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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7일(목요일)

호남검무 명인 김자연 선생

한진옥류 호남의 춤 지키기 60년…호남검무 마지막 명인
“광주시 무형무형문화재 종목지정 큰 보람…춤맥지켜져야”
2023. 06.15(목) 10:17확대축소
70대 중반의 전통무용가 김자연(金自然) 선생을 만났을 때 순간의 느낌은 멀고 먼 길을 돌아와 피곤에 지친 그런 모습이었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었을까?’ 되돌아보며 회억에 젖어 있는, 마치 바위틈에서 힘겹게 버티고 서 있는 작은 소나무 같은 느낌, 황량한 벌판에 외발로 서 있는 한 마리의 학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무속에서는 ‘신내림’이라는 것이 있다. 무당이나 박수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에게 신이 붙는 일을 일컫는다. 전통무용가 김자연은 신내림이 아닌 ‘춤내림’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마저 포기하고 일평생 ‘쾌자’ 하나 걸치고 조심조심 세상을 건너왔다.

어머니 양양님(梁良臨)은 목포 출신의 무용가다. 춤을 추고 싶어 목포권번에 들어가 이대조 선생의 문하에서 승무·살풀이·검무 등을 배워 대통령상까지 수상했다. 한국화가 남농 허건 선생이 ‘학처럼 고고하고 정결한 춤을 춘다.’ 하여 ‘양학(梁鶴)’이란 호를 지어주었다고 전한다.

김자연은 어머니가 집에서 춤을 추고 가르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춤을 따라 추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 춤을 배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어머니 몰래 최청무용학원에 들어가 춤을 배웠다. 소질을 알아본 숭의여중 김정숙 선생이 등록시켜준 것이다. 전남도청에 근무하던 아버지가 딸의 재능을 알고 시립국악원 한진옥 선생에게 데려가 주었다. 당시 춤을 배우고 있는 수강생은 100여 명이 넘었을 정도로 수강생이 많았다.
살풀이 춤


1974년 광주시립국악원에서 춤을 가르치던 한진옥 명인을 만난 뒤 10년 가까이 한진옥 선생의 모든 춤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살풀이, 부채춤, 소고춤, 장고춤·입춤, 승무, 검무, 바라춤, 삼고무, 오고무, 화관무, 한량무, 소고무, 설장고춤, 장고춤, 학춤, 양반탈춤, 민요무·선녀무에 이어 한진옥 선생이 직접 황진이의 사랑을 춤으로 창작한 황진무까지를 모두 배웠다.

‘춤내림’이 있어서인지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알 정도로 배움이 빨라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칭찬이 좋아서, 춤이 좋아서, 춤을 추면 몸이 아프지 않아서 60년 세월을 춤 하나 붙들고 몸부림으로 살아왔다. 어쩌면 그 춤은 어머니의 유산이기도 했다.

그가 그토록 못잊어 하는 한진옥(韓振玉,1911-1991)선생은 전라도 춤의 대가이다. 전남 곡성 옥과 출신으로 춤뿐만 아니라 북장단과 호남제삼현육각에도 능한 무악(舞樂)의 명인이었다. 특히 그의 춤은 기방의 교태미나 ‘끼’가 아니라 남성다운 굵은 선의 춤사위로 활력과 장쾌함이 특징이다.
호남검무 독무


부친 한상학은 무악인으로 협률사 단장을 지냈으며 어머니 임처녀는 유명한 당골 예인이었다. 여동생 한애순(韓愛順, 1924~2012)은 여류명창으로 광주시 지정 지방무형문화재 1호 심청가 예능보유자다. 그러나 한진옥은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헌 조사가 이뤄지고 과정에서 안타깝게 타계하고 말았다. 그의 타계는 전라도 춤의 맥이 끊어지는 지는 아찔한 순간이다. 목포 출신의 이매방(李梅芳,1926~2015) 선생이 있었지만 오래전 전라도를 떠남으로써 춤은 원형에서 상당히 멀어졌다는 평이었다.

