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시한부 생명’을 알게 된다면…
| 2011. 08.07(일) 1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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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약간 늦어져 네 시쯤 됐는데 갑자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늦은 오후는 아닌데…’ 일기예보가 아무리 잘 맞춘다 해도 시간까지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택시를 타야하나?’ 버스정류장은 한 2백 미터 떨어져 있다. 바쁜 일이 없어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빌딩 처마 밑에 서서 기다렸다.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부럽다. 그들은 일기예보를 잘 듣고 대비도 잘한 사람들이다. 20여분쯤 지나니 비가 약간 뜸해졌다. 다행히 버스에 올라타자 또 빗줄기가 굵어진다. 차창에 들이치는 빗물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비나 폭풍 예보는 있는데, 병이나 죽음 예보는 없는 것일까?’ 몸이 편안해지니 우스개 얘기가 생각난다. “어떤 노인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섰다. 노인은 염라대왕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저승에 데려오려거든 미리 좀 알려 주어야 하지 않소?
염라대왕 대답이 재미있다. 내가 자주 알려주지 않았더냐? 너의 눈이 점점 침침해진 것이 처음 예보였고 귀가 점점 어두워진 것이 두 번째 예보였다. 이가 하나씩 빠진 것이 세 번째 예보였다. 그리고 너의 몸이 날로 쇠약해진 것으로써 셀 수도 없이 예보를 해주지 않았느냐!”
여러 번 예보가 있었음에도 노인은 듣지 못했다. 아니 노인은 염라대왕이 해준 예보를 못 들은 게 아니라 듣고도 ‘죽음에 대한 예보는 아니다’며 부정했던 것은 아닐까.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다. 사실 태어날 때부터 모두 ‘언제 죽는다’는 장기예보를 받았다. ‘언제’라는 그 때를 확실히 모르는 것뿐이다. 누구는 80년이 넘는 장기예보를 받고 누구는 50년짜리, 잘못되면 몇 달 짜리 단기급보를 받는다. 모두들 모른 채 살고 있을 뿐이다.
확실히 알게 되는 기습경보도 있다. 암이나 불치의 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해 “앞으로 6개월을 넘기기 힘들겠다” 또는 ‘3개월’ 식으로 의사가 진단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보를 환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예는 드물다.
병자에게 이보다 더한 충격이 있을까. 죽음예보를 듣고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예 감각이 무뎌 못 느끼거나 아니면 옹고집으로 ‘내가 왜 죽어?’라며 억지를 부린다면 모를까. 마음을 추스르려면 최소한 몇 개월, 죽기보다 더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예보를 알게 되는 것이 오히려 병세를 더 악화시킬 것 같다.
그런데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고 ‘오히려 이전의 삶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불치병환자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고 말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불치병을 앓기 전보다 죽을 날이 언제인지 안 이후 그 이전보다 더 행복을 느꼈다’는 것이다.
왜 행복한가?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진정 하고 싶었던 일, 진짜 의미 있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당장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생일날 잘 먹으려고 며칠간 굶는 사람처럼, 성공할 때까지 계속 하기 싫은 일만 했단 말인가.
사람 욕심이란 한이 없으니 그 목표가 계속 더 커져 그럴 수도 있겠다. 또 하나 의문도 생긴다.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 해보면 죽을 때 편하게 죽게 되는 걸까. 아니면 한이라도 풀고 죽자는 걸까.
요즘 시한부 인생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인기이다. 드라마는 현실에서 일어날만한 일을 보여준다. 시한부 생명을 미리 알게 되는 경우 어떤 반응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이 겪은 일이고 또 겪어야할 일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격언이 이 경우 가능할까. 우산 없이 맞는 비처럼 가능할까.
김종남<언론인> <jnkim45@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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