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올 한 해 어떤 결심으로 살겠습니까?
| 2023. 01.03(화) 20: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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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기장을 연다. 2023년 1월 1일, 첫 줄을 어떻게 시작할까? 이번엔 첫 줄을 비워놓고 둘째 줄부터 시작한다. “마음이 많이 아플때 /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 몸이 많이 아플때 /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지난해 생략했던 <어떤 결심 / 이해인> 시작 부분을 썼다. 써놓고 보니 ‘하루를 전 생애로 생각하기’나 ‘삶을 꼭 한순간씩만 살기’나 선문답처럼 실천궁행이 어려운 ‘결심’이다.
글을 쓰다 막히면 늘 하는 대로 옛 일기장을 뒤적인다. 옛 일기장은 열댓 권이 넘는다. 나만 읽을 수 있는 비결서이자 장편 소설이다. 옛일기장을 읽을 때면 먼 옛날 하루하루가 즐거운 추억으로 다시 살아난다. 어떤 추억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 마치 남의 인생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들리기도 한다, 곰곰이 더듬어 재생한다. 이제 추억을 먹고 살 나이, 추억을 더 만들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옛 새해에 나는 어떤 결심을 일기장에 기록했을까? 2021년 1월 1일, ‘인생은 질문이다’라는 제목이 첫 줄이다. 2017년 첫 장은 ‘썩지 않도록 매일매일 모과처럼 나를 닦자’, 2016년 새해는 ‘필즉도생 (筆則道生 ; 글로 쓰면 길이 생긴다)’, 2015년엔 ‘수처작주(隨處作主: 가는 곳마다 그곳의 주인이 되라)’라는 사자성어를 차용했다.
돌이켜 보니 모두 선문답처럼 추상적 잠언이다. 추상적일수록 폭넓게 써먹을 수 있다. 구체적인 실천이나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두루뭉술 자위하며 넘어갈 수 있으니 속이 편하긴 하다. 올해는 아예 새해 결심을 쓰지 말고 그냥 옛날 결심을 복습만 하기로 했다. 남는 건 추억뿐이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그 많은 추억 돌이켜 생각하며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외우듯 외워본다.
2023년 첫 줄은 ‘꼭 하루씩만 살기, 꼭 한순간씩만 살기’라고 써본다. 올해의 목표가 아니다. 지난해 추억을 베껴 쓴 복습이다. 하루씩만 살겠다는데 365일 장기 목표가 있을 수 없다. 밥 먹을 때 두 끼 세 끼를 한 끼에 몰아 먹을 수 없듯이 삶도 하루에 이틀 사흘을 몰아 살 수 없다. 하루씩만 살 수 있다면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 두려움도 없어지겠다. 덕분에 마음도 몸도 아프지 않게 될 것 같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보니 하루씩만 사는 일은 내 뜻대로 쉽게 이뤄질 일이 아니다. 세상일 중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태어남부터 벌써 내 뜻은 아니다. 마지막 일인 죽음도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우연의 법칙에 따라 우연히 인생 열차에 올라탄 우리는 언제 어느 역에서 갑자기 내리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 어느 역에서 갑자기 밀려 내려도 덤덤할 만큼 내 욕심을 하루치씩만큼 줄일 수 있나! 신경림 시를 외워본다.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 / --- / 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 ---/ --- / 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 / 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 / 산은 파랗고 강물은 저리 반짝이는데 <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 신경림>” .
김종남< 언론인>
김종남 위원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