한진옥은 장판개 명창 문하에서 흥보가를 배우고 옥과 출신의 명무 이창선 문하에 들어 다양한 춤을 섭렵했다. 스승인 이장선과 함께 임금이 머문다는 대정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검무 명인 신갑도, 이창조 선생을 두루 사사했다. 20대 초반 전주전국무용대회와 서울전국무용대회,평양전국무용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고향과 가까운 남원 권번의 고전무용강사, 광주국악원과 광주시립국악원 춤 사범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다.
한진옥 선생과 함께


그러나 안타깝게도 젊은 시절의 제자 김다복과 강여아·강수정이 잇따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말년의 제자 임순자도 타계함으로써 광주·전남지역의 제자는 유일하게 김자연만 남은 셈이다. 그래서 김자연은 한진옥류의 모든 춤, 그 가운데서도 호남검무 만큼은 꼭 지켜내야 한다는 각오로 무용학원에서 가장 열심히 가르쳤다.
제14회 창원 야철국악제 대상인 국회의장상을 비롯해 제10회 여수 진남 국악제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경상남도지사상 등을 수상했다.

光州한진옥류호남검무보존회 (김자연 무용단)은 서울 한국문화의 집에서 열린 ‘가엿고와 발 디딤새’ 공연을 비롯해 ‘한국의 명인명무전’ ‘국립나주박물관 호남의 임진왜란- 그 승리의 기록전’ 국악방송 국악콘서트 ‘판’ TV 출연을 비롯해 수많은 공연에 초대를 받았다. 초창기 제자였던 김다복과 김자연의 활동기록은 국립무용원의 기록에도 모두 수록돼 있다. 수피아여고 출신의 김다복와 김자연은 동갑내기로 절친한 친구이자 라이벌 이기도 했다.

“다복이는 저보다 먼저 선생님께 갔고 새로 들어온 수강생들의 기초를 가르칠 정도로 실력 있는 친구였는데 안타깝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저 또한 너무 외롭게 이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김다복에 대한 회고이다.
김자연은 1994년 9월 광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김자연 전통무용 발표회」를 가졌다. <호남검무> 출판을 위해 선생께서 전수해 주신 춤사위를 모두 사진으로 찍어 놓는 작업도 병행했다. 그녀는 대학 무용과 출신 제자들과 함께 한진옥선생으로부터 전수한 춤을 정리하여 무대에 올리고 책으로 발간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김자연과 제자들


그 가운데서도 2016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가진 ‘검의 노래’와 2022년 한진옥류호남검무 광주광역시무형문화재 종목지정기념 공연은 잊을 수가 없다. 60년 동안 배우고 지켜온 호남검무를 제대로 보여준 무대이자 특히 그토록 열망했던 한진옥류 검무가 광주의 무형문화재 종목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날이 오기까지의 오랜 세월은 김자연에게 눈물과 한숨의 시간들이었다. 문화재지정을 받기 위한 크고 작은 다툼도 있었다. 그러나 김자연은 오로지 한진옥류의 춤을 제대로 지키고 이어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춤을 추고 무대에 섰다.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한진옥류 춤 보존회와 사)光州한진옥류호남검무보존회를 만든 것도 오직 한진옥 선생의 춤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지난 2016년 「검의노래」 공연을 마친뒤에는 제자들과 함께 한진옥 선생과 부인을 합장해드렸다. 한진옥 선생은 기독교 신자였고 부인은 무속인이었기 때문에 한 곳에 묻히지 못했기에 제자로서 한을 풀어드린 것이다. 김자연에게 한진옥은 큰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모든 발걸음이 춤이고 손짓이 춤이었다.
김자연 한진옥 김다복 강수정(왼쪽부터)


“춤은 내가 추는 것이 아니라 몸이 추는 것이다. 맺고 푸는 호흡의 예술이란다. 정중동의 춤, 춤에도 혈과 맥이 있다.” 는 생전의 말씀을 기억하며 선생님의 춤을 지켜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김자연은 선생님 생전에 많은 칭찬을 들었다. 선배들도 많았지만 유독 김자연이 춤을 잘 춘다고 칭찬을 했다. 한참 물이 올랐던 20대 후반부터 국립국악원 주최 경연대회 검무 최고상, 제1회 민속예술경연대회 승무 대상, 민속경연대회 살풀이 최고상 등을 휩쓸었다. 임방울 국악제를 비롯해 목포, 서울KBS국악제, 중국연변예술대학콩쿠르 등의 전국단위 규모가 큰 대회의 심사위원 역임했다.

