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사랑해’ 하트 손 흔드는 계수나무
| 2016. 09.12(월) 21: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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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나무, 달 속에 있다는 계수나무와 옥토끼 생각이 난다 / 수채화처럼 맑은 하트형 잎사귀들, 솜사탕냄새가 난다 / 나의 집 앞에 계수나무, 내가 집에 드나들 때마다 ‘사랑해’ 앙증스럽게 하트 손을 흔든다” ‘계,수,나’를 살려 각 행의 앞 글자로 했다. 시라고 하기 보다는 그냥 느낌을 모아놓은 세 줄짜리 문장이다.
예시가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아 앞 글자를 지정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쓴 ‘강아지풀’ 3행시도 들려주었다.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꼬리를 치며 반긴다 / 바람이 불지 않아도 꼬리를 흔든다 / 가만히 손대면 손바닥을 간질인다 ”
무궁화가 꿈나무인 도현이는 “무궁무진한 / 궁전처럼 / 화하고 아름다운 무궁화 ”라고 했다. 은목서를 좋아하는 혜영이는 “은목서의 꽃은 언제 필까, 기다리며 물어보면 / 목청껏 답하는 은목서의 향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 서서히 피어나겠지, 그렇게 은목서의 향기에 귀 기울여 기다려본다.” 은행나무를 택한 구인이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커가는 너를 보면 / 행복하단 걸 느낄 수 있어 / 나는 행복하지만 너는 어떠니? ”
다들 앞 글자를 나무이름과 맞추느라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앞 글자를 무시하고 느낌을 자유스럽게 써보라고 해도 아직은 그게 더 어려운 모양이다. ‘로즈마리’를 꿈나무로 정한 수범이는 글자 수에 맞춰 4행시를 썼다. “로, 로즈마리야 나의 로망은 / 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이었어 / 마, 마이 프렌즈 로즈마리, 사랑해 /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 미나리, 개나리, 로즈마리. ” 억지로 앞 글자를 맞추느라 ‘즈’를 ‘자’로 받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리’자를 살려낸 기지에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박수를 쳐줬다. 앞으로 로즈마리를 볼 때마다 수범이의 시가 외워질 것 같다.
대상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와 외워지는 그런 노랫말 같은 시가 가장 바람직한 생활 시 아닐까. 유례없이 폭염이 길었던 이번 여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단’ 나무 백일홍을 볼 때마다, <그 여름의 끝 /이성복>이 자연스럽게 외워진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집에 드나들 때마다 ‘사랑해’ 손 흔드는 계수나무를 알게 된 것은 낙엽 향기 때문이었다. 이 아파트에서 십년이 넘도록 살면서도 집 앞에 무슨 나무들이 서있는지 몰랐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 알고 보니 좁은 땅에 의외로 많은 나무들이 살고 있었다. 열매를 맺는 감나무, 대추나무, 봄마다 화사하게 꽃을 피우는 자목련 백목련, 철쭉, 수국, 현관입구 양쪽에 수문장처럼 서있는 주목, 그 옆에 향나무, 단풍나무, 그리고 이름 모르는 늘씬한 나무가 있었다.
그 늘씬한 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일찍 낙엽이 졌다. 하트형 잎사귀들이 맑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떨어졌다. 코에 대면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났다. 어릴 적 학교 앞 구루마에서 구름처럼 피워 오르던 솜사탕, 먼 추억까지 불러온다. 이름을 알고 싶어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관리실 직원도 모른단다. 결국 숲 해설사인 동생에게까지 물어 알아냈다. ‘계수나무’, 이름을 알고 보니 더욱 좋아졌다.
3행시 짓기 시간을 끝내면서 아이들에게 집 앞에서 주워온 계수나무 낙엽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여름내 뜨거웠던 태양 볕이 달콤한 향기로 풀려나온다.
김종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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