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주(惜呑酒)를 아십니까?
“그 맛이 어찌 좋은지 삼키는 것 자체가 애석하다는 술”
담양 장화리 홍주 송씨 종가에서 400년간 이어져온 전통주
| 2017. 12.20(수) 13: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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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도 없이 마시는 술이라 금방 취기가 올라왔지만 그래도 목 넘김이 예사치 않고 저기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기운이 가슴을 적시더니 얼굴까지 퍼져 올라 태백의 흥취가 느껴진다.
석탄주는 애석할 석(惜)자와 삼킬 탄(呑)자를 쓴다. 그야말로 그 맛이 어찌 좋은지 삼키는 것 자체가 애석하다는 뜻이다. 약간은 허풍(?)이 붙었겠지만 나름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자초지종을 물었다.
“한 400년은 된 것 같습니다. 석탄주는 우리 홍주 송씨 가문에서 대대로 가주(家酒)로 빚었던 술입니다. 저까지 12대를 이어왔으니 한 400년은 족히 되었고 저는 제 할머니가 써놓으신 방법 그대로 술을 만들고 있습니다.”
홍주 송씨 12대 종손 송영종(宋泳宗. 70)씨의 답변이다. 젊어서는 도회지에 나가 살다가 15년전 귀향하여 살고 있다. 본채는 150년이 되었고 사랑채는 100년이 되었는데 조선후기의 전통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좋은 집이다.
집터는 600여 평이고 뒤쪽으로 대나무 숲이 2만여 평 둘러 있으니 정다운 친구들과 하룻밤쯤 묵고 싶은 집이다. 집주인이 지은 당호(堂號)도 멋스럽다. 이름 하여 하심당(下心堂)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워놓고 사는 집이라는 뜻인데 그런 그를 주위사람은 송처사(宋處士)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본디 처사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 선비를 일컬었다고 하는데 품새로 보아 벼슬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호남가 한수를 쭉 뽑더니 단소를 꺼내 입술에 문다. 사설이 긴 것은 순전히 취기 때문이다.
술 빚는 법을 물었다.
재료라고 들어가는 것은 쌀과 누룩 찹쌀과 물이 전부다. 그러나 찹쌀이 주재로다.
먼저 백미 1되를 빻아서 죽을 쑨다. 죽을 식힌 뒤 누룩 2되를 섞고 여기에 물 4되를 끓여서 붓는다. 3일간 발효시키면 모주(母酒)가 되는데 모주는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뿌옇게 걸러낸 밑술이다. 탁주라고도 부르는데 인목대비의 어머니인 노씨부인이 광해군 때 제주도로 귀양가서 술지게미를 재탕한 막걸리를 만들어 섬사람에게 팔았다고 한다. 왕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는 뜻의 대비모주라 부르다가 나중에 모주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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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석탄주로 돌아가자. 밑술을 만든 뒤 찹쌀 20㎏을 잘 씻어 꼬두밥을 만든다. 보통 1시간 30분가량 찌는데 30분간 식힌 뒤 꼬두밥과 모주를 섞어 항아리에 붓고 뚜껑을 덮어 천으로 감싼다. 먼저 물을 붓지 않고 발효시키는 건발효 방법으로 술을 빚는다. 방의 온도는 30도쯤 유지하는데 하루가 지나면 항아리 표면의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간다. 3일이 지나면 열을 식힌 뒤 끓인 물 8되를 붓는데 약 20ℓ(800㎜ 30병) 정도가 만들어진다. 한 병에 15,000원이다.
“수없이 술을 빚었지만 그때마다 술맛이 다릅니다. 시기에 따라, 날씨에 따라 술맛이 다르니 레시피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름대로의 감(感)이 노하우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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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처사는 여름에는 술을 빚을 수 없다고 말한다. 습도나 기온 때문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석탄주는 멥쌀로 만든 밑술에 찹쌀로 덧술하여 만든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석탄주에 관한 기록은 ‘임원경제지’ ‘양주방’ ‘음식방문’ ‘술방문’ 등에 기록되어 있다. ‘임원경제지’와 ‘음식방문’에 제조법까지 자세히 나와 있는 족보가 있는 술이다.
