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맨발로 흙에 ‘입맞춤’한다
| 2012. 06.28(목) 13: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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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아래 신발을 던져놓고 운동장을 걷는다. 운동장은 멀리 크게 돌아도 3백 미터밖에 안 된다. 대여섯 바퀴 도는데 30분쯤 걸린다. 몇 바퀴 돌았는지 셀 필요도 없다. 천천히 기분 내키는 대로 걷는다.
낮 동안 햇볕에 뜨겁게 달궈졌던 모래와 흙은 적당히 식었다. 깔깔한 모래들, 맨 발바닥에 닿는 맛이 약간 따끔거릴 정도로 시원하다. 찌뿌드드하던 몸의 부기가 따끔거리는 발바닥을 통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한결 가뿐해진다.
어둑해진 운동장엔 걷는 사람들이 꽤 된다. 부근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다. 남자는 드물고 아줌마들이 대부분이다. 모두들 걷는 속도가 나보다 빠르다. 팔을 앞뒤로 높이 흔들며 파워워킹을 하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이 이런데서 시작되는가 보다. 맨발로 걷는 사람은 안 보인다.
나의 맨발 걷기는 6년 전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맨손체조나 스트레칭은 몇 개월 열심히 하다가도 흐지부지 그만 두게 된다. 성격이 게을러서인지, 재미를 못 느껴서인지 오래 못 갔다. 결국 ‘걷기’만 남아, 십 수 년 째 계속한다. 걷기는 편하고 하기 쉽다. 하기 싫을 때는 느리게 걸으면 된다.
봄가을엔 그냥 걷다가 여름철이 오자 지압 받는 셈 치고 신을 벗고 걸어본 게 ‘맨발걷기’였다. 걸으면서 땅의 기운을 좀 받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작용했다.
그리스 신화에는 땅에 닿을수록 힘을 얻는 거인 안타이오스 얘기가 나온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대지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안타이오스는 땅에 몸이 붙어있는 한 당할 자가 없다. 땅에 쓰러지면 어머니 가이아로부터 힘을 얻어 더욱 팔팔해졌다. 안타이오스는 리비아 사막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무조건 싸움을 걸어 그들을 죽이곤 했다.
그 비결을 알아낸 영웅 헤라이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공중에 들어 올렸다. 땅에서 발이 떨어진 안타이오스는 기운을 잃었다.
맨발로 걸으면서 안타이오스 생각을 한다. 대지의 아들은 신화에만 나오는 게 아니다. 사실 세상사람 모두가 땅이 나은 아들딸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니까.
곡성 산골에 살고 계시는 한국화가 아산 조방원선생은 몸이 찌뿌듯하고 병이 날듯하면 뜰에 나와 흙을 만진다고 했다. 흙일을 하다보면 웬만한 스트레스나 가벼운 몸살쯤은 가볍게 치유된다는 거다.
“도시사람들이 높은 아파트에 살고, 땅과 멀어지면서 병이 많아졌다. 사람은 흙을 만져야 병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신다. 사람의 몸은 흙에서 태어났으니 흙의 기를 받아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파트에 사는 나는 흙일을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다. 콩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천지인 도시에서 땅 냄새를 맡으려면 시간을 내어 동산에라도 올라야한다. 다행히, 맨발로 흙을 밟을 운동장이 바로 곁에 있으니 복 받은 일이다.
나이 들수록 소중한 능력은 두발로 자기 몸을 스스로 옮길 수 있는 이동능력이다. 그런데 거기에다 맨발로 땅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틱낫한 스님은 ‘걷기 명상’을 얘기했다. “온 마음을 다해 흙을 밟아라. 마음을 저 아래 발바닥까지 끌어내려 흙에 입맞춤하는 기분으로 걸어라. 대지의 힘이 발끝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진다”
내가 운동장을 걷는 것은 그냥 운동 삼아 건강 지키기 수준이다. 명상의 단계에 까지 이르려면 너무 멀다. 틱낫한 스님이 말씀한 ‘걷기 명상’은 운동장을 걷는 내가 바라는 최고 지향점이다.
“마음을 발바닥까지 끌어내려, 흙에 입맞춤하는 기분으로 걸어라” 되 뇌일수록 기분 좋은 주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끌어 내린다’는 수준은 얼마나 수련해야 이룰 수 있는 경지일까.
‘흙에 입맞춤하는 기분’이라도 느끼고 싶다. 오늘도 맨발로 즐겁게 걷는다.
◇ 김종남 (언론인) <jnkim45@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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