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고봉밥

2014. 01.30(목) 11:20

나주 소반을 비롯한 우리의 전래 밥상이 개다리처럼 휘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본의 인류학 박사 아사쿠라 도시오는 ‘밥상다리가 직선이 아니고 둥근 것은 다리가 휘어질 만큼 푸짐하게 대접하고 싶은 한국인 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실로 우리 전래의 작은 밥상은 다리가 개다리처럼 휘어져 ‘개다리소반’이라고도 부른다. 소반은 한국 전래의 평좌식 식탁이다. 집안 어른이 혼자서 받는 밥상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음식을 부엌에서 안방으로 음식을 나를 때 사용하기도 했다. 윗판은느티나무 통판으로 만들고 긴 판을 접어 깎아가며 테두리를 둘렀다.

작은 소반위에 올려진 산봉우리처럼 솟아오른 고봉밥. 아사쿠라 박사는 푸짐한 반찬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 고봉밥이 한국인의 넉넉한 정의 소산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식량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 고봉밥은 서민들에게는 생일날에도 맛보기 힘든 ‘그림에 떡’이었다. 집에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를 위해 보께뚜겅을 덮어 아랫목에 넣어둔 고봉밥은 존경심의 표현이었고 식량난이 해결된 뒤의 고봉밥은 어머니의 사랑을 담아놓은 것이었으리라. 어머니의 사랑은 고봉밥으로 끝나지 않았다. 밥 먹는 자식을 한없이 쳐다보다가 어느새 자신의 밥을 퍼서 다시 고봉을 만들어 주곤 했다.

‘고봉밥’ 어떻게 해서 유래되었을까?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예전 양반집에서 고봉으로 쌓은 부분만 양반이 먹고, 남은 밥은 하인들이 서열대로 돌아가면서 먹었던 것에서 전해졌다고 한다. 이후 고봉밥은 고된 일을 하는 머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봉으로 담았는데 이때부터는 ‘머슴밥’으로 불렸다.

최범영 시인은 ‘고봉밥 어머니’에서 “… 마당에서 빈둥거리며 손님이 가기를 기다렸다가 후다닥 동생과 방으로 들어가 남은 고봉밥을 숨도 안 쉬고 먹었습니다.… 이후 서울로 갔다가 고향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하얀 쌀밥을 고봉으로 퍼주었습니다 나도 그때부터 어머니의 큰손님이 되었습니다.”라고 썼다.

그렇다. 고봉밥은 여러 날 객지바람을 쐬고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의 짠한 마음을 꼭꼭 눌러 담은 것이 정의 표현이었다. 세상 어떤 상보다 높은 것이 고봉밥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봉밥을 담는 어머니도 안계시고 고봉밥도 사라지고 없다. 영양과잉의 시대에 고봉밥은 ‘작량 없는(?)’ 짓일 뿐이다.

불과 100년 전 우리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1914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수탈은 더욱 심해져 서민들은 극심한 영양 불량에 시달려야 했다. 6.25가 끝난 뒤에도 연례행사처럼 ‘보릿고개’를 겪어야 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버텨야 하는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는 시대였다. 밥이 귀한 시대, 그래서 “진지 잡수셨니까?”라는 우리만의 인사가 생겨났다는 말도 있다. 오죽했으면 목포 출신의 김일로 시인이 “석 달 만에 들여놓은 쌀 한 자루. 아이들이 박수소리‘라고 했을 것인가.

1960년대 들어 정부의 혼·분식 장려운동이 시작되고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생산되었다. 1972년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배고픔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서구화의 바람과 함께 우리들의 식탁에 서구의 음식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어머니의 ‘따스한 고봉밥’도 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들으면서도 먹었던 ‘눈물의 고봉밥’도 없어졌다. 밥상머리 교육도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인에게 밥상은 ‘타인’을 ‘식구’로 만들어주는 특별한 자리다. 장자(莊子)는 다스림의 최고로 含哺鼓腹(함포고복)을 들었다. 어린아이는 젖을 물고 기뻐하고 어른들은 배불리 먹어 배를 두드리며 기뻐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배가 부른 것이 죄인 취급 받는 시대이지만 아랫목에 넣어둔 밥 한 그릇처럼 우리의 허기진 영혼을 달래줄 그 무엇, 이 시대의 고봉밥은 과연 무엇일까.

◇ 지형원 <인터넷 신문 문화통 대표>

지형원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