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나
| 2011. 06.23(목) 16:25 |   |
|
거실에 있을 때면 리모컨만 붙들고 지내던 버릇이 상당히 바뀌었다. 덕분에 TV에 묶여있던 시간도 절반쯤 풀린 것 같다. TV는 사람을 꼼짝 못하게 잡아놓는다. 스포츠 경기나 바둑 중계에 빠졌다하면 한 나절이 번쩍 지나간다.
신문은 텔레비전보다는 중독성이 훨씬 적다. 그래도 지난해 두 개를 하나로 줄였다. 중앙지를 끊고 지방지 하나만 본다. 지방신문은 면수도 적은데다 토요일에도 쉬니 신문 보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 예전엔 여행 다녀올 때면 그동안 못 본 신문을 쌓아놓고 훑어보느라 고생했다. 마치 숙제를 밀쳐놓고 놀다 온 학생처럼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그냥 못 보면 못 본대로 재활용 가방에 던져 넣는다.
매스컴 족쇄(?)로부터 상당히 해방된 셈이다. 덧붙여 모임도 꼭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은 모임은 빠졌다. 다만 한 두 시간이라도 마음 내키지 않으면서 질질 끌려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싫어서다. 나로서는 오랜 동안 시간에 쪼들리며 일에 끌려 다녔으니 이제 한 번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지내보고 싶어 해본 시도이다.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이다.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
그렇게 풀려난 시간들을 어떻게 쓰고 있나. 꽂아놓기만 했던 책도 뒤적이고, 이삼일씩 건너뛰던 일기쓰기도 요즘은 거르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펼쳐놓고 바깥 녹음도 쳐다보고, 무등산도 올려다본다. 아침에도 깨어 바로 일어나지 않고 십 여분씩 그냥 누워 게으름을 피운다. 멀리 큰 도로에 차 달리는 소리들이 마치 해변의 파도소리처럼 사~악 사~악 아스라이 들린다. 그렇다고 마음을 비우는 명상을 하는 건 아니다. 화두에 몰입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꼭 해야 할 일에도 늑장부릴 수 있다는 게 고맙다. 강의록을 준비하는데 예전보다 시간을 두 배로 들인다. 하다가 싫증나면 인터넷에 들어가 유모어도 보고 근처 공원에 산보도 간다. 놀면서 사이사이 일하는 식이다. 물론 효율이 떨어진다. 대신 시간으로 보충한다.
길에서 만난 친구가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인사치레였을 것이다. 굳이 답할 필요도 없었다. 떠오르는 대로 ‘TV도 줄이고 신문도 줄이고, 시간의 주인이 되어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말해놓고 보니 너무 거창해졌다. ‘시간의 주인’이라니! 내가 진정 얼마만큼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隨處作主, 머무르는 곳마다 그곳의 주인이 되라’는 임제선사의 말씀이 생각난다. 선사는 ‘머무르는 곳마다, 가는 곳마다’라고 공간을 얘기했다. 머물러 있는 장소가 언제 어디이거나 그 ‘공간의 주인’이 되라는 말이다. 그러려면 당연히 그 공간이 머금고 있는 ‘그 시간의 주인’도 되어야한다. ‘공간과 시간의 주인’이 되는 거다.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없듯이 공간과 시간은 분리될 수 없다.
만약 그 ‘머무르는 곳’이 감옥이나 강제 수용소라면 어떨까. 그런 극한적인 공간과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면 그는 도를 통한 사람이다. 보통사람으로서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감옥’은 남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누구나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놓고 산다. ‘마음의 감옥’이다. 몸을 구속하는 실제 감옥은 아니다. 마음을 묶어놓는 감옥이다.
마음대로 쓸 시간이 아무리 많이 있더라도 그걸 즐길 마음이 걱정 근심, 불안과 분노로 묶여 있으면 그 시간은 많을수록 오히려 고통만 늘어난다. ‘주인’이 아니라 ‘죄수’가 된다. 시간의 주인이 되려면, 먼저 ‘마음 감옥’으로부터 벗어나야겠구나!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겠구나! 내 마음감옥은 얼마만큼 일까.
김종남<언론인>
mtong@mtong.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