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이름이 안 나면, 자서전 쓰세요!
| 2013. 06.27(목) 10: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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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가물한 이름도 많았다. 그런데 20여개는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인연으로 폰에 저장해 놓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모르는 이름까지 포함해서 50여개 이름을 지웠다.
지금세상은 사람이름을 잘 외우는 사람이 출세하고 돈도 잘 번다. 시장이나 국회의원이 큰 모임에서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척척 불러대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생활에서 사람만나는 일은 의식주해결 다음 갈만큼 중요한 일이다. 사람을 만나면서 만나는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자꾸 잊는다면 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들건 당연하다.
미당 서정주선생은 고인이 되기 전 하루아침에 1천개씩 산 이름을 외우셨다고 한다. 만약 매일 외우는 것이 산 이름이 아니라 사람이름이었다면 미당은 시인이 아니라 틀림없이 거물 정치인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사람이름은 산 이름이나 영어단어보다 외우기 힘들다. 이름에 뜻도 없고 스토리도 없다. 이름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얼굴모습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직업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방송퀴즈쇼에 나온 유명배우 한 분이 “나는 얼굴치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행적을 듣고 놀랬다. 여러 번 만난사람이 인사하는데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시지요?’라고 묻는단다. 그는 “혹시 길거리에서 못 알아보고 지나치더라도 이해해주세요”라고 공개적으로 양해를 구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 만나는 일은 사람이름만 잘 외운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실제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짝짓기 하는 것도 힘들다. ‘얼굴치’까지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에피소드가 많다. 부부동반 동창 모임 때면 어느 부인이 누구 짝인지 몰라 안부도 못 묻고 어정쩡 인사하는 정도는 보통이다. 길거리 가다가 선배부인인줄 알고 정중히 인사를 드렸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몇 번 가보았던 카페 마담이어서 같이 웃었던 일도 있었다.
‘심각한 얼굴치’라고 밝힌 그 배우가 그만한 핸디캡에도 사회생활에 성공해 유명인이 되었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다. 그렇게 남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이름을 떨칠 수가 있구나! 본인은 남을 잘 알아보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 배우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도 한 번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핸드폰에는 300여 명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내 이름은 몇 사람의 핸드폰에 올라있을까. 얼마나 되는 사람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까.
“군자는 이 세상의 삶을 끝낼 때까지 그 이름이 한 번도 값있게 불려지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논어 위령공편, 도올 김용옥 역)”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이름을 떨쳐라’는 공자말씀이다. 공자가 말한 ‘값있게 불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불려져야 하는 건지,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꼭 그게 ‘군자’에게 한정지어 하신 말씀일까. 이름을 떨치지 못하면 군자만 부끄러울까.
명예욕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다. 대인이든 소인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이름이 나길 원한다. 사실 ‘떨치는 이름’만큼 좋은 자산은 없다. 누가 훔쳐가지도 못하고 썩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상속세 증여세 내지 않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대를 이어 누릴 수 있는 값있는 유산이다.
사람이 먹고사는데 정신을 쏟다 보면 나이 들도록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다. 초조해진다. 식욕 성욕은 줄어드는데 명예욕은 줄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오히려 커지는 명예욕을 나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죽기 전에 한 번 값있게 불려지고 싶다’는데····. 도리어 부추기고 도와줄 일이다. 다만,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이 벼슬을 얻어 그 덕에 이름을 날리려는 것은 ‘욕먹을 노욕’이다.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말려야한다.
욕먹는 이름은 값있게 불려지는 이름이 아니다. 욕먹지 않고 이름을 떨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동안 쌓아놓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면 된다. 오래 칭찬을 받는다. 남을 위해 쓸 돈이 없다면 몸으로 때우는 방법이 있다. 기술, 예술 등 재능이 있다면 재능으로, 재능이 적으면 노력으로, 봉사를 하면 된다.
그보다 더 조용한 방안도 있다. 자서전을 쓰는 거다. 책으로 만들지 않아도, 최소한 자기 아들 딸 손자들은 그의 이름을 기릴 것이다. 더 많이 더 높이 이름을 날리고 싶으면 책으로 만들면 된다.
‘이름떨치기’의 기본은 자기 이름을 스스로 부르는 것이다. 부르고 또 불러 이름에 혼과 기를 불어넣는다. 자서전쓰기는 그 이름에 날개를 다는 작업이다. 혼이 담긴 이름이 날아오른다.
김종남<광주전남언론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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