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 시적인 정서를 품은 고향풍경
| 2011. 09.30(금) 14:11 |   |
이동영의 그림은 대다수가 고향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풍광에 대한 찬미라기보다는 고향의 추억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라고 할만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건만, 그에게는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 자신의 감성을 살찌워준 아름다운 자연은 언제나 추억과 결부되어 나타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은 현실의 재현에 그치지 않는, 꿈과 낭만 그리고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성장과정에서 체현된 고향의 사계절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시각적인 이미지 및 정서를 매개로 하는 것인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개인전을 통해 고향인 고흥의 사계절을 노래했다.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착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그리움을 들춰내는데 있었다. 그의 그리움은 고향풍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아름다운 추억이 덧붙여진 서정적인 이미지를 노출시키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그 서정적인 이미지는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재해석된다. 그러기에 보이는 사실의 전달보다는 보고 느낀 감정의 표출이라는 형태가 된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묘사 대신에 생략적이고 개략적인 이미지만을 드러낼 뿐이다. 물론 전체적인 시각으로야 그 풍경의 전모가 드러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무의 형태나 숫자를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다는 듯이 그 전체적인 이미지만을 드러낸다. 어쩌면 호흡이 거칠게 느껴질 만큼 빠르게 전개되는 붓의 움직임이 그러한 이미지만을 허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세부묘사를 지양함으로써 자연히 붓을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지고 동시에 신체적인 힘이 붓 터치 속에 녹아들게 된다. 이는 보이는
사실의 재현에 얽매이지 않고 빠른 감정의 흐름에 맡긴 결과일 수 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데도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심상이 점유하는 공간이 크기 때문이다. 고향 풍경에 대한 추억에 결부된 현실적인 이미지가 구체성을 잃고 표현적인 이미지로 대체되는 듯한 인상이다. 인상주의 표현방식을 따르면서도 거칠게 다루어진다는 점에서는 표현주의적인 성향에 가깝다. 내면세계에 대한 직설적인 표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에 작품에 따라서는 광기를 느끼게 할 만큼 거칠고 힘찬 붓 터치가 시선을 압도한다. 이렇듯이 그의 작업은 마음속에서 곰삭은 고향의 이미지에다 현실적인 인상을 오버랩시키는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기법이 말하고 있듯이 현실적인 풍경에 대한 구속력은 전혀 느끼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어느새 고향의 현실적인 풍경으로부터 떠나 있는지 모른다. 설령 고향 땅에다 캔버스를 놓고 과거가 아닌 현실적인 풍경을 그릴지라도 캔버스에 나타나는 풍경은 오히려 과거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것은 아마도 그 자신의 심상에 각인된 추억의 정경이 너무도 선명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그렇다. 그의 그림 속에 보이는 풍경은 단지 그 곳이 고향의 어느 풍경임을 증명할 뿐, 구체적인 현실의 제시는 아니다. 어느 면에서 그의 그림은 고향에 대한 추억과 그 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색채는 사뭇 비현실적이다. 세부묘사를 지양하다보니 색채이미지 또한 현실성을 잃는다. 현실적인 색채감각이 떨어지는 대신에 강렬한 원색적인 이미지만이 시선을 자극한다. 격정적인 감정의 흐름이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형국이다. 이는 풍경 속에서 그 자신의 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특정의 색깔에 대한 직설적인 반응이다. 다시 말해 풍경 속에서 받아들이는 특정의 색채이미지만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시각적인 호소력이 강하다.
그는 현실을 간결하게 압축하고 함축하는 표현기법을 구사한다. 압축된 이미지에 고향의 정서를 반영하면서 서정적인 이미지를 이끌어낸다. 거칠면서도 마음을 평안하게 이끌어가는 것은 서정성이 농후하기 때문이지 싶다. 구체적인 형태가 생략되거나 단순화되고 또는 압축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서정미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은 그만의 문학적인 감수성 때문이리라. 그가 시를 쓴다는 선입견이 아니더라도 그의 그림에서는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서정미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형태를 생략하고 단순화하거나 압축 또는 함축하는 방식은 시를 짓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면에서 문학적인 감수성 및 시작법을 통해 익힌 세상에 대한 그만의 이해방식이 오늘과 같은 형식을 이끌어낸 직접적인 요인인지도 모른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붓 터치는 삶에 대한 열정의 표현이다. 그처럼 뜨거운 열정이 강렬한 색채와 빠르고 힘찬 터치로 구체화되는 셈이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에서는 창작의 희열이 감지된다. 그것은 오랜 동안 이어져 온 문학적인 감수성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의 작업은 이전보다 한층 더 격렬한 신체적인 힘과 속도감이 느껴진다. 자연을 통해 받아들이는 이미지를 가능한 한 빠르게 정착시킨다는, 즉 표현감정을 보다 순도 높게 전한다는 의지가 반영되고 있는지 모른다. 한달음에 작업을 끝낸 듯 그 격정적인 감정의 흐름이 파탄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작품에서는 시각적인 쾌감이 느껴진다. 그의 표현감정이 그대로 묻어남으로써 그를 보는 감상자 또한 그러한 상황에 빠져들도록 이끈다. 이것이야말로 감상자를 작품 속에 끌어들이는 흡인력인 것이다.