김자연은 온몸으로 추는 춤이다. 발디딤새와 손놀림이 자유롭고 그 표정 또한 혼연일체를 이룬다. 특히 검무를 출 때의 비장함이나 절도감, 크고 작은 동작들이 조화를 이뤄 검무의 백미를 보여준다. 호남 검무이 특징은 활달하고 담백하며 세기(細技)가 다양하다.

검무는 신라시대 시작된 춤으로 검기무(劍器舞) 또는 황창랑무(黃昌娘舞)라고도 한다. 신라소년 황창랑이 백제왕을 죽이고 자신도 잡혀 죽자 신라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칼춤을 춘 것을 시작으로 고려를 거쳐 조선중기까지 이어졌다.
조선 28대 순조 때 궁중정재로 궁중에서 연희되었던 검무는 전립(戰笠)에 전복(戰服)을 착용하고 여기(女妓)에 의해 전투적인 춤으로 추어오다가 전투적인 요소가 희석되고 기교적인 춤으로 바뀌었다. 1900년대 이후에는 칼의 길이가 짧아지고 무구화(舞具化)된 돌리는 칼을 사용하여 시종 평화롭고 유연한 동작으로 연결되는 무무(武舞)의 형식을 띄게 되었다.

호남검무는 한말이후 명무(名舞)로 이름난 신갑도·이장선·이창조 등을 거쳐 한진옥으로 이어져 왔다. 호남검무는 염불로 시작하여 ‘반염불’과 ‘도드리’과정으로 진행하다가 ‘타령’에서 ‘빠른타령’으로 이어지고 굿거리장단 과정을 거쳐 ‘자진타령’으로 끝맺음을 하는 비교적 어려운 춤이다. 의상도 ‘한삼’을 손에 들고 ‘전립’을 쓰는데 한삼과 까치동저고리는 무지개 색으로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상의는 남색쾌자에다 치마는 홍색이어서 어떤 춤보다 현란하고 화려하다.

김자연은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 김다복·정선화·이순덕과 함께 일본 거류민단의 초청으로 무려 4개월 동안 일본 각지를 돌며 순회공연을 하게 된다. 일본으로 초청했던 거류민단에서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김자연의 독무를 따로 넣을 정도로 갈채를 받았다,

이후 잠시 서울에 머물며 무용학원 강사를 지내고 있는 동안 젊은 나이에 위암을 앓아 한동안 춤을 추지 못했다, 또 1974년 개원했던 시립국악원이 86년 폐원되고 89년 광주시립국극단으로 개편되는 바람에 춤과 멀어졌던 김자연은 91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해성무용학원을 열었다. 학원 문을 연 것은 한진옥 선생과 약속한 일이고 제자들을 잘 가르쳐서 춤의 맥을 이어주고 싶어서다.

아팠던 몸이 나는 것 같았다. 밤늦도록 아이들과 소리소리 지르며 춤을 추었다. 제자들이 대학무용콩쿠르를 비롯해 각종 대회에 나가 최고상을 휩쓸기 시작했고 한동안 해성무용학원의 이름이 전국의 무용인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김자연은 제자들을 기르면서 한진옥 선생이 들려주었던 춤추는 사람의 기본, 즉 인간교육을 가장 중시했다.

제자들이 전국학생종합예술제에 나가 대상과 금상,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비롯해 전국민속예술제 최고상, 각종 대학 콩쿠르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동아콩쿠르, 대사습, 국제콩쿠르, 신인콩쿠에서 대상을 받아 군 면제를 받은 제자도 5,6명이나 된다. 여자 제자로 대상을 받거나 금상·은상을 수상한 사람은 여럿이다. 김청우(국립국악원수석)을 비롯해 김재희, 이정일 김민종 신동혁 류이룬 등이 대상을 받았고 금상 수상자도 김효선 나혜아 장수지 박세진 박은하 정유경 나수진 등 다 헤아릴 수 없다.
호남검무 군무



혼심을 다해 키운 제자들 가운데는 국립국악원이나 대전, 여수, 청주 시립국악원 단원, 중고등학교 교사로서 무용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스무 명이 넘는다 김청우, 박은하, 정유경, 박세진, 박은애, 나수진, 김효선, 이슬, 장수지, 나혜아, 김민종, 이정일, 조은비, 류일훈, 신동혁, 문다영, 노현서, 김나라, 노하늘, 김평화, 박하겸, 나성은, 임가현 등이다 .

