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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7일(목요일)

데뷔 50년 앞둔 민중가수 박문옥

빛고을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 가수·작곡가·음반제작자
민중가요 역사 한 중심에 우뚝… “나는 광주음악 세르파”
2023. 06.27(화) 12:24확대축소
‘공인된 광주 첫 창작곡 보유’
‘지역 최초 녹음실 설립 운영’
‘지역 첫 민중(운동)가요 음반(테이프) 제작’
‘지역 가수들만의 첫 기획 옴니버스 앨범<예향의 젊은 선율> 제작’
‘광주지역 가수로는 첫 전국 순회콘서트’
‘지역 최초 헌정 음반을 받은 가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대극장 공연 지역 첫 대중가수’…
가수 박문옥(69)에게 붙은 수식어는 참 많다. 그것도 모두 ‘처음’이나 ‘최초’라는 타이틀들이다. 노래 잘하고 재능 좀 있다 싶으면 중앙무대로만 진출하고 화려한 영광을 좇던 지난 시절, 음악 열정을 오직 지역에서 쏟아온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물질로 보상해 줄 수는 없지만 박문옥에겐 더 찬란한 수식어를 달아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위대한 여정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혼자, 묵묵히, 한눈팔지 않고 걸은 그에 대한 찬사는 어떻게 형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데뷔 40주년 기념공연


척박한 광주 음악바닥을 온몸으로 지켜내던 박문옥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어쩌면 장강의 뒷물결에 밀려 물러설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박문옥은 여전히 현역이고,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027년이면 데뷔 50주년을 맞는 그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광주 대중음악의 반석이자 기둥
앞서 간략하게 소개했지만, 그의 족적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대중음악, 그리고 광주 정신을 모태로 하는 민중음악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이라면 ‘박문옥’ 이름 석자는 익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전남 함평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박문옥이 4살 때 마을 잔치에서 들리는 북소리의 굿거리장단을 기억하고 북을 쳤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한 얘기다. 학다리고등학교 미술부장을 지냈을 정도로 그림에도 소질이 있어 전남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중·고교 미술교사로 일했던 그가 어느 순간 음악인으로 전향한 것도 다 근거있는 일이었다. 미술 공부하던 짬짬히 기타치고 노래하던 재미에 빠졌고, 전남대학교 캠퍼스송 경연대회 우승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지역 언더그라운드 음악계 신성이었고, 결국엔 후배들과 트리오로 짝을 이뤄 출전한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 일약 전국구에 이름을 올린 이력의 박문옥으로선 음악의 길이 뜻밖이 아니었던 셈.
전남대 트리오 왼쪽부터 최준호 박문옥 박태홍


1984년 말 ‘음악만을 하고 싶어서 운명처럼’ 미술교사를 그만두고 가수로 돌아온 박문옥은 이후 광주에서 오직 음악과 함께 살았다. ‘소리모아’라는 팀 또는 솔로로 노래하고 곡을 쓰는 가수이자 작곡가로 살았고, 녹음실 하나 없던 지역의 척박했던 음악판을 키우고자 녹음실을 열고, 돈 없고 길 모르던 후배 음악인들의 형이자 안내자로서 민중음악을 이끄는 길을 걷는다. 말 그대로 광주음악의 주춧돌이자 기둥이요, 집안 어른 같은 역할로 ‘광주음악의 대부’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제대로 된 카세트 테이프 녹음시설 하나 없던 시절, 군부의 감시 눈초리가 엄혹하던 그때, 창문에 담요치고 후배 민중가수들이 만들어 온 곡을 녹음해 주던 그가 본격적인 녹음실을 열고 민중음악을 본격적으로 기획, 녹음, 테이프제작 등까지 해주었다는 1980년대 말~90년대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다.

이런 그의 지역 음악에 대한 헌신이 고스란히 세상에 알려진 일화도 가슴을 울린다. 박문옥이 2017년 음악 활동 40년을 맞았을 때 지역에서 음악하던 후배들이 헌정 음반을 바친 일이다. 앞엔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을 아름다운 이야기고, 그건 ‘광주음악의 대부’가 된 박문옥의 음악적 역할과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가 평생 광주를 떠나지 않고 지켜왔으며 음악 외엔 외도하지 않으며 헌신해 온 유일한 음악이었음을 후배들이 인정했으니 ‘제대로 터진 사건’이다.
5월 거리굿 출연자들


‘지역’이라는 가치를 지킨 음악인
이미 지역에선 ‘팬’을 가질 만큼 이름을 알려가던 박문옥이 제1회 대학가요제 동상을 타자 서울무대에서 러브콜이 왔다는 사실도 알려진 바다. 그는 거부하고 지역에 남았다. 돈과 연줄, 악다구니가 없으면 서울에서도 통하지 않던 상업 음악의 세계는 그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서정적이지만 세상의 진솔하고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를 노래하며 살고 싶었던 게 박문옥의 꿈이었다. 결국엔 5월의 아픔이 민중가요를 낳고 그 한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지역음악인의 길은 어쩌면 첨부터 예견된 길인지 모르겠다.

