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명작, 그 사연 / 새를 소재로 한 음악

“백조는 죽기 직전 일생에 단 한번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프리마 돈나의 고별독창회나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 ‘백조의 노래’

2016. 03.18(금) 17:46

안 철 칼럼니스트

새가 새가 날아든다 온갖 새가 날아든다/ 남명에 대붕새야 오동잎에 봉황새야 /상사병에 기러기야 고국 찾는 접동새야/ 짝을 지어 원앙새야 배 띄우는 갈매기야/에루후아 좋고 좋다 봄이로다 봄이로다/ 에루후아 좋고 좋다 봄이로다 봄이로다/ 야아 삼천리강산에 새 소식 왔다고/창천에도 펄럭펄럭 창파에도 펄럭펄럭

새가 새가 노래한다 무슨 새가 노래하나/ 종달새 비비배배 부엉새 부엉부엉/ 비둘기는 구굴구굴 딱따구린 딱따르르/ 뻐꾹새는 뻐꾹뻐꾹 꾀꼴새는 꾀꼴꾀꼴/ 에루후아 좋고좋다 봄이로다 봄이로다/ 에루후아 좋고좋다 봄이로다 봄이로다/ 야아 삼천리강산에 새 소식 왔다고/ 숲에서도 딩둥댕둥 들에서도 딩둥댕둥

이 시는 박희경이 조두남이 곡을 붙인 ‘새타령’이다. 이 시에는 12가지 새가 등장한다. 좋고 좋은 봄이 되니 온갖 새들도 새 소식을 전하며 날아든다고 노래하고 있다. 예로부터 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혼의 모습으로 간주되어 신의 사자(使者)이거나 저승의 사자로 간주되어 왔다. 또 하늘과 땅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자유’의 상징인 영물로 여겨졌다.

“새는 자유를 상징하는 영물(靈物)로 인식”

한편 새소리는 자연의 소리 중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 할 수 있다. 중세 교회음악을 집대성한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대한 전설이 말해주듯 새는 ‘조물주의 신성한 음악을 인간에게 계시해주는 영물’이었다. 새의 지저귐을 ‘운다’라고 표현한 우리 조상들과는 달리 서양인들은 새가 ‘노래한다’라고 여겼다.

그런데 사실 새는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소리를 내는데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에게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한다.
새의 노래 소리에 매력을 느낀 서양에서는 9세기 초 ‘버드 오르간(bird organ)’이란 새소리를 내는 악기를 고안해내는 등 새의 소리를 음악화 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15세기 초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작곡가 클레망 잔느캥에서 20세기의 올리비에 메시앙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들이 새를 소재로 한 음악을 작곡해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몇 곡을 살펴보기로 한다.

비발디의 ‘사계’ 제1악장 방울새 소리로 봄을 연상시켜

안토니오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는 500곡이 넘는 다양한 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그중 바이올린 협주곡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플루트 협주곡도 10여곡이나 된다. 그 가운데 생전에 다름슈타트에서 출판된 작품번호 10의 6곡 중 제3번 '방울새'는 그가 확립한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악장에서 플루트가 매력적인 방울새의 소리를 묘사하여 정묘한 오케스트라 반주가 곁들여져 그의 대표작 <사계> 중 ‘봄’을 연상시킨다.

제2악장은 제1악장의 새소리를 발전시켜 쳄발로 반주에 실린 플루트가 아름다운 시칠리아노(다소 느린 시칠리아의 춤곡)를 연주하고 마지막 악장에서는 플루트뿐만 아니라 제1바이올린에 의한 새소리가 대조적으로 나와 신선하고 활기에 넘친 음악을 들려준다.

프란츠 요셉 하이든

교향곡과 현악4중주 장르를 완성하고 많은 작품을 남긴 프란츠 요셉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의 현악중주 작품 64-5 장조 ‘종달새’는 곡 전체가 밝고 명랑하여 화창한 봄을 느끼게 한다. 동경과 갈망의 계절로서 봄의 기상을 드높게 노래하며 종달새와 함께 우리의 소망을 푸르른 창공까지 치솟게 하는 열락(悅樂)의 노래이다.

