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두 얼굴의 왈츠
국립오페라극장 주회 무도회 ‘오펀 발’ 국영방송에서 생중계
말쑥한 차림의 신사숙녀 수백쌍이 왈츠를 추는 모습에 넋 잃어
| 2016. 03.17(목) 12: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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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가 생겨난 빈에서는 지금까지도 왈츠를 추는 무도회가 연중 큰 행사로 자리한다. 매년 2월이면 빈에서만 천 개가 넘는 무도회가 열린다. 수많은 무도회 중 규모로는 국영방송에서 중계까지 해주는 빈 국립오페라극장 주최의 무도회 ‘오펀 발 (Opernball,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리는 무도회)’이 당연 압권이다.
올해에는 플라시도 도밍고 (파바로티, 카레라스와 함께 3대 테너로 활동했다가 지금은 바리톤으로 전향하여 75세의 나이에도 전 세계 무대에서 오페라 가수로 종횡무진 중이다.)가 축하 무대에서 레하르(F.Leha�r)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Lustige Witwe)’에 나오는 아리아 ‘오, 나의 조국(O, Vaterland)’과 소프라노와 듀엣으로 ‘입술은 침묵하고(Lippen schweigen)’를 부르며 왈츠를 선보였다.
왈츠를 추는 무도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오래된 문화를 지켜오는 고집스럽고 보수적이고 융통성이 없기까지 한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성향이 첫 번째 이유고, 전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호사를 누리던 나라가 지금은 국제 사회에서 그리 크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기에 옛 영광의 빛줄기를 자꾸 떠올리고 싶은 마음이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귀족 문화를 부추기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이런 무도회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문화로서 지혜롭게 지켜나가는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인들의 숙제일 듯하다.
왈츠는 아름답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수 백 쌍의 신사숙녀들이 빙그르르 돌면서 왈츠를 추는 모습은 넋을 놓게 만든다. 음악가들은 왈츠를 추기 위해 음악을 쓰기도 했고, 왈츠를 추는 모습에 반해 음악을 쓰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에서 왈츠 선율을 이용한 작곡가도 있었는데 바로 프랑스 작곡가 라벨(M.Ravel)이었다. 그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되어버린 빈에서 떠올렸던 것은 전쟁과 가장 반대되는 이미지인 왈츠였다. 라벨이 작곡한 ‘라 발스(La Valse, 프랑스어로 왈츠)’는 왈츠 음악이 흐르는 아름답던 곳이 전쟁 상처로 해괴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대적 거울이 되었다. 라벨이 왈츠를 주제로 택한 것은 단지 왈츠에 영감을 받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라벨에게도 왈츠는 찬란한 시간, 화려하고 멋진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회상과 아름다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망가진 왈츠 음률을 통해 아픔을 극대화해서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왈츠의 한쪽은 치명적인 매혹이고 한쪽은 과거의 망상인 양날의 검 같다. 물론 한 나라의 문화에서 멀리 떨어져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무딘 검의 날이 될 수도 있겠다. 판단은 모두의 몫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한번쯤은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인지 들여다 볼 가치는 충분히 있을 것 같다. 빈에서 봄날의 꽃처럼 만개한 왈츠의 모습을 전하며...
글: 박승유 사진 : Georg Hochmuth
박승유 통신원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