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세상사는 재미’ 어디서 구하나

2013. 02.26(화) 23:17

‘하루 두 끼’를 시도해 본적이 있다. 집사람이 장기 출타 중 이던 때다. 일일이 끼니 챙기는 것이 귀찮았다. 또 다석 유영모 선생이나 함석헌 선생은 ‘하루 한 끼’로 할 일 다 하고 장수하셨다는데, ‘하루 1식’은 어렵더라도 ‘하루 2식’은 가능하지 않겠나’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있었다.

일주일도 못 버텼다. 굳은 각오 없이 한 번 시험 삼아 해보자는 정도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다리 힘이 풀리고 밥 때만 기다려졌다. 기름게이지에 빨간불이 들어온 자동차 같았다. 불가에선 몇 달씩 일종식(하루 한 끼만 먹는 수행)을 하면서도 피곤, 졸음, 배고픔을 다 이겨낸다는데 ---.

수행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생하며 굶지? 의문이 일었다. ‘간소하게 산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 바라는 바였다. 좋은 핑계거리였으나 생각해보니 게으름이 제일 큰 동기였다. 덕분에 한 가지는 배웠다. ‘살기위해 먹느냐, 먹기위해 사느냐’는 질문에 ‘먹기위해 산다’는 역설(逆說)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살위먹(살기위해먹기)이냐, 먹위살(먹기위해살기)이냐’란 이 질문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보다 ‘밥먹었읍니까!’라는 인사가 더 자연스럽던, 항상 빈 쌀독 걱정을 해야 했던 시절의 말장난 인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배고파보니 ‘먹위살’이란 역설이 ‘지금세상의 화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두(話頭)란 선불교에서 논리적 한계를 깨닫게 하기위해 던지는 역설적인 문장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상상력 백과사전>에서 내린 정의이다. 그러나 화두는 선불교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설명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은 ‘지금세상’이 더 화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지금세상’은 음식물쓰레기가 넘치는 세상인데도 밥값이 없어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넘친다. 또 밥값은 있어도 밥맛을 잃은 사람들이 넘친다. 사람이 밥을 먹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밥값이 없거나, 밥맛을 잃게 되면 세상사는 재미마저 잃게 된다.

또 살다보면 누구든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병들어, 밥맛 잃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겪는다. 맨날 ‘살기위해 밥먹지, 밥먹기위해 살겠나!’,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달려온 사람들, ‘살기위해 먹는 삶은 인간적인 삶’이고, ‘먹기 위해 사는 삶은 동물적인 삶’이라고 강조하며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도 살맛을 잃을 때가 생긴다.

“세상이 재미없어졌을 때 물구나무서기를 하여 세상을 한 번 거꾸로 보라.” 어느 시인의 말대로 물구나무서기를 한 번 해본다. 역설이 바로 보인다. ‘먹위살’이라는 화두는 실질적인 삶의 길이다.

그런데 실제 밥맛을 크게 잃어본 적이 있는가? 살맛까지 잃어본 적이 있는가? 작가 박완서는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밥이 주님, 밥맛이 한 말씀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작가는 남편과 외아들을 넉 달 사이에 잇달아 잃는 참사를 당했다. 몇 주간이나 밥을 먹지 못했다. 먹는 대로 다 토했다. 통곡과 불면의 수도원생활 속에 어느 순간 밥맛이 돌아왔다. 그는 ‘참척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어쩌면 주님이 그때 나에게 밥이 되어 오시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났다. ------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밥 냄새와 밥맛이 이렇게 감미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그날’ 이후 내 배는 영락없이 끼니 때만 되면 고파왔다. ”

그렇다. ‘먹위살’의 근본은 밥맛이다. 그러나 세상사는 재미를 잃은 보통사람들이 박완서처럼 고통의 밑바닥을 거치지 않고 ‘그날’을 어떻게, 어디에서 구할 수 있나? 마지막 문장에서 해답을 구한다. ‘거꾸로 보기’의 실천적 방안이다. ‘끼니때만 되면 영락없이 배가 고파오도록’ 만드는 거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밥 양을 줄이는 것이다.

요즘은 하루 세 끼, 밥 때를 기다린다. ‘하루 두 끼 먹기’ 대신 끼니때마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다음 밥 때가 기다려지도록 밥 양을 줄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밥 때 기다리는 재미로 한 번 살아보자!’

◇ 김종남<언론인> <jnkim45@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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