제1악장의 제1주제 가락과 제4악장의 무궁동적(無窮動的) 음형은 종달새의 모습과 그 비상을 보여주고, 제2악장의 조용하고도 달콤하고 풍부한 가락과 제3악장의 강건하고 자신만만한 미뉴에트도 또 다른 봄의 활기찬 모습을 전해준다. 봄과 종달새의 멋진 어울림인데 다음 곡에서도 이를 확인한다.

에드워드 엘가를 이은 현대 영국의 대표적 작곡가로 영국의 민요채집과 연구에 몰두하고 또한 영국의 음악사와 고대 영국음악 연구하여 이를 자신의 작품에 활용한영국의 대표적 국민주의 작곡가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날아오르는 종달새’는 조지 메레디스(George Meredith, 1828~1909)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악보의 시작 부분에 다음의 시구가 적혀있다.

랄프 본 윌리엄스

종달새는 날아올라 원을 그리다가/소리의 은빛 고리를 떨어뜨려/ 쉼 없이 연결시키네/지저귀며 울며 나지막이 노래하며
하늘이 가득할 때까지/그가 주입시키는 땅의 사랑을 노래하네/ 날갯짓 치며 솟아 날아오르면/우리의 계곡은 종달새의 황금 잔
포도주가 넘쳐흘러/우리도 함께 떠오른다네

대기의 고리가 빛 속에서 사라지면/그 때 환상이 노래하리라

약 15분 길이의 이 곡은 영국의 호반시인처럼 영국의 전원 풍경에 매료된 그가 고향 글로스터셔주(잉글랜드 남서부의 주) 전원의 아름다움에 몰입한 시정을 바탕으로 작곡한 목가적 서정성을 높게 승화시킨 작품이다. 기교적인 바이올린과 카덴차 부분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종달새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단순한 형식이라서 선율미가 더욱 돋보인다. 또한 이곡은 1차 대전의 폭풍의 와중에 사라진 영국의 평화스러운 풍경과 존재를 기리고 아쉬워함이 담겨있기도 하다. 또 이곡은 김연아 선수가 2006~7 시즌에 프리스케이팅 작품 곡으로 사용하여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메시앙은 틈만나면 야외에 나가 새소리를 악보에 담아

“새처럼 훌륭한 작곡 선생은 없다”고 말한 폴 뒤카(Paul Dukas, 1866~1935)의 제자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92)은 어렸을 때부터 새소리를 매우 좋아했고 틈만 나면 야외에 나가 새소리를 악보에 담았다.

올리비에 메시앙

새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 프랑스 조류학회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새들의 심연>, <새의 박물지>, <이국정취의 새들>, <새들의 아침인사> 등의 작품을 남겼다. 새를 가리켜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음악가”라고 말한 그에게 새소리는 단순한 음악적 장식물이 아니라 음악세계의 근본을 형성하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3시간에 달하는 피아노곡집 <새의 박물지>에는 ‘알프스 까마귀’, ‘꾀꼬리’, ‘푸른 지빠귀’, ‘지중해의 검은 딱새’, ‘숲 올빼미’, ‘황무지종달새’, ‘개개비’, ‘발가락이 짧은 종달새’, ‘비단 개개비’, ‘바위지빠귀’, ‘말똥가리’, ‘장례검은딱새’, ‘큰 마도요’ 등 무려 13종의 새가 나오고, ‘정원 꾀꼬리’로 마무리한다.

1956년 10월에 착수해 1958년 9월 1일에 완성했는데, 1959년 4월 15일 파리에서 초연한 피아니스트 이본 로리오(Yvonne Loriod, 1924~2010)와 모델이 된 새들에게 이 작품을 바쳤다. 로리오에 대한 메시앙의 사랑의 번민이 언어의 유희로 숨어있을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이본 로리오는 1961년 메시앙과 결혼한다.

