐지해오라고 내보냈는데 그가 변심하여 밀고한 것이다.
김경천이 약방을 찾아가는 길에 ‘현상금 천냥’이라는 방을 보고는 약을 지어다 주고 자기 집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나가 불량배 한선교 외 7~8명을 동원해 관에 고발한 것이다. 12월 2일 눈이 내리는 밤에 도인을 해치고 전장군의 왼쪽다리를 칼로 찔러 관군과 함께 포박하여 압송하고 이웃 마을에 있던 박남치, 김대성은 피신했으나 총살을 당하게 된다.
고발자 김경천은 정읍출신으로 장성군 이방(吏房)에 재직 중 동학군이 장성 점령시 입교하여 음성으로 전장군이 두터운 신임을 받던 사람이다. 관군에 의하여 서울로 압송된 정봉준은 이듬해 3월 29일 손화중(孫華中) 최경희(崔景喜) 성두한(成斗漢) 김덕명(金德明) 동지와 함께 교수형으로 사라졌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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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정봉준 관에는 장군의 일대기를 소개한 기념관과 기념비, 동상, 초가집 등으로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순창군이 운영하는 체험관도 마련되어 있다, 피체지 유래비에는 ‘새로운 역사를 열고자했던 혁명의 중심에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항거한 전봉준 장군의 뜻을 기리고자 삼가 이 비를 세운다.’고 씌여 있다.
한편 피노리에는 이후 서산유씨(瑞山柳氏)도 많이 살았는데 특히 부자가 많았다고 전한다. 한말 유영복이 34세에 죽자 그 부인 기노영이 과부로서 3,000석의 거부로 재산을 증식하여 피노리 ‘유과부’ 하면 순창과 정읍 태인 전남 당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한기(李漢基) 전 감사원장이 그의 사위다.
또한 유장열 부인도 당대 1,000석의 재산을 증식했고 순창농고를 설립한 김영무(金永武)도 이곳 출신으로 이 마을에서 8대 부자 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문화通 취재팀>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