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시인' 황형철의 '바람의 겨를'
| 2013. 01.04(금) 16: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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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한 황형철 시인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의 공간, 그 가운데에서도 꽃이나 나무 같은 식물성에 주목하면서 서정시가 지니는 보편성을 시적 울림으로 만들어왔다. 시인은 특히 작고 연약한 것들에 주목하고 있는 시가 감동을 내재하고 시적 정서를 전달한다. 1부 ‘함구’ 2부 ‘둥글기만 한 그것은’ 3부 ‘봄날의 욕심’ 4부 ‘꽃이 온다’ 등으로 나눠 모두 60여편의 시를 상재했다.
꽃이 지는 동안
제비나비는 잠시 날갯짓을 접고 배추벌레는 수런대던 이야기를 슬며시 거둔다 생소한 가락으로 숲을 흔들던 성성한 바람도 걸음을 멈춘다 눈치 없는 겨우살이가 구름 낀 하늘 한쪽을 쓸어내는 동안 나무 아래 속절없이 꽃물 든 돌멩이는 두 눈만 씀벅할 뿐
-｢숲을 지나다｣ 부분
｢숲을 지나다｣에서 시인이 들려주는 것은 제비나비가 날갯짓을 접고 듣는 배추벌레의 “수런대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시인의 시선은 지극히 소박하고 외부가 아닌 내부의 이야기를 내부의 은근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이 뚝, 떨어질 때 생기는 나뭇가지와의 사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사유(死有)의 어름을 막 넘어선다고 해야 하나//감격스러운 내생의 직전이라고 해야 하나//잎이 나고 꽃이 피었다 지는 수많은 갈피들이//알알이 응집되었다가 찰나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어쩌면 감과 나무의 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첫 모습일 텐데//그것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심경에 어린 새의 눈 같은 씨앗을 뿌리는 것일 텐데//무거운 감의 꽁무니를 악물고 한 시절을 살아온 배꼽의 끈기를 닮을 것인가//기꺼이 이 한 몸 도사리 되어 벌레의 다디단 밥이라도 될 것인가
-｢감과 나무의 사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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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나무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지는 짧은 순간, 그 사이의 공간을 통해 시인은 무한히 확대된 영역을 제시한다. 땅으로 떨어지는 짧은 순간을 통해 시인은 수많은 시간을 그 안에 부여함으로써 찰나의 여운이 아련한 잔상을 남긴다. 시인의 눈은 작고 사소한 미물, 이를 테면 새, 귀뚜라미, 나비와 벌, 호박, 광대나물, 모시조개, 백일홍, 파리, 물고기, 낱알, 석류, 산수유꽃, 망초꽃, 쑥부쟁이, 오리, 배추벌레, 상사화 같은 것들을 통해 순간에 존재하다가 쓸쓸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황형철 시인의 ‘바람의 겨를’에 대해 최갑수 시인은 “ 오랜 여행을 해온 자만이 꽃이 ‘온다’는 사실을 안다. 바람과 바람의 아득한 간격을 순순히 메워내는 문장, 바람과 근친하는 그의 시들을 읽으면 참 맑은 여행을 한 것 같다.”고 평한다.
또 최금진 시인은 “ 황형철은 찰나를 응시하는 시인”이라면서 “ 그의 시는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남는 찰나의 여운같은 아련한 잔상을 남긴다.”고 평했다.
황형철 시인은 “ 멀리 온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여전히 제자리에 가깝다. 어둠이 걷히기를 희망하며 시와 내통하는 게 나름의 노동이고 책임이었을 뿐. 풍진세상, 이 우주의 여행자로 살면서 만나는 매혹적인 풍경들과 기쁘게 대화하며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겠다.” 고 발간사에서 밝히고 있다.
황시인은 199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와 2006년 계간 《시평》으로 등단했다. 현재 계간 《시와 사람》 편집장, 에코미래센터 이사,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원지 기자 mtong@mtong.kr 박원지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