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苦中甘來’로 바꿀 수 없나
| 2011. 08.20(토) 07: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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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좌우명이 무어냐’고 물었다. 여러 답변 중에 ‘고진감래(苦盡甘來·고생 끝에 낙이 온다)’가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그들의 지상과제는 취업이다. 그들은 지금 20여년 기나긴 배움의 세월을 총 결산 짓는 중대한 고비를 넘고 있다. 사회로 진입하는 마지막 터널에 들어선 것이다.
이십년 갈고 닦은 배움을 펼칠 기회와 장소를 얻어야한다. 부모 품에서 뛰쳐나와 스스로 서야한다. 그러나 그 어둠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 확실히 기약해주는 사람은 없다. 이 고생 다하면(苦盡) 즐거움이 온다(甘來)고 스스로 다짐할 수밖에 없다.
대학문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을 막막하게 만드는 고통인지 난 잘 안다. 대학과 군대를 마친 후 2년여 백수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몇 십 년 전 당시 직장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중진국을 넘어섰다는 요즘도, 일자리 구하기는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가까운 친지들만 꼽아보아도 자녀의 절반이상이 대졸 후 몇 년째 안정된 직장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년고용률은 OECD나라 중 꼴찌다.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시대’라고 자탄한다.
청년백수들이 겪고 있는 이 ‘가슴 막막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언가. 조그만 도움도 못되는 처지에 화가 난다.
인류의 큰 스승 공자는 40여 년 동안 수레를 몰고 중국천지를 돌아다녔으나 결국 맘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자신의 큰 뜻을 펼칠 기회와 장소를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공자는 노여워하지 않았다(人不知而不?不亦君子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데에서 기쁨을 얻었다(學而時習之不亦說乎). 먼데서 찾아온 벗과 어울리며 즐거움을 느꼈다(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요즘 젊은이들에게 공자 같은 성인(聖人)처럼 견디라고 할 수는 없다. 직장도 안 주면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기쁨을 느끼라’고 할 자신도 없다.
청년들이 ‘가장 본받고 싶은 멘토’로 꼽는 안철수 교수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험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학생들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실패해도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차순위 능력 있는 학생들이 안정적인 직장선택을 한다면 건강한사회가 될 것이다.’ 대개 그런 요지이다.
훌륭한 제안 같다.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처럼 성공하면 몇 십만 명 먹여 살릴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얼마나 가능할까? 실력이 되는데도 대기업 취업이나 판검사, 의사, 공무원 되는 길을 포기하고 앞을 알 수 없는 창업 등에 도전하라? 그럴 만큼 도전정신에 불타는 수재청년들이 얼마나 될까.
시내 나갔다가 길에서 잘 아는 후배를 만났다. 얼굴이 어두웠다.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회사사정이 어려워 이번 달 봉급이 안 나올 지경’이란다. ‘대학생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무어라 선뜻 위로의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부도위기에 몰린 그 회사사정도 뻔하다.
“궁즉통이라고, 이제 막바지까지 내려갔으니 무슨 통할 방법이 나오겠지…. 몸이나 건강하소.”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때우고 지나쳤다.
집에 돌아와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정말 ‘궁하면 통하게’ 되는 걸까? 얼마나 궁해야 통하게 되나? 가만 생각해보니 ‘궁즉통’이 아니었다.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이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 변해야 통한다는 말이었구나.
궁지에 몰리면 변해라, 통하려면 변해야한다. 불공정 사회가 상생사회로 변하기는 백년하청이다. 내가 먼저 변하는 게 순리이다. 사자성어엔 고진감래만 있는 게 아니었다. 苦中作樂(고생스러운 중에서도 즐거움을 만든다)도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좌우명을 ‘고생 중에 낙이 온다 고중감래(苦中甘來)’로 바꿀 수 없는가. 이 고생의 과정을 즐길 수 없는가.
김종남(언론인)
mtong@mtong.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