그는 제자들이 잘 자라서 한사람의 훌륭한 무용인이자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칠순을 넘긴 지금도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춤을 가르친다. 지금까지 춤을 배워간 사람도 1천며명이 넘는다.
“한진옥선생님의 예술세계는 무진무궁했습니다. 선생님의 춤사위는 진솔, 정확하며 품격을 갖추신 춤꾼으로 백 년에 한사람 태어날까 말까 하는 풍류가이십니다. 평생 정한의 아픔과 예술의 본질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으며 깊고 깊은 내공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훌륭한 인품을 가지셨고 예술의 본질과 사람으로서의 덕목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선생님 한진옥을 기억하는 김자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은 춤 인생의 꽃을 다 피우지 못하고 타계하신 선생님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제자로서 그 춤맥을 지켜내기 위해 겪었던 고초가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60년 춤인생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인생은 한바탕 엇박자 춤”이라고 했던 어느 원로의 말을 다시 꺼내며 “그러나 춤을 추는 그 순간은 너무 행복했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지형원 발행인>






■주요 약력
1949년 12월 26일생
1974~1984 광주시립국악단 단원 (한진옥선생님사사)
1982년 일본 8개 도시 순회공연
1991~현재 해성무용학원장
1991~현재 김자연무용단장
1998~현재 한진옥류 춤 보존회장, 현재 사)한국무용연합회장
2020~현재 사)光州한진옥류호남검무보존회 이사장
■수상경력
1976~1984 전국민속콩쿨대회 검무 최고상
1980 제1회 국립국악경연대회 승무 대상
1983 민속경연대회 살풀이 최고상
1994 제1회 광주예술문화상 국악부분 공로상
1998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광주광역시대표 호남검무 (경상남도지사상)
2004 창원야철국악대전참지도자상수상 (국회의장상)
■심사경력
목포, 창원, 여수, 마산, 완주, 진해, 해남, 담양, 세종 수원, 군포, 전주, 서울KBS국악제, 광주임방울국악제, 경기국악제, 중국연변예술대학콩쿨, 남도국악제등 300회이상 심사위원 심사위원장
■光州한진옥류호남검무보존회/김자연무용단 주요활동 실적
2023. 2 아시아 공동체 전승문화 플렛폼 호남검무 참여
2022.7.31. 한진옥류호남검무광주광역시무형문화재 종목지정기념공연
달빛동맹10주년기념 월야무진기행 춤예인 한진옥공연 (518기념문화센터)
2022.4월 (사)光州한진옥류호남검무보존회 정기발표회 (빛고을시민문화관공연장)
2021.6월 (재)국악방송 국악콘서트 ‘판’ TV 방영
2021.2월 제104회 한국의 명인명무전 (광주빛고을시민문화관)
2020 제103회 한국의 명인 명무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2019 3.1독립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기념 한국의 명민명무전 (국립국악원 예악당)
2019.10.20 남도 명인·명창 국악의 향연 (진도향토문화회관)
2018 국립나주박물관 ‘호남의 임진왜란 -그 승리의 기록’展 초청공연
제40회 남도국악제 초청공연 (곡성문화체육관)
2017 김자연무용단 정기공연 ‘남도에 꽃 피우다’(전통문화관서석당)
-대구/광주 달빛동맹 전통춤한마당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광주국악방송 개국3주년 초청“행복한 초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국립나주박물관 출토 100년 기념 ‘신촌리 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展 초청 공연
2016 김자연무용단 故한진옥류호남검무발표회 ‘검의 노래’ (빛고을시민문화관)
서울시무형문화재 제39호 박종선류 아쟁산조보유자와 국립국악관현악단원의
삼현육각 연주로 한진옥류 호남검무·살풀이공연)
2015 산울림‘군산과 익산의울림’ (호남검무소개영상 출연 ­ 전북방송)
2013 여수 진남 국악제 축하공연 (여수 진남관 공연장)
2009 가얏고와 발 디딤새 (서울 한국문화의 집)
2008 제10회 여수진남국악제 문화체육관광장관상’수상
1994 김자연 전통춤 발표회
1993 광주MBC방송 문화마당 호남검무 출연
■호남검무관련 입상 실적
- 2010 제14회 창원 야철 국악제 대상 국회의장상’ 수상
- 2008 제10회 여수 진남 국악제 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
- 1998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노력상 경상남도지사상 수상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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