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천경자 '슬픈 전설의 삶' 마무리
지난 8월 타계 -교회서 장례식 치러
큰딸 이혜선씨 "경황없어 이제야 밝힌다"
| 2015. 10.22(목) 07: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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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 있는 큰딸 이혜선씨는 "어머니가 지난 8월 자택에서 평안히 숨을 거두었으며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뤘다. 어머니의 생사논란과 위작시비 등으로 경황이 없어 이제야 밝히게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경자 선생은 1990년대 말 큰 딸이 거주하는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으며 2003년 뇌출혈이 발생,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천씨는 전남여고 전신인 욱고녀를 졸업하고 부친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유학했으며 유학시절 고바야가와 교수로부터 거울보고 자화상 그리기를 배운 탄탄한 데생력으로 졸업작품 「노부(老婦)」가 선전에 입선하면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 이후 파리 아카데미 ‘고에쓰’에서 수학하였다. 여류작가로서는 드문 일본 유학파로 한국채색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솔직 담백한 필력으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 수 권의 수필집을 펴내 5월 문학상을 수상한 문학인이기도 하다.
천경자 선생이 한국화단에 화려하게 등극한 것은 1955년 ‘대한미협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날 이후 천경자는 수많은 화가들이 명멸한 가운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명으로 우뚝하다. 더구나 한때 채색화를 왜색풍이라 하여 무조건 경시하던 해방 이후부터 60년대까지의 그 길고 험난했던 시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채색화 붐을 예비했던 그 확신에 찬 작가정신으로 인해 그의 위상은 더욱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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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구도를 잡기 전에 데생을 하고 색깔가지 넣은 뒤에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물감은 수성이나 불투명 과슈를 많이 쓰는데 유화를 그리 듯 붓질을 중첩시켜 색채가 밑에서부터 은은하게 비춰 오르게 하는 중간색의 미묘한 색감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60년대에 들어서서는 대상의 묘사를 넘어 생태적인 색채감각에 순수 조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특히 천경자의 50년대 그림 「생태(生態)」는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광주에서 그렸던 그림으로 주목을 받았다. 어느 날 광주 역전의 뱀집을 찾아가 푸르고 벌겋게 꿈틀대는 뱀들을 유리 상자에 가득 담아 그린 독사그림은 역설적으로 삶의 의지를 사로잡는 소재로서 독사의 살기어린 강렬한 눈빛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수필집에서 서술했듯이 뱀은 작가의 가장 외로웠던 시기의 외침과도 같은 것이었다. “저주서린 하얀 배때기에 시커먼 비늘의 등허리, 뭔지 죄 많이 짓고 죽은 구로가와(黑川) 공작(公爵)의 화신 같은 느낌을 주고 있어 귀족뱀이었다.
그러나 내가 뱀에 대해 오래도록 궁금했고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그 눈이었다. 예부터 독부나 음모술수를 일삼는 악인의 눈을 뱀 눈에 비유했기에 말이다. ”천경자의 그림은 그 자신의 생활감정을 포함하여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신비, 인간의 내면세계, 문학적인 사유의 세계 등 폭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특히 옥사 천경자의 작품세계에서 대표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꽃과 여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하는데 이는 일상에서 느끼는 작가의 감정을 그대로 작품 속에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천경자는 남태평양과 아프리카, 유럽 등지를 여행하면서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색채로 회화적 상상력의 폭을 넓혀왔다. 46세에서 74세까지 28년 동안 열두 차례의 해외스케치 여행을 했는데 1969년 남태평양의 타이티에서 시작된 스케치 여행은 파리-이탈리아를 거쳐 아프리카의 검은 대륙으로 뛰어 들었다. 이디오피아에서 시작된 아프리카 여정은 케냐-우간다-콩고-세네갈-모로코-사하라사막을 거쳐 이집트에서 끝을 맺는데 화필과 함께 한 여로가 언론이나 책을 통해 공개되면서 화제의 작가로 등장했다. 움직이는 대상을 순간적으로 잡아내는 유려한 속필과 선 몇 개로 대상의 특징을 잡아내는 예리한 실력으로 그려낸 플라밍고의 춤과 투우 현장의 그림들은 애호가들로터 많은 인기를 끌었다.
천경자는 또한 미술 외에도 수필이라는 장르를 통해 삶의 진지하고 솔직한 감동을 전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필집으로 『한"恨?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천경자 아프리카 기행 화문집』 등이 있다.
한편 천경자는 1991년 ‘미인도’ 위작사건으로 절필을 선언하고 칩거하다가 1998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채색화와 스케치 작품 93점을 기증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큰 딸과 함께 살아왔다.
지형원 발행인 mhto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