혹시 미련이 남거나 아쉬움은 없었을까? 박문옥은 말한다.
“내가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가 되진 못했지만 전혀 아쉽지는 않고, 이 순간까지 광주라는 공간에서 음악할 수 있었다는 것, 오래 버티며 지역에서 지역적인 색깔로 음악하기를 실현해서 광주의 후배들이 저를 보며 ‘저렇게도 살아남을 수 있구나’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데 만족하고, 또 자랑스럽습니다”.
자신의 음악,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음악 인생, 자존심을 지키려는 삶을 살았고, 그는 그런 자신의 음악적 삶을 가리켜 ‘광주음악의 세르파’였다고 했다. 주인공이 등정에 성공하도록 돕는 진정한 프로, 등반자보다 더 프로다워야 가능한 길을 그렇게 표현했다. 적절하다.
5월 민중항쟁 10주기 추모 거리굿


그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 ‘로컬리즘’이라는 말이 깊이 다가왔다. 자기가 발담고 있는 지역에서 자기 색깔을 담은 음악으로 먹고 살면서 지역민의 응원도 받는 그런 음악인 또는 그런 음악 활동을 그는 그렇게 부른다. “영국에선 프로축구 1부리그에 열광하지만 사실 팬들은 동네의 11부리그 축구팀도 응원한다. 할아버지가 응원하던 팀을 손자도 응원한다. 11부 선수들이 주민의 응원을 발판삼아 1부로 가는 것 아니냐. 그게 로컬리즘이다. 우리도 그런 팀, 그런 가수를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함이 아쉽다”. 안타깝지만 따끔한 질책이다.

50주년 앞둔 새로운 계획
박문옥의 꿈은 진행형이다. 우선 50주년 이전에 적어도 두 개 정도의 신곡 앨범을 낼 예정이다. 이후 50주년엔 지역 후배음악인들을 격려하는 ‘후배들에게 헌정하는 앨범’을 내고 싶단다. 40주년에 선배로써 받은 헌정앨범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 기가 막힌 발상이지만 박문옥스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원조 소리모아에 늦게 합류한 오정묵과 함께 매 연말 여는 무료콘서트 ‘더힐링콘서트’도 계속하고, 여력이 된다면 ‘지방가수 존중해주기 운동본부’같은 걸 해보겠단다. “내가 평생 해왔고, 또 가슴 아팠던 부분, 지역에서 음악하는 이들이 성공하는 사회 분위기를 위한 운동이죠. 언론이나 정치부문에서 도와주면 될 것 같다”는 그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옥렬 글쓰는 사진가>



<박문옥은>
광주에서 활동하는 작곡가이자 가수. 지역최초 전문 음악녹음실 소리모아 스튜디오 설립 운영중, 100여 장 음반 제작. 개인 콘서트 10회, 6장의 정규음반. 1장의 헌정음반, 3장의 라이브 실황음반 발표. ‘직녀에게’ 작곡, ‘누가 저 거미줄의 나비를 구할 것인가’, ‘양철매미’, ‘사랑은 강물처럼’, ‘운주사 와불 곁에 누워’, ‘목련이 진들’, ‘가을 가을 가을’, ‘호수’, ‘꽃잎인연’, ‘솔꽃’, 광주비엔날레 주제가 ‘마음의 문 열고(신형원 노래)’ 등 작곡 또는 노래‘

- 1976 빈센트라는 이름으로 포크 팀 구성(4명)
- 1977 (최준호, 박태홍과 함께 트리오로) 제1회 MBC대학가요제 ‘저녁무렵’으로 참가 동상 수상-교직에 몸담다 사표내고 1983 -트리오 ‘소리모아’ 결성, 1985년 첫 독집 음반
-1986 광주에서 지역 최초의 전문 녹음실인 ‘소리모아 스튜디오’ 설립(노래패 친구, 정세현(고 범능스님), 박종화 등의 민중가요 녹음 제작
-1994 소리모아 해체
-1997년 부터 매달 창작곡 발표하는 ‘소리모아음악회 박문옥 1인 매월 콘서트’
-2007 데뷔 30주년 5대도시 순회공연
-2017 데뷔 40주년 헌정음악회

김옥렬 글쓰는 사진가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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