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시베리아여행기- 알혼섬과 부르한바위(6)
| 2012. 04.17(화) 10: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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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한 가운데에 있는 아담한 자작나무 숲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자작나무숲에서 초원의 맑은 기운을 만끽하며 점심 한 끼를 먹는 것도 시베리아가 주는 축복의 하나일 것이다. 점심 후 한 시간쯤 달렸을까? 갑자기 달리던 차가 문제를 일으켜 우리는 초원의 한 가운데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곳에 있는 버스는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만든 대우나 현대 제품인데, 우리가 탄 버스는 최신형이어서 전자기술적 소양이 없는 기사는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두 시간쯤 지나 여행사에서 보내온 다른 버스를 타고 알혼섬까지 갈 수는 있었으나, 시간이 벌써 5시가 훨씬 지나 버렸으니 알혼섬에서의 일정은 대부분 취소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바이칼의 맑고 푸른 물이 출렁거리는데 주위의 야트막한 산 위에 하얀 갈매기 떼가 무리지어 날고 있다. 이 갈매기들은 너무 살이 쪄 ‘좀 징그럽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알혼섬을 찾아온 우리를 환영하는 듯해서 기분은 좋았다. 바지선을 타고 15분 정도 걸려 알혼섬에 도착하니 10인승 고물 승합차 4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운전기사는 세계 정복에 나선 몽골의 장수 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분이다.
그러나 다른 브리야트인들은 대부분 우리 시골에 사는 착한 농부들 같은 인상이어서 만약에 우리나라 사람과 섞여있다면 구분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비포장 길을 쿵쾅거리며 50여분 쯤 달려 우리는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부르한 바위 가까운 후지르 마을에 도착했다.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부르한 바위가 보인다는 언덕을 향해 걸어가는데, 언덕 위에는 잘라아가 칭칭 감긴 셀레게가 여럿 서 있다. 언덕에서 부르한 바위를 내려다보니 붉은 기운이 도는 바위가 마치 하늘로 치솟는 듯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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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이미 7시가 훨씬 지났는데도 주위는 아직도 환한 빛으로 가득하다. 부르한 바위 주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우리 일행들은 늦은 시간 때문에 부르한 바위까지 내려가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다. 부르한 바위에 다가가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일행들 때문에 여러 컷 사진만 찍고 말았다. 나중에 들으니 정재겸선생은 거기까지 내려가 제천의식까지 치렀다고 하니, 아아 나의 소심함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였다.
바이칼에는 26개의 섬들이 있는데, 알혼섬은 그중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라고 한다. 그 길이는 약 72km, 폭은 약 15km로 거제도 두 배쯤 되는 면적이라고 한다. ‘알혼’이란 브리야트어로 ‘햇볕이 잘 드는 땅’이란 뜻이라니 바로 우리의 ‘아사달’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알혼섬은 브리야트민족의 고향으로, 실제 6~11세기까지는 쿠리칸이라는 부족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유적지에서는 석성도 발견되었고 하늘에 제사를 모시던 제단도 발견되었는데, 규모로 보아 강력한 집단으로 보인다고 한다.
부르한바위는 마치 독도와 같은 바위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시아대륙에 있는 아홉 곳의 성소 중 한 곳답게 강렬한 기가 느껴진다. 고대 시베리아 샤먼의 정령이 깃든 곳으로 21세기인 요즈음에도 샤먼이 찾아와 기를 받는 곳이라 한다. 원주민들은 이곳을 신성시하여 부르한바위에 있는 동굴 앞을 지날 때는 일체의 소리를 내지 않았고, 여자들은 아예 이 동굴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단다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영적인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어 여자나 어린이들에게 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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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바이칼 주변에는 신화와 전설이 깃든 곳이 매우 많다. 이곳에 오기 전에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예헤 요르도’라는 산이었다. 이 산은 바이칼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곳에도 유목민족들의 다양한 민속 전통과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혹독한 추위가 지나고 새싹이 돋는 봄이 오면 브리야트, 몽골, 야쿠트의 유목민들은 이 산에 함께 모여 잠든 자연을 깨우는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그들은 예헤 요르도 산에서 활쏘기, 씨름, 말타기 등으로 시합을 했으며, 노래를 부르면서 ‘요호라’라고 부르는 원무(圓舞)를 추었단다. 요호라는 우리의 강강술래처럼 손에 손을 잡고 요르도산을 에워싸고 돌면서 추는 춤인데, 박대일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아시아대륙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원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축제는 수백명이 예헤 요르도 산을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모여야 시작했다니, 그 지역의 모든 부족이 함께 모여야 시작할 수 있었던 축제였던 모양이다. 이 축제를 통해 흩어져 살아야 했던 유목민들이 동질감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법하다.
사실 우리 신화에는 북방민족신화의 영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우리 신화는 해양적 요소보다는 대륙적 요소가 훨씬 많고, 알타이계 신화와 매우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요르도산에서 추는 원무가 우리의 강강술래와 매우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바이칼 백조 이야기도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 한 무리의 백조들이 바이칼 호수에 내려와 깃털 옷을 벗어놓고 목욕을 하는데 사냥꾼 총각이 깃털 하나를 몰래 숨겨버렸단다.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백조는 결국 사냥꾼 총각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 어느 날 아내의 간청에 못 이겨 남편은 깃털을 내주는데, 그 길로 아내는 다시 백조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단다. 금강산에 살았다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와 너무나 닮았지 않은가?
정재겸 선생은 뷔름빙하기 때 바이칼지역은 화산지대였기 때문에 얼음이 얼지 않는 따뜻한 곳이었고, 그 일대에서만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빙하기가 끝난 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는데, 우리 민족도 바이칼지역에서 파미르고원을 거쳐 한반도까지 이동해 왔을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분들은 알혼섬에 무리지어 살던 코리칸족들이 다시 동진하여 고리국(櫜離國)을 세우고 더 동진하여 부여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김원회는 브리야트의 ‘트’는 복수어미로서 브리야트는 브리야‘들’ 브리야‘족’이라는 뜻이고, 이 ‘브리야’는 부여와 같은 말로 그들은 모두 동일한 족속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형진은 부여족들이 지금 터어키의 북쪽에 있던 프리기아로부터 동진하면서 브리야트족을 그곳에 떨구고, 더 동진하여 만주에 도달하여 부여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겠으나, 바이칼지역을 우리 민족의 시원지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후 부여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갈라져 나오고, 가야와 일본으로 기마민족들이 퍼져나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우리나라를 코리아라고 부르는데, 물론 이는 고려라는 이름이 서양에 퍼져 나간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는 고구려에서 나온 이름이고 고구려는 고리국에서 고리국은 어쩌면 바이칼 주변에서 살던 쿠리칸에서 나온 이름일지도 모른다. <몽골비사>에는 몽골의 시조 알랑 고아가 코리족이라고 되어있다.
우리는 브리야트 민속촌에서 자기로 되어 있었는데, 브리야트 민속촌이라는 기대와 달리 러시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조그만 통나무집으로 이루어진 민박촌이었다. 아마 이곳의 경제권도 브리야트인들보다는 러시아 사람들이 쥐고 있을 것이다. 저녁을 먹을 즈음에는 밤9시가 넘었는데도 특유의 백야(白夜) 덕분에 그다지 어두운 줄을 몰랐다. 큰 모닥불 가에 30명이 넘는 일행이 둘러앉아 양고기와 보드카 파티를 하는데, 바이칼의 달은 너무 밝고 너무 크게 빛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김상윤<지역문화교류재단 상임이자>
지형원 mtong@mtong.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