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우동 한 그릇’
| 2014. 12.17(수) 07: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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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늘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연극 한편이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작품이다, ‘우동 한 그릇’. 일본 북해도 출신의 소설가 구리 료헤이( 栗良平)의 단편소설을 연극과 영화로 각색했다. 눈이 내리는 날, 가족과 함께 하면 더욱 좋을 작품이다.
북해도의 일본식 발음은 홋카이도다. 세계 3대축제 가운데 하나인 삿뽀로 눈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북해도문학관이 있을 정도 많은 문학작품의 무대가 되었고 작가들을 배출시킨 곳이기도 하다. 눈이 오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자고 나면 온천지가 눈으로 뒤덮여지는 딴 세상. 사람들은 그 곳에서 매일 새로운 경이를 만들어내는 줄도 모른다.
작품의 무대는 북해정이라는 허름한 우동집이다.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이 북해정에는 귀한(?) 손님이 찾아온다. 남루한 차림의 어머니가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이다. 작은 아이는 여섯 살 쯤, 큰 아이는 열 살쯤 되어 보인다. 친절하게 맞아주는 우동집 주인에게 어머니는 머뭇머뭇 말을 건낸다. “저…우동…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여주인은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주방 쪽을 향해“우동, 일인분!” 하고 외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은 “예, 우동 일인분”이라고 받아 외치고 우동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그들이 눈치 채지 않게 하려는 주인의 배려가 담긴 우동 한 그릇.
창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우동 한 그릇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한사코 배가 고프지 않다고 수저를 놓는 어머니에게 “엄마도 잡수세요.”하며 어머니의 입에 국수 가락을 집어넣는 작은 아이. 그렇게 우동 한 그릇은 비어지고 이들은 가게를 떠난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외치는 주인 내외의 목소리가 따스하다.
그 다음 해도, 그 다음해 세밑에도 북해정의 마지막 손님은 이들 세모자다. 북해정 주인은 난롯가 2번 테이블은 ‘예약석’으로 남겨두고 손님을 받지 않는다. 우동값도 이미 올랐지만 오르기 전 가표로 바꿔달고 어김없이 일인분 반을 삶아주고 따스하게 배웅을 해준다.
그러나 그 뒤 수년째 그들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섣달 그믐날 난롯가 2번 테이블은 여전히 ‘예약석’으로 남아 있다. 먼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이 분명했지만 언젠가 한 번은 다시 오리라는 믿음으로 그들을 기다리는 우동집 부부. 각박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휴머니스트다.
20여 년이 지난 어느 해 섣달 그믐날. 늙은 할머니와 장성한 두 아들이 북해정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동집 주인은 한 눈에 이들을 알아보고 난롯가 2번 식탁으로 안내한다. “우동 3인 분”을 합창하는 그들은 눈은 이미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동집 주인아저씨의 따뜻한 이야기를 써서 글짓기 대회 금상을 받았던 이야기로 눈물바다를 이룬다.
실제로 그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멀리 이사를 갔다. 운전수였던 아버지가 인사사고를 내 결국은 가족들에게 엄청난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들 세모자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숱한 고생을 해야 했다. 큰아들은 의사로, 작은 아들은 법관이 되어 금의환향한 것이다, 그들은 이십년 만에 찾은 우동집에서 우동집 주인부부와 얘기꽃을 피우며 새해를 맞는다.
필자는 몇 해 전 광주-삿뽀로 교류음악회 단장을 맡아 북해도를 찾았을 때 맨 먼저 가고 싶은 곳이 북해정이었다. 그러나 북해정은 있지 않았고 3,4대가 대를 잇는 ‘가께소바’집에서 향수에 젖어야 했다,
한해를 보내면서 올해 나는 누구에게 따스한 우동 한 그릇을 대접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듀, 2014.
지형원 (문화통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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