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황금카펫 금남로를 걷는다
| 2011. 11.21(월) 11: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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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날 차타고 휭 하고 지나던 길을 오랜만에 걷는다. 우수수 날리는 은행나무 낙엽, 보도가 황금 카펫을 깔아놓은 듯 어둑한 노을 속에 밝게 빛난다. 중앙로와 만나는 곳, 금남로 공원엔 하늘높이 죽죽 뻗은 소나무들이 조그만 숲을 이루어 반긴다.
중학교 때 집이 금남로 1가에 있었다. 고교 졸업까지 6년간 아침저녁 걸어 다녔던 바로 그 코스이다. 그 때 가로수는 잎 넓은 플라타너스였던 것 같다. 금남로 4가 중앙교회 앞 우람한 느티나무, 가장 기억난다. 길에 약간 튀어나와있었지! 그래도 다들 잘 비켜서 지나다녔다. 오히려 길이 넓어지면서 베어졌다.
금남로는 충장로와 함께 광주도심을 지탱하는 두 간선도로다. 왜 학교에 오갈 때 차 없는 충장로보다 차 다니는 금남로를 택했나. 사람이 북적거리는 충장로보다 빨리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금남로는 차가 주인이다. 사람들은 차에 밀려났다. 길가의 기와와 초가들도 콘크리트 빌딩이 자리바꿈했다.
광주토박이인 나와 금남로의 인연은 유별나다. 어릴 때 10여 년 금남로에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30년 간 매일 금남로로 출근했다. 직장이 금남로1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모임이 시내에 있게 되면 안 지나갈 수 없다.
러시아워라 금남로는 차들이 붐빈다. 행인들도 나처럼 느긋하게 걷는 사람은 드물다. 다들 서둘러 가야 할 집이나 빨리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도심 길은 집과 집을 연결한다. 일과 일을 연결해준다. 생존은 시간다툼이다. 금남로 같은 도심 길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날라야한다.
길은 출발이라는 점과 도착이라는 점을 잇는 선이다. 디지털 시대는 선을 무시하고 점만 우대한다. 출발과 도착만 나타난다. 선인 아날로그는 짧을수록 좋다. 결과만 중시하는 현대 디지털 문명은 더욱 중간과정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더 많은 점을 찍으려면 더 빨리 움직여야하고 그래서 더 반듯하고 더 넓은 길을 만든다. 좋은 길일수록 차를 위한 길이다. 금남로에도 사람보다 차가 많다. 사람들은 점점 걷는 것을 멀리한다. 차의 매연, 소음은 걷기를 기피할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두 발로 걷는 동물’ 사람에게서 걷는 것을 뺀다면 어찌될까. ‘두 발’은 사람의 뿌리다. 뿌리가 허약하면 줄기나 잎이 성할 수 없다. 두 발이 잘 움직여야 머리도 잘 움직인다. 칸트나 괴테가 매일 마을길, ‘철학자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아마 그 위대한 철학도 탄생되지 못했을 거다.
길가 어느 상점에서인가 ‘내 사랑 내 곁에’노래가 가냘프게 들린다. 김현식의 애절한 옛 노래를 요즘 가수가 리메이크하여 다시 유행시킨 멜로디다. 그래도 그 노래 소리에 멈추어 선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약속했던 그 대 만은 올 줄을 모르고 ---- ” 빌딩사이를 걸으면서 숲속을 걷는 것처럼 ‘혼자인 날’ 느낀다. 자동차소음도 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로 들린다. 맑은 하늘, 차가운 늦가을 바람이 탁한 도심공기를 쓸어갔다. 숨 쉬는 가슴이 시원하다.
세상엔 길이 많다. 하늘 길, 바다 길, 산 길, ---. 갈 수만 있으면 모두가 길이다. 목적지가 없는 길도 있다. 올레길, 둘레길, 옛길,---. 걷기 위한 길이다. 보이지 않는 길도 있다. 이성복 시인이 말하는 ‘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 길’은 생과 사를 잇는 길, 삶 그 자체이다. ‘그 집’은 사람이 평생 찾는 꿈이다.
그러나 역시 길은 가까이 있는 길이 좋다. 차타고 휭 하고 지나치는 길보다 여유를 갖고 걸으며 멈출 수도 있는 길, 일부러 차타고 가서 걷는 길보다 사람의 생활이 있는 가까운 길이 좋다.
금남로는 가까이 있는 길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길이다. 매일 아는 사람을 만나고 일과 일의 틈새를 연결해주는 생활 속의 길이다. 황금카펫이 끝나니 약속한 곳이다. 훈훈한 열기가 발바닥에서 올라온다. 생각도 황금빛처럼 무르익는다.
김종남 <언론인>
mtong@mtong.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