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祐含칼럼> 현산 김두원 박사를 그리워함
| 2021. 03.18(목) 09: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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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날에도 저렇게 눈이 올까
그리고 저 그리운 얼굴들이 저렇게 모일까
마지막 하직이 끝나면
꼭 오늘처럼 술잔을 나누고 저렇게 돌아가겠지
아내나 자식들은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모든 산자락을 넘어서 돌아가겠지
길게 길게 열을 지어 기러기처럼 돌아가겠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그 날처럼
꼭 그날처럼 다시 살아가겠지
일흔 살 늦깎이로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던 최병우 시인의 ‘내가 죽는 날에도 저렇게 모일까’의 마지막 연이다. 老시인은 친구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며 느낀 감회를 읊은 듯하다.
지난 한 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세계인의 가슴속에 많은 감동을 주었던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삼성 이건희 회장, 국내적으로 저명인사는 아니지만 지역의 예술인들을 많이 사랑했던 현산 김두원 박사. 그들의 생애를 다시 떠올려보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인간의 생사야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특별히 의사의 죽음은 어떤 절망감 같은 것을 안겨준다. 더 이상의 기대감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현산 김두원 박사. 설을 며칠 앞두고 85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해남 현산면 출신이어서 현산(玄山)이란 호를 썼던 김두원 박사는 일찍이 불로동에 김두원 신경외과를 개원해 인술을 펼친 의사였다. 그러나 그보다 한 사람의 예술가를 많이 사랑했고 그가 속했던 예술그룹을 오래도록 후원했던 메세나 운동가였다. ‘금남로 로맨티스트’ 임춘평 선생이 예술인들과 잘 어울리는 외향적 후원자였다면 현산 선생은 조용히 용기를 북돋는 따스한 분이었다.
현산은 젊은 시절 ‘코라아 환타지’ 로 유명한 비구상화가 최종섭을 만났고 비구상 외길을 걷다가 5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난 그를 끝까지 사랑했다. 특히 국내 3대 비구상 그룹인 에뽀끄의 후원자로서 병원 1층에 현산갤러리를 열어 작가를 후원하고 현산문화상을 제정하는 등 예술인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김두원 박사는 최종섭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한동안 정신적 충격으로 힘들어했는데 이 무렵 광주일보 문화부장이던 필자를 만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현산갤러리의 문을 닫고 현산문화상도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했다. 1년에 최소한 3천여만 원의 고정비가 들어가는데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것. 생각해보면 무모한 제안이었는데 1년의 비용만 후원해주시면 에뽀끄 스스로 일어서도록 해보겠다고 했더니 앉은 자리에서 3천만 원짜리 수표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에뽀끄 회원들과 논의를 거쳐 예술의 거리에 현산갤러리를 열어 에뽀끄 활동을 지원했다. 선생의 숭고한 뜻에 감동한 전남통신 김성용 사장이 자신 1천만원을 보태 전세금 4천만원을 내어주고 갤러리를 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하여 현산갤러리가 불로동시대를 마감하고 예술의 거리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현산 선생의 후원금은 훗날 사단법인 설립기금으로 전환돼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선생은 생전 에뽀끄 활동이 시들해지자 누구 보다 안타까워했다. 1년여 전 광주 매월동 목담갤러리에서 에뽀끄 창립 55주년이 기념전이 열렸을 때 불편한 걸음으로 오셔서 축사해주시던 후덕한 모습이 마지막이 된셈이다.
사후에도 선생의 유언에 따라 모교인 전남대학교에 1억원의 장학금이 전달되었고 전한다. 불교신도회장 시절 후원했던 능인회관에는 그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승을 떠난지 며칠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당신이 그립다. 생전 그토록 좋아하던 최종섭 아우를 만나 정종이라도 한잔 하고 계신지 ….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