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함칼럼> 타락한 공모전, 숨기고 싶은 경력

2016. 06.30(목) 22:00

서양화가 양인옥 선생이 생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서예가 평보 서희환이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을 때 목포의 지역신문이 호외를 발행했다는 것이다. 호외까지는 아니더라도 1970년대 초까지는 도하의 신문들이 수상자 명단을 앞 다퉈 게재했다. 국전의 위력이 대단했다. 대통령상이나 국무총리상, 문공부장관상을 받으면 화가로서 출세를 보장받을 정도였다. 특선만 해도 요즈음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 같이 시중의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지역에서 특선한 사람이 많아야 2~3명밖에 안되었다. 특선이나 입선만 해도 그림 값부터 달라졌다. 추천·초대작가나 심사위원이 되면 또 한 차례 격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공모전의 역사는 1922년 일제치하에서 만들어진 조선미술전람회가 처음이다. 이후 1932년 조선서도전이 생겼다.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조선서도전 출신으로 서단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국전으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1952년에 창설돼 1980년 29회로 막을 내렸다. 국전 후신으로 생겨난 것이 한국미술협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미술대전 경력을 국전으로 표기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틀리다. 국전이 국가에서 주관하는 것이었다면 미술대전은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민전이란 것도 다르다.

국전이 없어진 배경에는 국전 말기에 ‘제자 챙기기’나 금품수수 등의 나쁜 관행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협회가 중심이 돼 스스로 공모전을 정화하도록 했는데 부패의 정도가 도를 넘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공모전을 주관한 사람들이 구속되거나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일쑤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심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심사를 한다는 것이다.

지역공모전의 경우는 더욱 가관이다. 특히 최근에는 1인당 2점씩 출품이 가능한데다 입상률이 60~70%에 이른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2점 가운데 한 점은 입상이 되는 셈이다. 심지어 학원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작품을 15점 이상 출품하면 심사위원을 시켜 줄 정도로 타락(?)했다. 예심을 해놓고 나면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특선률도 20, 30%가 넘는다. 몇 년 만 꾸준히 출품하면 대부분 추천·초대작가 지정을 받는다.

공모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실력 있는 미술인들은 기업이나 미술관이 운영하는 대회로 발길을 돌린다. 비교적 심사가 공정하고 사후관리도 잘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국공립미술관이나 기업이 운영하는 레지던시를 통해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보니 공모전은 대학생이나 아마추어 작가들의 ‘경력을 채우기’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우는 다르지만 최근 불거진 조영남의 ‘대작(代作)파동’처럼 공모전에서 가필 정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심사위원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은 구전에 속한다.

이런 부작용이 문제가 되면서 유명작가들이 공모전 경력을 감추는 사태로 발전했다. 중요한 개인전이나 비중 있는 미술관 초대전, 해외교류전, 아트페어 등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생략한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경력이나 특·입선 경력은 물론 지역공모전 추천·초대작가 경력은 아예 빼버린다.

무엇이 공모전 입상경력을 감추게 하는가. 자랑스러워야 할 상이 부끄러운 상으로 전락한 것은 누구 때문인가. 이쯤 되면 국가나 지방지차단체가 지원하는 공모전은 폐지를 검토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지형원<문화통 발행인>

지형원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