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아름다운 베스트셀러
| 2012. 09.30(일) 22: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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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 힘든 여름 속에서도 내겐 한권의 책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대개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인기작가의 신간이나 각 분야의 스타들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요. 그런데 전문가나 대중적 스타가 아닌 평범한 저자의 책이 이렇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궁금해 하실 것 같아 먼저 책을 소개하지요. 김필규 전 KPK통상회장이 쓴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이란 책입니다. 이 책은 고희를 넘긴 저자가 감명 있게 보았던 세계적인 걸작 101편을 마치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미술관에 가서 이야기하듯 써 놓았습니다. 초등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썼지만 그림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꼭 짚어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내가 이 책에 감동한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자신감과 배려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300여권 찍어서 손자손녀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겠다는 생각으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득 손자소녀 또래의 초등학생들이 떠올라 전국의 1만 2천여 초등학교에 1권씩을 보내기로 하고 1만 5천권을 찍었다고 합니다. 출판사 사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행한 일이었는데 책을 받아본 전국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참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 관한 아름다운 소문을 들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팀장급 이상의 산하 임직원들에게 모두 선물하게 되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이 땅의 손자손녀들이 세계의 명화들을 보면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 세상을 더 크게 바라보기를 바랐던 원로의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제 책을 열어보도록 하지요. 첫 페이지는 이탈리아의 화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1395~1455)의 ‘수태고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태고지’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자상한 할아버지는 안젤리코가 예수님에 관한 그림을 그리기 전 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는 것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그릴 때는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원근법 이야기, 천국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천사(angel)라는 단어가 그리스어 엥겔로스(angelos) 즉,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전령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에서는 “ 이 그림의 초점은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진주 귀고리란다. 이 귀고리를 단 2번의 붓 터치로 묘사했다니, 대단하지 않으냐. 소녀의 의상은 베르메르가 애용하던 황색과 청색으로 표현했구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르네상스~팝아트까지의 대표작가 63명의 그림 101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루벤스, 들라쿠루아, 밀레 마네 르누아르, 세잔, 고흐, 고갱,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몬드리안, 달리, 미로,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등 만나고 싶은 작가들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특히 그는 책의 서문에서 미술작품에는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들 속에서 이미지를 읽어내고 그 속에 숨은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상상력과 창의력을 개발시켜 준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림 속의 주제로 쓰인 수많은 신화, 역사, 인물, 문학 작품 등을 공부하고 이해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자도 어떤 자리에서 “요즘 어른들이 술과 골프이야기 말고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지만 술 얘기, 골프이야기 말고 다른 얘기좀 하고 살면 어떨까요. 예를들어 한 점의 그림을 보면서 작가의 이야기와 당대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면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리가 될까요.
마지막으로 김필규 회장을 소개하면서 편지를 마칠까 합니다. 그는 한국외국어대학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공군 간부후보생으로 입대해 대위로 제대해 자원교역회사인 KPK통상을 창업, 37년간 경영하고 은퇴하여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습니다. 평소 미술 컬렉터였던 그는 은퇴 후 인도·중남미·아프리카의 박물관, 미술관을 찾아다녔으며 대학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부러운 인생이 아닌가요? 성공도 성공이려니와 칠순이 넘어 공부한다는 것, 사랑하는 이 땅의 손자소녀들을 위해 아름다운 책 한권 남긴다는 것 말입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 아니 저부터 손자소녀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렇게 살았다고 얘기할 그 무엇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k형, 이 가을 이 책을 한 번 만 더 읽고 보내드리겠습니다. 기다리시기 지루하시면 먼저 서점으로 달려가시든가요.
지형원 <문화通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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