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신바람은 어떻게 일어나나
| 2011. 09.19(월) 23:47 |   |
|
갈대 호수 속으로 잔교가 뻗쳐있다. 보름달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어둑어둑한 시간인데도 어린애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의 발길이 붐빈다.
아! 반딧불이 날아오른다. 한 마리, 이어 두 마리, 세 마리---. 높이 솟지도 않고 빨리 달리지도 않는다. 장난치듯 좌우로 넘나든다. 따라가다 보면 불을 끄고 사라진다. 신비스럽다. 어릴 때 개똥벌레를 본 이후 몇 십 년 만인가.
부근에서 스피커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농협마당에 만국기가 부채 살처럼 하늘높이 펼쳐졌다. 그 아래 노래잔치가 열렸다. 추석맞이 동민 노래자랑 축제이다. 마당이 차고 넘치도록 사람들이 많이도 모였다. 귀성객에다 생태공원에 놀러온 시민들까지 성황이다.
빈자리를 골라 앉았다. 갑자기 만국기가 흔들린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유니온 잭 영국기, 단풍잎 카나다기, 남십자성 호주기, 붉은 태양 일본기, 건곤감리 팔괘 태극기가 손을 흔든다. 역시 축제에는 만국기가 있어야한다. 펄럭이는 만국기 이상 더 큰 환호 박수가 어디 있으랴.
만국기가 춤추며 만가지 색깔을 흔들어대자 구름이 걷혔다. 기다렸다는 듯 둥근달이 얼굴을 드러냈다. 금 쟁반처럼 반짝이는 한가위 달, 밤하늘이 온통 환해진다. 바람을 타고 나타난 듯하다.
대나무 숲이 잎사귀를 흔들면서 달리는 바람 모습을 보여준다. 의상봉에서 대숲으로 내려온 바람은 우수수 댓잎소리를 낸다. 원효골 솔숲을 통해 오는 바람은 송진 솔향이 가득하다. 마치 대나무 소나무가 바람을 일으켜 불어대는 것 같다. 피부에 닿는 서늘함이 마음바닥까지 씻는다.
맞다. 이 바람을 맞으러 여기 온 것이다. ‘바람 쐬러간다’는 의미를 알 것 같다. 연전에 난초만 키우는 전문난원에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난을 키우기는 쉽다. 3대 조건만 잘 챙기면 된다. 햇볕, 물, 그리고 바람이다” 당시에는 ‘바람’이 그렇게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실제로 난을 키워보고서야 알 게 되었다.
아무리 그늘진 햇볕과 물을 알맞게 조절해 겉이 멀쩡하게 잘 자랐더라도 바람을 맞지 않으면 병이 든다. 사람이 잘 사는데도 3대 조건에 바람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돈 잘 벌어 윤택하기만 하면 잘 사는 것인가. 나른한 피부를 찔러 깨우는 산들바람처럼 나태한 몸을 흔들어 활력을 주는 신바람이 마음 안에서 일지 않으면 삶이 썩기 쉽다.
꼭 피부에 닿는 바람만 바람은 아니다. 공기의 움직임이 바람이다. 공기의 자리바꿈이다. 그렇다면 호흡도 바람이다. 생명체가 만들어 낸 작은 바람이다. 작지만 내 몸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이 숨 바람이 없으면 생명이 살아남을 수 없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쏘이면 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만들어 내는 바람이 더 중요하다. 숨 바람으로 목숨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생기 넘치는 마음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피부에 산들바람을 쏘이면 자연스럽게 내 마음 안에 신바람이 일어나는가.
캔자스 시티 출신 백인 여의사 ‘말로 모건’은 호주 원주민과 함께, 맨발로 걸어서 호주 대사막을 횡단한다. 그녀는 어느 날 텍사스 주의 세배가 넘는 드넓은 황무지에서 회전 춤을 춘다.
<무탄트 메시지>란 책을 통해 모건은 이렇게 전한다. “나는 모래를 차고 바람을 일으키며 아랍의 수도승처럼 회전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일으킨 바람은 꿈을 붙잡는 사람에게 부딪친 뒤 드넓은 황야로 물결처럼 끝없이 퍼져나갔다”
상하이에서 나비날갯짓이 뉴욕에 이를 때는 태풍으로 변한다. 요즘 대한민국에 큰 파문을 던진 ‘안철수 바람’도 그런 ‘회전 춤’의 일종일까. 대나무 잎처럼 만국기처럼 춤을 춰볼까. 솔잎바람을 한 가슴 마셔본다.
김종남<언론인>
mtong@mtong.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