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올해 ‘나의 사자성어’는 무엇인가

2013. 01.30(수) 11:26

연초엔 토정비결을 본다. 넉 자 넉 자씩 시구(詩句)처럼 팔자성어(八字成語)로 되어있어 한자 배우기도 되고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도 오백 년 된 비결이 내린 내 운세라는데 관심이 끌린다. 그렇다고 ‘비결’이 잘 맞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별로였다. 몇 년간 ‘재물 운, 명예 운이 아주 좋다’고 나왔다. 은유와 상징이 많아서 모호하긴 했지만 기대할만했다. 그러나 맞은 일은 기억에 없다. 이사 운이 좋다고 할 때는 옮길 집구하러 동분서주했지만 실패했다.

한 가지 확실한 이득은 그해 나의 좌우명을 얻어내는 정도이다. 교수모임이 해마다 새해의 희망을 담아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발표하는데, 그처럼 나도 올 한해를 잘 헤쳐 나가자는 염원에서 ‘올해의 팔자성어’를 ‘내 운세’에서 고르는 것이다.

‘청풍명월 아시주인(淸風明月 我是主人; 청풍명월의 주인이 곧 나다)’. 2012년 임진년(壬辰年) 내 운세에서 고른 ‘팔자성어’였다. 한 해 동안 덕을 많이 보았다. 돈 문제로 고민이 생겼을 때나, 친지나 친구관계로 마음상처를 입었을 때나 주문(呪文)처럼 외웠다. 맑은 바람, 밝은 달, 대자연이 다 내 소유인데 그까짓 소소한 재물이나 명예 따위가 무슨 마음 썩일 거리가 되랴.

즐거울 때도 빠지지 않았다. 지리산둘레길 숲속, 청량한 솔바람이 한 가슴 가득 들이칠 때 “청풍명월 아시주인” 감탄사처럼 절로 나온다. 폐부 깊숙이, 머리 꼭대기까지 상쾌해진다. 누가 시비 걸 것인가. 맑은 바람 더 마시겠다는데, 밝은 달빛이 내 꺼라는데--.

올해는 어떤가. 운이란 돌고 도는 가 보다. 몇 년 동안 좋았던 운세가 좋지 않은 운세로 바뀌었다. “망망귀객 임진무선(忙忙歸客 臨津無船 ; 바쁘게 돌아가야 할 손님이 강에 도달해 보니 배가 없다)”. 황당하다. 다른 문구들도 비슷하다. ‘안분지족 대시이동 (安分知足 待時而動 ; 분수에 만족하고 때를 기다려 움직여라)’.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경구이다.

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구포신(除舊布新 ;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을 선정했다. 새 정부가 시작되는 해를 맞아 사회 혁신을 기대하는 당부이자 다짐이다. 삼성전자는 힘차게 시작하자는 뜻에서 ‘노말지세(弩末之勢; 활끝의 힘)를 택했다고 한다. 공격적이다. 다른 대기업들도 잇달아 회사의 염원을 담아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했다. 장관들, 금융계 CEO들도 사자성어를 내놓았다.

어딜 가나 온통 사자성어 판이다. 사회를 위한, 조직을 위한 성어들, 올해의 목표를 가리키는 나침반바늘 같은 성어들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성어들이 서민인 나에게 얼마나 힘을 줄 수 있을까? 권력, 재력 없는 서민일수록 ‘비장의 마법’ 같은 주문이 필요하다. 마음응어리를 풀고 힘이 솟아나도록 지극정성으로 외울 주문, 사자성어가 필요한 것이다.

올해 나를 이끌어줄 주문은 어디 있는가. 마법이 없다면 타산지석 같은 숫돌이라도 구해 심신을 갈아보자, 그 숫돌로 날마다 나의 마음과 몸을 닦고 갈아 무슨 난관이든 단숨에 잘라버릴 시퍼런 날을 세우자.

‘숫돌’ 깜은 어디에나 차고 넘친다. 고대 성현들의 귀한 말씀들, 고전에 나오는 명언들, 잠언집들···, 너무 많아 오히려 고르기 어렵다. 마음을 치유하는 명구는 또 얼마나 많은가. 5~6년간 우리나라 출판계는 힐링(healing)이 대세였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은 대부분 힐링서적이 차지해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임진년 나의 팔자성어도 치유의 성어였다. 마음치유란 동중정(動中靜)이다. 움직임을 품은 고요함이다.

그러나 세상사는 일은 움직임이다. 바쁘다. 삶은 ‘고요함을 품은 끊임없는 움직임(靜中動)’이다. ‘동중정’보다는 ‘정중동’쪽이다. 마음치유는 정중동을 충전하는 과정이다. 계사년 팔자성어를 이렇게 정했다. “망망귀객 대시이동 (忙忙歸客 待時而動)” 인생은 나그네다. 길손이여! 바쁠수록, 기다려라! 때를!!

◇ 김종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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