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사람다운 맛’이 있는가
| 2011. 12.19(월) 09: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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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엔 이름난 채식뷔페식당을 택했다. 가까운데 경치 좋은 저수지가 있어 분위기도 좋았다. 값이 만만치 않은데도 널찍한 홀에 사람들이 붐볐다. 웰빙에 다이어트 붐이 추세여서 그런지 날씬한 여성이 많아 보였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서 양껏 먹는 ‘뷔페’라는 서양음식문화가 처음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몇 십 년 전, 그때는 배고픈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음식 값 보다 몇 배 씩 먹고 나가는 사람이 많을 터인데 뷔페식당이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지금은 오히려 적게 먹을 수 있어 찾는 사람도 많단다. 나는 음식을 안 남길 수 있어 뷔페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 ‘음식을 남기는 것은 죄’라고 듣고 자랐다. 당시는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실제 남길 음식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 외식을 할 때면 안남기려다가는 과식하기 십상이다. 어떤 때는 남들이 음식을 풍성풍성 남기는 걸 보는 것도 답답하다.
길게 이어진 음식진열대, 먹음직스럽게 요리된 음식들이 가지런히 차려져 있다. 수 십 가지도 넘는다. 한쪽에선 요리사가 전 종류를 계속 지져 음식대에 올려놓고 있다. ‘어떤 것이 맛있을까’ 음식을 고르면서 ‘맛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맛있음’과 ‘맛없음’을 어떻게 구분 짓나? 맛에 대한 기준은 원래 사람마다 다르다. 식성이나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완전히 주관적이다. 며칠씩 삭힌 홍어를 맛있다는 사람도 있고 냄새조차 못 맡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같은 문화권에 오래 같이 살다보면 ‘맛있다’는 기준도 비슷해지는가 보다.
‘맛있다’는 식당은 아무리 벽촌산골이라도 사람들이 붐빈다. 몇 달 전 모임엔 지리산 정령치 부근까지 갔었다. ‘소위 맛있다는 산채비빔밥’을 먹으러 그 먼데까지 찾아갔다. 동료 한 분이 강력히 권했었다. 험한 산길을 갈지자로 구불구불 올라갔다. 오지마을, 손님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댓 대나 차가 늘어서있고 방 두 개와 마루를 터서 만든 큰방에 손님들이 가득했다. 그 집 비빔밥은 정말 맛이 있었다. 다들 공감했다.
백 리 밖 사람들까지 끌어당긴 그 맛의 힘은 무엇일까? 어렸을 때 나는 단맛이 최상의 맛인 줄 알았다. 단것이면 무조건 맛이 있었다. 짜고 매운맛은 그다음 이고, 쓴맛은 당연히 최하의 맛이었다. 토마토나 심지어 참외에도 설탕을 쳐서 먹었다. 설탕이 귀해 인공감미료인 사카린을 자주 먹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어느 날 구례산 고들빼기김치가 밥상에 올랐다. 쓴맛뿐이었다. ‘밭에서 난 산삼‘처럼 귀한김치라는데 도대체 맛이 없었다. 어른들이 어째서 ‘맛있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쓴 것이 약’이라고 약 먹듯 하는 걸까. “나이가 들면, 고들빼기 맛을 알게 될 거야” 답변이셨다.
시간이 지나자 단맛에 물렸다. 단맛이 최상의 맛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과다한 설탕섭취가 몸에 해롭다는 교육효과도 있었다. 커피도 블랙으로 먹게 되었다. 그러나 쓰디쓴 고들빼기를 ‘맛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훨씬 긴 세월이 지나야했다. 어른이 되어서다. 쓴맛 속에도 단맛보다 깊은 뒷맛이 있는 걸 느끼게 되었다.
‘맛있음’은 입에서 느끼는 ‘입맛’만 있는 게 아니었다. 몸에 오래 남는 ‘뒷맛’도 맛있음에 큰 몫을 차지했다. 몸 전체가 필요로 하는 ‘맛’은 식욕을 불러일으킨다. 식욕은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다. 식욕이 일지 않으면 살아가는 의욕도 사그라진다.
접시에 담아온 음식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눈다. 얘기도 맛이 있다. 들어 보니 세상사가 온통 맛 천지다. 책 읽는 맛, 일하는 맛, 걷는 맛 거기에 사는 맛까지. 딱 규정짓기 어려운 느낌이나 재미에 모두 ‘맛’이란 단어를 붙여버린 것 같다. ‘맛’이 얼마큼이나 우리생활에 밀착되었는지 알만하다. 사람도 ‘사람 맛’, 인간미가 있어야 사람이 따른다.
두 번째 접시에 후식을 담아왔다. 배고플 때 먹는 첫 접시와 배부른 뒤 가져온 접시 맛은 다르다. 생각도 달라진다. ‘맛있음은 무얼까’ 대신, 반문이 생긴다. 나에겐 ‘사람다운 맛’이 있는가.
김종남< 언론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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