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삶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2017. 04.04(화) 21:08

"요즘 삶의 의미를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한말이다. 무슨 답을 바라고 한 말 같지는 않다. 대꾸가 떠오르지 않았다. ‘삶의 의미!’,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다. 대학생 때 하숙방에서 소주잔 돌리며 멋모르고 떠들던 주제였었다. 군 제대 후에는 취업을 못해 방황할 때 가슴앓이를 하던 주제였다.

후배는 장년도 아닌 노년이다. 노년에 ‘삶의 의미’로 가슴앓이라--. 후배는 정년 후 친구회사 일을 도와오다 최근 그만 두었다. 갑자기 출근할 일이 없어지니 허전함이 밀려왔을까. 개그말로 그는 ‘예일대학생(예순 넘도록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건국대학생(건강하게 국민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처지에서 보자면, ‘65세 정년이 너무 빠르다’고 말하는 대학교수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삶의 의미’가 정작 필요한 사람은 일자리 없는 노년일 것 같다. 청년 장년들은 직장에서 매일 일에 몰두하여 생계 해결해야지, 또 가족 돌보아야지, 삶의 의미 찾느라 고민할 겨를이나 있을까, 일하는 자체가 사는 의미였을 것이다. 날마다 몸을 묶어놓는 일자리가 없어지고 가족부양의 굴레마저 헐거워진 노년에는 사실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이끌어줄 ‘사는 이유, 동기, 보람’이 더 필요하다.

일자리를 오래전 떠난 나는 그동안 어찌 지내왔나. 고민하며 삶의 의미를 찾았던가? 돌이켜보니 심심치 않고 재미도 있었다. ‘한문 배우기, 인문학 강좌듣기, 연재칼럼쓰기, 올레길 둘레길 걷기, 남도 한바퀴, 멘토링 봉사--.’ ‘삶의 의미’라고 내놓기에는 그렇지만 작은 꿈들도 있었다. 한문배우기는 ‘손주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고 싶다’, 글쓰기는 ‘잘하여 책 하나 내고 싶다’는 작은 꿈들이다.

‘의미 찾느라 고민하지 않고도,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 자위해본다. 그래도 가끔 발걸음에 힘이 빠지는 날이 있다. 어떤 날은 등대 없는 밤바다를 헤매듯 막막함이 느껴지는 때도 있다. 복권 살 때 당첨되어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 꿈처럼 작은 꿈들은 검불 같이 가볍다. 그런 날은 당장 날아가지 않고 오래 꺼지지 않는 큰 꿈을 고민한다. ‘삶의 의미’가 바로 오래가는 그런 큰 꿈 아닐까.

“죽는 날까지, 되도록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언론인 홍사중씨가 ‘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면서 78세 때 쓴 꿈이다. 그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에서 그는 “매일매일 늙음을 배워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후회 없이 늙고 후회 없이 죽음을 맞기 위해--”라고 말한다. ‘죽음의 고별사를 미리 써놓은 여류시인’등 그는 후회 없이 죽음을 맞았던 많은 예를 들었다.

사람마다 삶의 의미는 다 다르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생노병사 사건을 만나면서 그 의미도 변한다. 인생을 ‘매일 하루씩 죽어가는 것’이라고 보는 노년 때, 삶의 의미는 ‘죽음의 의미’일 수도 있다. 고민도 ‘어떻게 잘 사느냐’는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잘 죽느냐’는 고민이 된다.

시인 이성복은 “인생이 뭔지 고민하지만, 고민하는 것 말고 달리 인생은 없어요.”라고 말한다. ‘의미를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민만 하라?’ 재일 한국인으로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느라 오래 방황했었던 강상중 동경대교수도 <<고민하는 힘>>에서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며 ‘고민하는 힘’은 ‘살아가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독자들에게 “고민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라”고 권한다.

홍사중씨가 말하는 ‘배움’이나 강상중씨가 권하는 ‘고민’이나 그 알 수 없는 끝은 ‘의미’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고민을 글로 쓰는 일이다. 기도하듯 글로 쓰는 순간 ‘의미’가 생겨난다. “--- // 행복은 여기에, 그리고 지금 있습니다 / 걱정거리를 떨쳐버렸습니다 / 서두르지 않고 가야할 곳이 있으며 / 해야 할일이 있습니다 ” 틱낫한 스님이 명상걷기를 하며 부른 노래 말을 외워서 써본다.

김종남<언론인>


김종남 위원 mht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