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오: 단순, 절제, 함축으로 요약되는 인체형상
| 2011. 09.30(금) 11:14 |   |
국경오의 돌조각은 지극히 간결한 인상이다. 인체조각임에도 손과 발은 물론이려니와 얼굴 부분에서도 세부적인 묘사를 찾아볼 수 없다. 대담한 생략과 절제, 그리고 단순화라는 표현방법으로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을 모색한다. 실제와는 완연히 다른 간결한 형태미는 세부적인 수사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압축, 또는 재해석된 형상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돌이라는 견고한 재료를 흙처럼 다뤄 사실성을 극대화하는 전통적인 인체조각, 즉 사실조각과는 다른 시각으로 인체와 대면한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에서는 사실조각에서 실현하는 놀라운 기술적인 완성도는 기대할 수 없다. 대신에 가능한 한 형태를 단순화함으로써 돌이라는 재료가 지닌 또 다른 형태의 숨겨진 가치를 드러내려고 한다.
돌의 순수성은 가공하지 않은 상태가 최상이다. 일단 돌에서 형상을 찾아들어가기 시작하면 본래적인 돌의 순수성은 해체되고 만다. 형상이 재료의 존재성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이나 나무와는 확연히 다른 돌 특유의 강고한 재료적인 특성을 부각시킴으로써 돌조각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고자 한다. 자연성, 영속성, 그리고 친숙성은 돌이 가지고 있는 재료적인 특성이다.
그는 이와 같은 특성을 부각시키면서도 차갑다거나 딱딱하다거나 거칠다는 돌 특유의 이미지를 완화시킴으로써 돌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인 질서를 부여한다. 돌의 자연성이나 순수성을 반감시키는 대신에 조형적인 아름다움의 옷을 입힌다. 거친 돌의 표면을 부드럽고 우아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는 것이다.
그가 다루는 돌의 종류는 대리석을 비롯하여 화강석, 오석, 청오석, 자연석 등 다양하다. 어느 종류의 돌이든지 속에 숨겨진 마음의 형상을 찾아내면서 곱게 가공해 놓는다. 다시 말해 그 자신이 추구하는 조형적인 형식에 합당한 표면질감을 만들어낸다. 정을 사용하여 돌의 표면을 섬세하게 쪼아내는 방식으로 균일한 질감을 얻는 것이다. 그리하여 돌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한편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부각시킨다.
돌의 자연성, 또는 원시성을 살리면서 조형적인 꿈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그가 돌 속에서 찾아내는 형상, 즉 제재를 통해 해소된다. 즉, ‘꿈’ ‘미소’ ‘소망’ ‘얼굴’ ‘여인’ 등의 명제가 내용을 암시하듯이 모든 작품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 따라서 곱고 아름답고 달콤하며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이처럼 아름다운 제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돌의 자연성이나 원시성, 즉 거친 이미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리라. 실제로 부드럽고 완만하며 느슨하게 처리되는 작품의 곡선 및 곡면은 애무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킬 만큼 곱다.
물론 화강석의 경우에는 대리석과는 달리 약간 거칠기도 하지만, 작품의 외형을 감싸는 선과 볼륨은 전체적으로 곱고 부드러운 시각적인 이미지로 일관한다. 이처럼 균질의 고운 표면질감은 당연히 시각적인 흡인력을 지닌다. 비록 차갑고 거친 이미지의 돌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부여하는 인물형상은 아주 부드럽고 온화하며 너그러워 보인다. 이러한 시각적인 인상은 돌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친근감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작품의 표면에 부여하는 곱고 부드러운 이미지는 작품의 내용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인체조각에 부여하는 내용, 즉 ‘꿈’이나 ‘미소’, ‘소망’ 따위의 명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달콤하고 따스하며 부드러운 정서를 발생시킨다. 이는 여성적인 정서에 가까운 것이다. 실제로 작품의 대다수는 여성의 이미지에 합당한 온화한 자태 및 감정을 반영하고 있다. 두상에서부터 전신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 및 자태는 모두 다소곳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기조로 한다. 무엇보다도 근육이나 골격이 강조되는 남성의 인체와는 다른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신체적인 특징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고상한 시각적인 이미지로 재해석된다.
