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칼럼>申在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 2016. 03.10(목) 10: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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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을 막론하고 공평함에서 카리스마가 나온다. 그 방장산 자락의 끄트머리에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1812~1884)의 고택이 있었다. 지금은 사랑채 일부였던 돌담 초가집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4000평의 저택이었다고 한다.
정원에는 커다란 괴석(怪石)들을 빙 둘러 쌓아서 조성한 석가산(石假山)과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하고 잉어들이 뛰노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니 그 풍류와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신재효는 5000석의 부자였다. 그렇지만 신분은 양반이 아닌 중인 계급의 호장(戶長)이었다. 돈도 있고, 학식도 있고, 경륜과 포부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중인이었던 것이다. 신재효는 50대 중반부터 그 신분 차별의 한을 판소리로 풀었다. 4000평의 집 안에다가 광대, 기생, 소리꾼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쳤다.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공부까지 시켜준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재인(才人)들이 모여들었다. 많을 때는 300여명이 신재효 저택인 동리정사(桐里精舍)에서 먹고 잤다고 전해진다. '딴따라' 전용 숙소가 무려 74채나 될 정도였다.
조선 후기는 삼정(三政)이 문란하고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심해서 밑바닥 인생들은 굶어 죽던 시대였다. 예인들을 불러 공짜로 먹여주고, 한문도 공부시켜 주고, 공연도 시키고, 잘하는 신인을 발탁하여 대접까지 해주니 전국에서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신재효는 이 과정에서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춘향가, 적벽가, 변강쇠가와 같은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하였다. 천민들의 노래를 양반 식자층도 감상할 수 있도록 수준을 끌어올린 것도 신재효의 작업이었다. 그러면서도 부패한 양반에 대한 조롱이 스며들어 있다. 신재효가 죽고 나서 10년 후에 이 지역에서 전봉준의 동학혁명이 폭발하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칼럼니스트· 동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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