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700번 오른 장형석 박사
1000번쯤 올라야 通天의 오묘함 알 수 있을까’
‘“산은 친구요 가족이자, 그냥 좋은 그 무엇”
| 2013. 09.12(목) 17: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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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을 700번쯤 오르면 신선이 되는 것일까. 82세의 장형석 박사(나주 즐거운 요양병원장)는 꼿꼿함도 말씀도 어떤 경지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한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랄까.
“천왕봉을 몇 번쯤 올랐느냐”는 물음에 헤아려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만 20여년전 지리산 털보 고 함태식 선생이 한 오백 번 오른 사람으로 나를 지목하면서 그때부터 대충 그쯤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박사에게 천왕봉은 친구이자 아내이자 가족이다. 아니 아내도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지만 천왕봉은 오늘도 그의 손을 잡아주고 가슴을 안아준다. 그래서 팔순을 넘긴 지금까지도 틈만 나면 천왕봉을 찾다보니 세월의 겹처럼 나이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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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언제가 가장 좋은가요?” 또 한 번의 우문이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좋으니 언제라고 말하지 말자고 한다. 어제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오늘은 보이고 오늘 봤던 것도 내일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니 참으로 오묘하고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새벽에 중산리 또는 백무동에서 시작, 해질녘 하산
그가 오르는 천왕봉 코스는 2가지다. 하나는 중산리에서 시작해 칼바위-법계사-천왕봉으로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백무동-하동바위-소지봉-장터목 대피소-천왕봉 코스다. 70대 초반까지도 중산리 코스를 즐겼으나 요즘은 백무동 코스를 즐긴다. 아무리 좋은 산행이라도 무리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장박사가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젊은 시절이다. 전남대 의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향인 구례 보건소장으로 내려갔는데 ‘연화반’ 등산클럽이 있어 시간만 나면 산에 올랐다. 그때는 주로 성삼재를 거쳐 노고단을 다녔다. 구례보건소를 떠나 목포시립병원으로 옮긴 뒤부터는 주로 천왕봉 코스를 찾았다. 물론 지금도 광주 무등산을 즐겨 찾지만 깊은 맛을 어디에 비하랴.
장박사가 천왕봉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같이 산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굳이 ‘쫛쫛산악회’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천왕봉 가는 길에, 아니 더러는 천왕봉에서 자주 만나니 식구가 되었다. 초창기 소지봉에 올랐을 때는 심마니들이 산사람들이 이른바 소지(소원을 빌며 태우는 종이)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무사고 산행에서부터 산삼을 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경건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장박사는 요즘 천왕봉에서 스타(?)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천왕봉 몇 백 회 등행이 알려지면서 기념촬영을 원하는 사람이 많단다.
“김명원 김상원 문영식씨 등도 진정한 산사람”
김명원 내과 원장, 김상원 씨(호남대), 문영식교수(전남대 명예교수) 등이 500~600번쯤 천왕봉에 올랐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나 그들 역시 등행횟수를 헤아리지 않는 진짜 산사람들이라 언제 봐도 정겹고 반갑다고 말한다.
“그분들은 저보다 산에 대한 생각이 깊은 분들입니다.” 자신보다 수하인 사람들에게까지 자잘한 신경을 써주는 모습에서 진짜 ‘산지니(산을 지키는 오래된 새)’의 겸손함을 다시 배운다.
산은 혼자 다니는 것이 가장 좋다. 혼자서 걷다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잊고 지냈던 것들, 보지 못했던 것들,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두 세 사람이 같이 하는 산행도 위험을 줄이고, 기쁨을 나누는 즐거움이 있지만 한사람이라도 사정이 생겨 산행을 하지 못하게 되면 너무 서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박사는 굳이 조를 짜서 산행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만나 산에 오르고 산에 오르면 산의 한 부분이 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에도 천왕봉에서는 바람막이를 걸쳐야 하는 날이 있고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햇살을 받으면 웃통을 벗어야 할 만큼 변화무쌍한 천왕봉이라고 말한다.
‘배낭 속이 궁금하다’고 했다. 장박사는 자신이 가장 작은 배낭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그 속에는 온갖 것이 다 들어 있다고 답한다. 의식주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옷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비바람을 막아줄 작은집(?)도 있어야 하고, 거기에 먹을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의사인 그로서는 응급약도 꼭 챙긴다. 자신도 자신이려니와 혹여 산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돕기 위해서다. 장박사는 산행을 하면서 심지어 물도 잘 먹지 않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렇게 인내를 배우며 산을 느끼며 산에 오른다.
이쯤에서 장박사는 지긋이 눈을 감고 지리산 천왕봉을 다시 떠올리는 듯하다.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천왕봉을 만날 수 있을까. 절대로 지난 세월만큼은 아니기에 그 소회가 남다를 것이다.
장형석 박사. 전남대 의대 6회 졸업생으로 구례보건소, 목포시립병원을 거쳐 오랫동안 목포의료원에서 환자들을 보살피며 살았다. 특히 세상 속에서는 자신이 환우들의 위로자라면 지리산에 오르면 천왕봉이 위로자가 되어주기 때문에 줄곧 천왕봉과 함께 살아왔다.
장박사는 슬하에 1남4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서울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고 딸들은 모두 출가하여 좋은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10여년 전 부인을 사별하고 노년이 조금 쓸쓸하지만 산이 있고 보살필 수 있는 환우들이 있기에 지금 그는 행복하다.
김수연 기자 mhtong@hanmail.net 김수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