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할머니들이 쓴 '시집살이, 詩집살이'
'늦깎이 시인' 아홉 할머니의 인생이야기
'길작은 도서관' 김선자 관장 뒷바라지
| 2016. 04.28(목) 10: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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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살이 詩집살이』는 할머니들이 며느리로서 살아온 ‘시집살이’와 뒤늦게 한글을 배우고 시작한 ‘詩집살이’라는 두 가지 의미다. 곡성의 아홉 시인들은 124편의 시를 통해 삶의 애환을 담담하게, 애절하게 노래하여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이영광 시인은 할머니들의 시를 보고 '놀랍고 감동스럽다'며, 단순히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시 모음집이 아니라, 빼어난 시집이라고 극찬했다. 특히 수록 시인 가운데는 늦게 배운 시로 문학상까지 받은 할머니 시인도 들어 있다.
곡성 할머니들이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길작은도서관' 김선자 관장의 노력이 숨어 있다. 김 관장은 곡성교육지원청 순회사서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사는 서봉 마을에 '길작은도서관'을 열었는데 도서관은 마을의 사랑방이 되었다.
김관장은 도서관을 찾은 할머니들 가운데 한글을 모르는 분이 있음을 알고 한글 교실을 열어 눈을 뜨게 했다. 그래서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쓰게 한 것이 시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2013년에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몇 분의 할머니가 제출한 시가 장려상을 받았고 지난해도 곡성 군민을 대상으로 한 곡성문학상에서 네 분의 할머니가 일반부로 응모해 장려상을 받았다.
북극곰이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출간하게 된 것도 할머니들의 시를 보고 감동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김선자 관장은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에게 추천사를 부탁했다. 할머니의 시는 이루리 작가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놀라게 하고, 눈물이 나게 했다. 할머니들의 시에는 문학적 소양이나 화려한 기교를 잊게 하는 진짜 감동이 있었던 것이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 /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 사뿐사뿐 걸어오네.
-눈, 김점순
늙은께 삐다구가 다 아픈지 / 한 발짝이라도 덜 걸어올라고 / 왈칵 밤이 내려와 앉는갑다.
-산중의 밤, 도귀례
사박사박 / 장독에도 / 지붕에도 / 대나무에도 / 걸어가는 내 머리 위에도 / 잘 살았다 / 잘 견뎠다 / 사박사박
-눈, 윤금순
어렸을 때 만들어 본 / 눈사람 / 크게 만들고 / 작게 만들고 / 숯뎅이로 껌정 박고 / 버선 씌워 모자 만들고 / 손도 없고 발도 없어 / 도망도 못 가는 눈사람 / 지천듣고 시무룩 / 벌서는 눈사람.
― 『눈사람』 김막동
젖 떨어진 동생에게 준 / 흰 밥이 / 어찌 맛나 보여 먹고 잡던지.
― 『가난』 박점례
애기 젖 먹여 놓고 / 오장 상한께 / 날마다 산으로 갔지 / 한 단 한 단 해 놓은 나뭇단이 / 설움만큼 높게도 / 뒷담에 쭈르라니 쟁여졌지.
― 『그대 이름은 바람』 안기임
인자 허리 아프고 / 몸이 아프고 / 몸이 마음대로 안된께 / 마음이 쎄하다 / 저 사람은 저렇게 빤듯이 / 걸어가니 좋것다 / 나는 언제 저 사람처럼 / 잘 걸어 갈끄나.
― 『좋겠다』 양양금
뇌성이 때글때글해서 / 고양이만기로 / 가만히 앉어 있었어 / 어찌나 무섭던지.
― 『뇌성』 조남순
이날 평생 길쌈해서 / 적삼 하나 얻었더니 / 남을 줘 버렸네.
― 『큰동서2』 최영자
할머니시집을 출간한 화제의 주인공은 김막동, 김점순, 도귀례, 박점례, 안기임, 양양금, 윤금순, 조남순, 최영자 씨 등 9명이다.
박원지 기자 mhtong@hanmail.net 박원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