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칼럼>朴家園序
| 2012. 07.29(일) 22:24 |   |
|
담양의 소쇄원(瀟灑園)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민가 정원이 나주의 박가원이다. 1만여평의 넓이인 박가원에는 집주인이 사는 죽설헌(竹雪軒)이 자리잡고 있는데, 겨울에 눈이 왔을 때 이 죽설헌에 앉아 눈 쌓인 대숲을 바라보면 '풍류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지난주에는 노란꽃 창포가 한창이라는 주인장의 기별을 받고 박가원을 찾아갔다. 박가원 서남쪽의 2천여평 습지에는 노란색의 창포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노란색의 꽃은 마음을 어린 시절 술래잡기할 때의 감성으로 되돌리는 작용이 있다. 꽃밭에서 놀아본 게 그 얼마 만인가!
풍파에 시달리다가 이런 아름다운 꽃밭을 만나니까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밀려온다. 이태백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그 서글픔을 이렇게 읊었다. "천지자(天地者)는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요, 광음자(光陰者)는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이라. 부생약몽(浮生若夢)하니 위환기하(爲歡幾何)리오. 고인병촉야유(古人秉燭夜遊)는 양유이야(良有以也)로다." '천지는 만물의 여인숙(逆旅)이요, 시간은 영원한 과객과 같도다. 부평초 같은 우리 삶이 꿈과 같으니 그 사이에 기쁨을 누린다고 해도 그 얼마나 되겠는가. 옛날 사람들이 밤에 촛불을 들고 놀았던 것은 다 이유가 있도다.' 이태백이 복사꽃과 오얏나무 꽃이 만발한 봄날 밤의 도리원에서 인생의 유한(有限)함을 뼛속 깊이 깨달았으니까 이런 시를 쓴 것이다.
평소에도 삶의 유한함을 느끼고 있지만, 인간은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그 유한함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장엄한 풍경은 이기심과 계산속이 사라진 성자(聖者)를 만나는 듯한 정화의 효과를 준다. 박가원의 노랑꽃창포를 보고 돌아오는 승용차 속에서 정훈희의 노래 '꽃밭에서'를 웅얼거려 보았다.
<칼럼니스트. 동양학>
mtong@mtong.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