그는 그림이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서야 하는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감상자의 마음을 빼앗는 데 모아진다. 그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술적인 것은 이미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엇을 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향 풍경은 그 자신의 개인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보는 풍경은 그러한 협의적인 이미지를 벗어난 보편적인 풍경일 따름이다. 거기에는 그가 보고 느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한국적인 이미지로 변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동영: 의 정서가 담긴 강렬한 인상의 내면 풍경
그림에 대한 욕망은 열병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지 창작의 희열을 맛본 이는 그림에 대한 욕망을 평생 억제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림은 밥이 되기 힘들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붓을 놓지 못하는 것은 창작의 희열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랴. 창작의 희열은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직 그림을 그린다는 그 행위와 결과물에 대한 순정만으로 산다. 그래서 때로 화가는 비현실적인 인간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이동영은 이순을 지척에 둔 이즈음 그야말로 불철주야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역시 생에 대한 성찰이 깊어진다는 의미이리라. 그림에 대한 참다운 의미를 깨닫고 지나간 시간을 애석해 하며 한 시간도 아까워하는 심정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림에 대한 욕구 및 열정을 맹렬히 불태우고 있다. 작업에 투척하는 시간에 비례하듯 작업량이 놀랄 만큼 많아졌다. 따라서 작업량에 비례하여 작업에 대한 감각도 예민해지고 테크닉도 한층 무르익어 가고 있다. 마치 거칠 것 없다는 듯이 힘차고 빠르게 움직이는 붓 터치에서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작품의 소재 및 대상은 예나 변함없이 대자연이다. 고향인 고흥의 바닷가 풍경을 비롯하여 장엄한 산세를 자랑하는 설악산, 그리고 일상적인 농촌풍경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맨드라미 따위의 꽃을 소재로 한 작품도 간헐적으로 눈에 띤다. 소재 및 대상이 무엇이든지 그의 미적 감수성은 일상적인 풍경을 풍요로운 표정으로 바꾸어낸다. 이는 주체하기 힘든 표현감정에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작업은 초기부터 오늘까지 큰 변화 없이 일관된 조형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자연과 마주했을 때 눈에 보이는 사실에 매료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즉 미적감흥의 표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는 지양한다. 물론 전체상으로는 그 풍경이 어느 특정 지역임을 알 수 있을 만큼 형태가 드러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형태묘사보다는 그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을 통해 일어나는 미적 감흥과 표현충동에 의해 이끌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가 강렬한 색채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감정표현을 우선하기 때문이리라. 시각적인 호소력이 강한 색채이미지, 즉 원색적이면서도 채도가 높은 색채 배열을 선호하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억제하기 힘든 표현충동에 이끌리는 표현감정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역시 원색 중심의 강렬한 색채이미지가 제격이다. 따라서 색채를 혼합할 겨를이 없을 만큼 붓의 움직임은 민첩하게 반응한다. 힘차면서도 빠른 필치는 우회적인 표현을 필요로 하지 않는 까닭이다.
특히 최근 작업에서 색은 더욱 농염해지면서 색상의 폭을 극도로 좁혀 단색화나 다름없는 간결한 색채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다. 이는 산의 구체적인 형세보다는 어떤 시간대의 특정 상황 및 그 정서에 반응하는 그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한 결과로 보인다. 저녁놀을 등지고 서 있는 거대한 산의 장중한 모습 속에서 그는 짙은 남색을 보고 있는 것이다. 색채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바로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
그러고 보면 원색적인 강렬한 색채이미지와 힘차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붓 터치는 조화롭게 잘 어우러진다. 실제로 대작에서 볼 수 있는 거칠면서도 담대하게 전개되는 필치와 순색은 서로를 부추기면서 화면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몰아간다. 그 자신의 호흡을 그대로 묻혀내는 듯싶은 것이다. 이와 같은 색채이미지 및 붓의 움직임은 장엄한 산세를 표현하는데 아주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시선을 압박할 정도로 화면 가득히 채우는 장엄한 고산준령을 제재로 한 작품은 마치 요동치는 듯한 산세를 통해 충만한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색채도 온화하고 붓 터치마저 조심스럽다면 대자연의 장엄미는 물론 생동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가 그림 속에 구현하고자 하는 대자연은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에서는 그 형태적인 아름다움과 온갖 물상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이는 순전히 눈으로 이해되는 자연의 실상일 따름이다. 이에 반해 그는 시지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고 거기에 반응하는 순수한 인간의 미적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가 고향풍경을 즐겨 그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몸에 익힌 고향의 정서를 담으려는 데 있는지 모른다. 미역을 말리는 붉은 놀빛 풍경이나 작은 교회당, 또는 시골집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들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을 전해준다. 그림을 통해 인간 삶의 정서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산 풍경을 제외한 일상적인 시골풍경을 제재로 하는 일련의 소품에서는 간헐적으로 인물이 등장한다. 겨우 그 형체를 짐작케 할 정도로 간결하게 처리되는 인물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살아가는 인간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지팡이를 짚고 마을길을 걸어가는 노인이라든가, 붉은 석양 아래 지팡이를 짚고 교회당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에서는 철학적인 사유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물론 거기에서는 문학적인 감수성이 갈파해낸 서정성도 감지된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노인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통해 숙연한 인간 삶의 정체를 엿보게 되는 것이다. 숙연한 기분에 젖어들도록 유도하는 그림의 깊이는 일반적인 풍경과는 확실히 다른 차원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렇듯이 그의 시선은 아주 따뜻한 감촉으로 세상을 어루만진다. 정서적인 면을 놓치지 않는 것은 아마도 시적인 감수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시를 써온 사실을 상기시키면 그림 속에 깃들이는 문학적인 서정미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세상을 문학적인 이해방식으로 바라봄으로써 시지각 이면에 자리한 인생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담을 수 있는 것이리라. 이 또한 삶에 대한 폭 넓은 경험과 깊은 성찰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그림이 단순히 보고 즐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고 그리하여 마음을 따스하게 만드는데 기능한다면, 그가 지향하는 내면적인 세계는 그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최근 작품은 잘 그리겠다는 차원에서 벗어나 그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진솔하게 쏟아내는데 집중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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