비록 세부를 과감히 생략하거나 단순화함으로써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을지언정 작품 전체를 감싸는 부드러움과 섬세한 표면질감을 통해 여성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작품에 따라서는 형태를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처리, 실루엣과 같은 형상의 경우도 없지 않다. 일체의 세부묘사를 생략함으로써 단지 전체상으로만 인체의 개략적인 형상을 파악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실루엣 형식의 형태는 구체적인 형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풍부한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다시 말해 감상자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조형적인 상상력에 의해 다양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는 감상자가 차지할 수 있는 조형적인 공간을 확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더 이상 생략하거나 압축할 수 없을 만큼 간명한 형상은 깊은 심미적인 표현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다.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하여 거기에 아름다운 조형미를 부여하는 것은 심미에 관한 문제이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즉 탐미적인 시각에 의
해서만 분별되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다름 아닌 심미의 세계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마치 진흙으로 만든 판을 구부려 놓은 듯싶은 형태의 인체형상이 있다. 구부리고 접는 방식처럼 보이는 일련의 판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인체작업은 그 발상이 새롭다. 인체는 머리 몸통 팔 다리 등 모두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고정관념을 깨고 원형을 판형으로 바꾸어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개념의 인체조각을 성립시키게 되었다. 이로써 납작납작한 인체형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몇 개의 판형을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인체형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판형을 구부린다든가 접는 작업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실제 작업과정에서는 단지 돌을 자르고 깎아내며 쪼아내는 방식으로만 작업한다. 그러기에 순간적으로 돌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유연한 판형의 이미지가 시각적인 착각을 유도, 구부리고 접는 방식의 판형구성작업처럼 보일 뿐이다. 여기에 조형적인 묘미가 있다.
이렇듯이 판형의 이미지로 되어 있는 작품에서 그는 또 한 가지 조형의 변전을 시도한다. 인체의 형상 가운데 발 부분을 음각 형식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반전이다. 인체 전체는 환조인데 바닥면에 닿은 발은 음각이라는 사실은 다름 아닌 조형의 묘미이다. 일상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는 예민한 미적 감수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두상 작품 가운데 목도 없이 단지 여성의 머리만을 형용한 경우가 있는데, 머리카락 모양이 마치 자라나는 식물, 또는 물속의 수초처럼 보인다. 얼굴에서도 코와 입, 귀도 없이 단지 점을 찍어 놓은 듯싶은 작은 음각형태의 눈만을 묘사했다. 기묘한 형태인데도 귀엽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는 얼굴 표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파격의 조형적인 발상의 소산일 따름이다. 이와 같은 작품의 경우에는 시각적인 즐거움이 만발한다. 짜릿한 조형의 마술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작품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 전반은 더 이상 압축할 수 없는 지경까지 압박해 들어가 만날 수 있는 조형미를 지향한다. 단순한 아름다움은 지적인 희열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단순함은 싱겁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적인 형태의 단순화가 함축미를 의미할진대, 이는 궁극적으로 정제된 정신의 향기로 현현하게 된다. 인체조각에서 형태를 단순화할수록 내적인 정서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공허한 놀음에 그칠 수 있다. 형태가 간결할수록 되레 내적인 정서는 강화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그의 작품은 시각적인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탐미적인 접근을 기다린다. 그의 작품은 애초부터 돌이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경질, 즉 차갑고 견고하고 무거워서 융통성이 없는 듯싶은 인상을 유연하게 변모시키는데 초점을 모았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강성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부드럽고 온화한 표면질감과 유연하고 너그러운 곡선 및 곡면처리 기법인 셈이다. 여기에서 그는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즉, 돌이라는 재료를 진흙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재질로 변모시키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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