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금남로 휴머니스트’
| 2013. 12.31(화) 12: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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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값을 걱정하던 청년작가에게 분유박스를 보내준 일, 팸플릿 제작비를 내주거나 전시장에 간호사를 보내 대신 작품을 사준 일, 목로주점에서 예술인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술값을 내주고 ‘헤르만 헤세의 시’를 외우며 유유히 사라지던 사람…, 그런 그가 환갑도 안돼 돌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셔야 했다.
실로 그는 한사람의 의사이기 전에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등록금이 없어 애타던 학생들에게 대출을 받아 돈을 대주고 화가들의 전시에서는 ‘한 점은 찍어야’마음이 편했던 사람, 좋아하던 시인의 시집을 500권씩이나 사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휴머니스트. 그리고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막걸리집에 앉아 시를 외우고 노래했던 로맨티스트. 1970년대 그에게 막걸리 한잔 얻어 마시지 않은 예술인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는 피부과 의사로 금남로 3가 금남공원 옆에서 ‘임춘평 피부과’를 운영했던 의사였다. 그러나 의사로서보다 문화를 사랑했던 사람으로 더 많이 기억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운림동 무등현대미술관에서는 20주기를 맞아 조촐한 행사가 개최된 적이 있다. 그가 생전에 사두었던 150여점의 작품전과 함께 미망인 박영자여사가 고단하고 한스러운 세월을 수를 놓듯 시로 써낸 ‘아름다운 인연’의 츨판기념회 자리였다.
임춘평 원장의 메세나 정신에 대해 경외감을 가졌던 정송규 관장과 박영자여사가 오랜 고민과 토의를 거쳐 만든 자리였다.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 그를 추억했다. 큰 언덕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어렵게 공부했던 두 아들이 나란히 의사가 되어 어머니 곁에 서 있었다, 이들의 꿈은 임춘평 선생이 생전에 추진하던 ‘여곡(如曲)장학재단’을 부활하여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이다. 당시 전시회를 열었던 것도 장학금을 받았던 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내놓고 유명작가가 된 사람들이 여기에 동참하면 ‘수혜자가 다시 만든 장학재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그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꿈을 접은 것은 아니란다.
고 임춘평 선생을 얘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또 한사람의 휴머니스트가 현산 김두원 박사다. 현산 선생은 현재도 신경외과 원로이자 우리지역 비구상미술의 든든한 후원자로 남아 있다. 많은 광주시민들은 80,90년대 불로동과 예술의 거리에 있던 현산갤러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64년 창립된 비구상 미술그룹 ‘에뽀끄’의 후원자로 삶을 들여다보면 ‘너무도 인간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다. 현산은 에뽀끄의 멤버 중에서 故 최종섭 작가를 유달리 좋아했다. 학연이나 혈연, 지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인간미에 끌려 평생을 그와 같이 했다.
병원이 불로동에 있을 때는 2층에 갤러리를 열어 비구상작가들에게 무료로 전시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만 해도 비구상미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비구상미술=비인기작가’로 통하던 때였다. 최종섭 작가가 암으로 홀연 세상을 떠났을 때 지방신문에 난 부음기사를 읽으며 “종섭이는 지금 000가 쓴 이 기사를 읽으며 황천길을 웃고 간다.”고 울먹였다.
사랑했던 친구가 떠난 뒤에도 당시로는 큰 2천만원을 쾌척, 예술의 거리에 ‘현산갤러리’를 열도록 해 최종섭과 예뽀끄를 추억하도록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현산갤러리도 문을 닫았고 에뽀끄 잡지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과 예술을 사랑했던 ‘금남로 휴머니스트’두 사람의 이야기는 영원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형원<문화통 대표>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