400년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홍주 송씨의 관향인 홍주는 지금의 충청도 홍성이다. 시조 송계(宋桂)가 고려 말 시중(侍中)을 지내고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가 홍주에서 생을 마침으로써 관향이 되었다. 담양의 홍주 송씨 중시조는 송평(宋枰)으로 조선시대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와 세작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 등을 지내고, 전라남도 담양군에 이거(移居)하였다고 한다.
하심당이 있는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는 홍주 송씨가 자작일촌했던 마을로 ‘미암일기’의 저자로 유명한 유희춘(1513~1577)의 아내 송덕봉이 태어난 곳이다. 송덕봉은 (1521~1578)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조선최초의 여성문집인 ‘덕봉집’을 남긴 선각자이자 ‘표해록’의 저자 최부 (1454~ 1504)의 외손자 며느리다.
이곳 장화리 장전은 장전 이씨로 불리는 전주이씨들의 세거지로도 유명하다. 이는 양녕대군의 증손자 이서(1484~?)가 담양으로 유배를 왔다가 14년 만에 풀렸으나 귀경하지 않고 대덕면 등갈리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 서가 담양으로 유배를 온 것은 대사성 이과, 하원수 이찬, 병조정랑 윤규수, 내금위패두 김장, 손유 등이 중종을 몰아내고 견성군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하다가 서인인 노영손의 고변으로 탄로가 났기 때문이다.
이씨들이 장전으로 들어온 것은 이 서의 10세손 형정 (1684~1752) 입촌하면서 부터다. 이후 장전 이씨와 홍주 송씨가 혼맥을 형성하면서 궁중의 비법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석탄주 원래의 비법은 장전 이씨 가문에서 비롯되어 홍주 송씨 가문으로 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어찌되었던 석탄주는 홍주 송씨들, 특히 종가를 중심으로 대대로 명절이나 제삿날 제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윗대 할머니가 적어둔 제조법이 지금도 전해지기는 하나 12대손 송처사가 사용하는 레시피는 어머니 김필신(영광 김씨)가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물론 석탄주는 조선의 3대 명주나 5대 명주에 드는 것은 아니다. 흔히 조선의 3대명주를 일컬어 이강주, 감홍로, 죽력고 등을 꼽는데 이들 명주들은 비교적 널리 전승이 된 것이고 석탄주 같은 것은 그 집안에서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름을 얻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전주의 이강주는 배, 울금, 계피, 꿀 등을 섞어 만든 증류주이고 죽력고는 대나무를 쪼개 삶아 나온 액체에 쌀과 약재를 넣어 증류시킨 술이다. 감홍로는 제조법은 비슷하나 깔이 붉고 한약재 냄새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술방을 나와 가을뜨락을 둘러보는데 송처사가 여섯가지 보물이 있다고 자랑한다.
둘째는 한옥, 셋째 집뒤란에서 흘러내리는 폭포, 네 번째가 연리목 (박달나무+ 푸조나무) 그리고 400년 전통의 석탄주가 5호, 6호는 120년생 홍매(紅梅)다. 홍매화가 필 때는 매화향기가 600평 집안에 가득하다. 1호가 무엇이냐고 묻자 ‘마누라’라고 말한다.
송씨는 안채에서 살면서 사랑채를 민박체험 공간으로 제공하는데 하심당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꼭 ‘1호’에 대해 부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신은 인생의 보물을 찾는데 30년이 걸렸는데 젊은이들은 지금 인생이 보물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는 남자나 여자가 따로 없다. 배우자가 곧 ‘인생의 1호 보물’이라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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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보물이라고 자랑하는 연리목(連理木)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 나오는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땅에서는 서로 가지를 맞대고 사는 연리가 되고,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는 두 날개를 맞대고 날아가자”는 뜻의 영원한 사랑을 일컫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연리지나 연리목은 같은 나무가 하나로 합해지는데 이곳은 박달나무와 푸조나무가 하나로 합해진 경우여서 특이하다.
가을철이라 폭포는 내리지 않았지만 술방 뒤쪽 언덕에서 내려오는 폭포의 흔적을 보니 몸이 벌써 써늘해져온다.
취재진을 내바람하기 위해 사립까지 따라온 송씨는 이런 말로 작별을 고했다.
“내가 잘살기 위해 석탄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을 사람들이 석탄주 하나만으로 잘 살게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1차로 담양군의 지원으로 술방을 만들었고 이제 동네사람들과 마을기업을 만들어 석탄주를 한국의 명주로 살려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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