지그프리트 옥스

독일의 지휘자이며 작곡가였던 지크프리트 오크스(Siegfried Ochs, 1858~1929)는 ‘새가 날아오네 변주곡('S kommt ein Vogel geflogen)’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관현악곡을 작곡했는데 이는 독일 민요를 주제로 삼아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한 변주곡이다. 주제에 이어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쇼팽, 요한 슈트라우스, 베르디, 슈만, 브람스, 마이어베어, 구노, 바그너 등 11명의 작곡 스타일을 따서 같은 멜로디를 변주하고 마지막에는 군대 행진곡풍 마무리 한 것이다. 그는 단순한 패러디가 아닌 각 작곡가의 장기 즉 하이든은 현악4중주, 쇼팽은 피아노를 곁들인 마주르카, 요한 슈트라우스는 왈츠, 베르디는 오페라의 행진곡, 브람스는 그의 ‘자장가’풍이며, 바그너는 트럼펫 트롬본 등 금관이 화려하게 나오는 <탄호이저>의 서곡을 연상시킨다.

백조는 죽기 직전 일생에 단 한번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프리마 돈나의 고별 독창회나 작곡가의 마지막 작품을 가리켜 ‘백조의 노래’라 하는데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가 남긴 마지막 가곡집이 바로 <백조의 노래>란 타이틀로 14곡이 한데 묶인 작품이다. 이 중 ‘세레나데’가 유명하며, 마지막 곡인 ‘비둘기 통신’은 자이들(Johann Gabriel Seidl, 1804~1875)의 시를 사용하여 작곡한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지는데 연인에게 편지를 전달해 주는 비둘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새와 관련된 곡이라 볼 수도 있다.

가그린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그 외에도 새를 소재로 한 음악은 다음과 같다.
* 르네상스 시기 프랑스 작곡가 클레망 잔느캥 (Cle′ment Janequinc, 1485~1558)의 ‘새들의 노래’
* 르네상스 후기와 바로크 전기의 이탈리아 작곡가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1643)의 ‘뻐꾸기 주제에 의한 카프리치오’
* 당대에는 J. S. 바흐보다 더 유명한 작곡가였던 독일의 게오르크 필립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의 ‘나이팅게일 아리아’와 아끼던 카나리가 고양이에게 죽임을 당해 가슴 아파하는 희비극 칸타타인 ‘카나리 칸타타’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의 오라토리오 <솔로몬> 중 제1막 2장 피날레 곡인 ‘나이팅게일의 합창’과 오르간협주곡 장조 ‘뻐꾸기와 나이팅게일’
*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오르간 및 하프시코드 주자였던 루이-클로드 다캥(Louis-Claude Daquin, 1694~1772)의 약 2분짜리 하프시코드 곡 ‘뻐꾸기’
*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1)의 피아노 소나타 제25번 작품 79 ‘뻐꾸기’
*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e..ns, 1835~1921)의 <동물의 사육제> 중 ‘숲 속의 뻐꾸기’와 ‘백조’
*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93)의 발레 <백조의 호수>
* 프레더릭 델리어스(Frederick Delius, 1862~1934)의 교향시 ‘봄에 첫 뻐꾸기 소리를 듣고’
*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의 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
*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의 모음곡 <새> 여기에는 전주곡 다음에 비둘기, 암탉, 나이팅게일, 뻐꾸기 등 네 가지 새가 나온다. 교향시 <로마의 소나무> 중 제3악장의 ‘자니콜로의 소나무’ 후반에 나이팅게일 소리를 녹음하여 넣었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교향시 <꾀꼬리의 노래>, 오페라 <나이팅게일>, 발레 <불새>
* 스웨덴의 작곡가 요한 에마뉴엘 요나슨(Johan Emanuel Jonasson, 1886~1956)의 ‘뻐꾸기 왈츠’
*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 1891~1953)의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 중에 등장하는 플루트로 표현한 작은 새, 오보에로 표현한 오리.
예술은 자연의 모방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곡가가 음악적 영감을 새소리에서 얻고 첨단의 기계문명 시대에 우리가 이런 음악을 즐기는 것은 모든 예술의 모태가 되는 자연의 품속을 더없이 그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안 철<음악 컬럼니스트>
광주 MBS-FM 출연 208회, 광주 KBS-FM 출연 294회, 음악 감상실 ‘베토벤’, ‘다락’, ‘한울림’,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등에서 정기 감상회 및 오페라-발레 감상 클래스 운영. 현재 KBS-FM 오후의 풍경과 음악 , 안철의 클래식 길라잡이 진행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