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 인도인들의 일상과 인도의 색깔
| 2011. 09.30(금) 11:23 |   |
김은숙은 인도를 다녀와 그 감동이 식기 전에 정착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밀려 열정적으로 작업했다. 그가 느낀 인도는 다름 아닌 인간군상으로 집약된다. 역사유적도 그렇다고 하지만 인도인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은 더욱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그는 초상화 형식의 인물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 및 내용을 담을 수 있기에 그렇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보면 인도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은 모두가 훌륭한 그림의 소재이고 제재이다. 어느 순간, 어떤 모습도 그림이 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삶의 정경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존재하는 어느 장면이든지 서정적인 풍경이 되고 시가 된다. 심미안을 지닌 예술가라면 그로부터 비롯되는 진정한 삶의 아름다움에 무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예술가마다 다르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이 보고 느낀 인도에 대한 인상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는 인도여행을 통해 받아들인 감동 및 감흥을 되도록 선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수채와 아크릴을 택했다. 여행의 여운을 순도 높게 받아내기 위해서는 작업시간이 짧을수록 좋다. 수채와 아크릴은 이와 같은 요구에 합당한 재료인 것이다. 실제로 그의 이번 작업은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표현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일정한 시간이 요구되는 구체적인 묘사를 지양하여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불필요한 감정의 누설을 막기 위해 보다 세심하고 섬밀한 감정의 전개가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은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구체적인 형태묘사를 포기하는 대신에 표현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보고 느낀 인상, 그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빠른 호흡과 더불어 감각적인 필치를 구사하게 된 셈이다. 형태묘사에 얽매이지 않으니 필치가 한층 자유롭고 활달하며 생기가 넘친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의 과잉으로 인한 난삽한 표현과 같은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절제되는 감정은 중간색을 기조로 하는 색채이미지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인도 여인들의 의상은 원색적이다.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여성들의 의상인 사리의 색깔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서는 원색이 아닌 중간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생활하는 가운데 저절로 퇴색하고 빛바래서 고유의 발색을 잃어가는 서민들의 사리는 결코 원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이 그는 예술가적인 예민한 감수성으로 보편적인 사리의 색깔을 중간색으로 간파한 것인지 모른다.
인도인들의 검은 피부와 빛바랜 사리는 이국적인 정서를 부채질한다. 거기에서 야릇한 연민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에는 그런 주체하기 힘든 인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감정이 잘 묻어나고 있다. 여행자의 객관적인 시선과는 다른 예술가적인 감수성으로 간취되는 인도 특유의 정서가 작품 곳곳에 짙게 깔려 있다. 무언가 보일 듯싶은데도 가까이 다가서면 되레 실체와 멀어지는 미묘한 인도의 정서를 그는 불확실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불확실함에서는 온기가 느껴진다. 희미한 등불과 같은 따스하고 아련한 향수와 유사한 정서가 포진하고 있는 까닭이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러 가는지 알 수 없으나 무언가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짊어지고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사리로 감싼 여인들의 뒤태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 그는 인도인들의 뒷모습에 담긴 삶의 모습을 서정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다. 비록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묘사는 생략되었을지라도 인도의 풍정, 인도의 정서를 파악하는데 전혀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인도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나 경험이 없을지라도 인도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정서를 집약해 놓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작품 숫자가 말해주듯이 열정의 산물인 이번 전시는 인도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회화적인 영감을 자극하는 인도, 거기에 취해 신들린 듯 작업에 몰입한 열정과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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