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祐含칼럼> 詩碑를 닦는 詩人
| 2021. 10.05(화) 1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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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장지덕 목장지패(人長之德 木長之敗)’라는 말이 있다. 큰사람 밑에 있으면 덕을 보지만 큰 나무 아래 있는 나무는 피해를 본다는 말이다. 요즘 세상에 빗대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라피도 피라 같은 식물은 끝없는 자기희생을 통해 공존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요즘 큰 사람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끝없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쓰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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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정치인뿐 이겠는가. 예술인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자기를 내어놓을 줄 모 르고 ‘내가 최고’라는 의식에 취해 살아가는 듯하다. 특히 언어를 통해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는 문학인들은 아름답고 풍성한 언어의 성찬(盛饌)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데 밥상에 앉아보면 실망할 때가 많다.
필자는 가끔 마음이 스산할 때면 광주 사직공원에 오르곤 한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선 도심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숲길이 있고 전망대에 오르면 광주 시내를 한쪽이라도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다. 특히 별이 빛나는 밤에 내려다보는 광주시가지는 생각보다 아름답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래 가운데 사직공원이나 광주공원에 얽힌 추억 하나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사직공원을 오를 때마다 정말로 언짢은 것들과 만나게 된다. 숲속에 가려진 시비를 볼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땅에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 아름다운 말의 성찬을 퍼붓는 시인들이 선배들의 시비를 저리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이다.
사직공원에는 모두 12기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를 비롯해 눌재 박상, 면앙정 송순, 백호 임제, 충무공 이순신, 충장공 김덕령, 금남 정충신, ‘봄비’의 이수복 시인 등이다. 시비를 세울 당시에는 나름대로 좋은 위치를 골라 세웠을 것이지만 나무가 자라면서 숲에 가리고 길가에 있어도 글씨가 퇴색되거나 닳아서 내용을 알아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참으로 언짢고 기분이 나빠 시비 앞에 길을 멈추고 섰다. 손수건을 꺼내 시비 앞면을 닦아보지만 좀처럼 태가 나지 않았다. 되돌아오면서 광주에서 문학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등단했거나 동인 활동을 하는 사람을 더하면 2천여 명쯤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많은 문학인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시비를 관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시인 협회나 문인협회 같은 데서 한나절쯤 잡아 ‘시비 닦는 날’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
“시비를 닦은 시인들” 근사한 신문의 표제가 되고도 남을 것 같다. 진정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거대한 아시아문화전당이 아니라 문화의 물결이 골목골목 스밀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문화는 도시의 영혼이라고 했다.
선배들의 시비를 후배들이 닦고 그 후배들의 시비를 그다음 후배들이 닦은 아름다운 광주, 마치 보르네오섬에서 자생하는 라피도 피라 나무처럼 아래까지 햇볕을 내려주는 광주, 그래서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래오래 전해지기를 광주가 되기를 기대한다. 시를 쓰는 시인, 아니 시비를 닦은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형원 <문화통 발행인>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