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나
| 2011. 04.18(월) 20: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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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몸을 뒤틀다 깨어났다. 식은땀이 흘러 온몸이 축축했다. 너무 생생한 아픔에 정신을 차리는데 한참이 걸렸다. 정말 꿈이었다. 하늘과 땅에 감사했다. 죽었다 살아난 느낌이었다. 그게 정말, 꿈이 아니었다면 어찌되었을까. 한단지몽(邯鄲之夢)의 고사가 생각났다.
“당 현종 때다. 벼슬을 찾아 천하를 헤매던 젊은이 노생(盧生)이 한단 땅의 어느 주막에서, 옆 늙은이에게 신세한탄을 하다 깜박 잠이 든다. 늙은이는 도사 여옹(呂翁)이었다. 여옹은 배낭에서 도자기로 된 베개를 꺼내 노생의 머리에 받쳐준다. 노생은 명가의 딸을 맞아 결혼하고 벼슬도 재상에 이른다. 반역죄로 몰려 죽을 위기도 겪지만 모함이 풀려 왕의 총애를 차지한다. 5명의 아들들도 모두 고관이 되고 10명의 손자에 부러울 것 없이 복을 누리다가 80세에 죽는다. 노생이 깨어보니 꿈이었다. 잠들기 전 삶고 있던 주막집 메조 밥은 아직 뜸도 다 들지 않았다.”
억지로 비교해보자. 내 꿈은 서너 시간 사건의 짧은 꿈인데 노생의 꿈은 장편드라마처럼 일생에 걸친 긴 꿈이다. 내 꿈은 악몽인데 노생 꿈은 길몽 중 길몽이다. 고사를 읽으며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궁금증이 생긴다. 길몽을 꾼 노생은 그 후 어찌 되었을까. 꿈속에서처럼 부귀영화를 누리고 80세까지 고종명했을까? 아니 10년 후, 20년 후 여옹을 만나러 다시 그 한단의 주막을 찾았을까.
“흉한 꿈이 길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실제 세상에서 겪는 웬만한 무서운 일도 꿈에서 만난 흉한 일보다는 나을 것이다. 또 꿈에서 겪은 쓰라린 아픔을 반면교사삼아 술도 삼가고 운전도 조심하니 흉한 일도 비켜갈 것이다.
그보다도 ‘그 흉몽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면’ 하고 생각해보라. 벌써 그 꿈을 깬 것만으로도 길한 일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길몽을 꾼 사람은 실제 세상일이 아주 잘되어도 그 꿈 보다는 못할 것이니 기분나빠해야 할 일인가. 노생은 이미 꿈에서 부귀영화를 다 누려보고 죽음까지 경험한 후 다시 젊은이로 돌아왔다. 나머지 인생은 덤으로 받은 것처럼 길몽의 추억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
추억은 재산이다. 마치 세상사는 일이 큰 재산을 가진 부자가 가난뱅이처럼 배낭여행을 떠나 한 두 달 고생을 즐기는 정도로 되는 게 아닐까.
따지고 보니 흉몽이든 길몽이든 보통 꿈이든 ‘기억에 남는 제대로 된 꿈’은 다 좋다는 말이 된다. 제대로 된 꿈은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반면교사’도 되고 ‘귀중한 경험’이라는 ‘기억의 자산’을 남긴다. 오래토록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면 꿈속의 경험이나 현실의 경험이나 다를 게 무언가.
꿈은 잠잘 때마다 꾸는 것이라고 한다. 누구나 밤마다 기억나지 않은 꿈을 수없이 꾼다. 그런데 ‘제대로 된 꿈’은 사람마다 쉽게 꿀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평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지극하면 꿈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런 꿈, 기억의 망에 뚜렷이 걸려 올라오는 그런 꿈이 바로 ‘제대로 된 꿈’ 중 하나일 것이다.
‘간절한 마음이 부족했나, 욕망이 없었나?’ 나의 경우, 며칠 전 악몽 같은 충격적인 짧은 꿈 밖에 기억나는 꿈이 거의 없다. 깰 때는 잠간 기억났다가도 바로 잊어버린다. 생각해낸 것도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전혀 엉뚱한 것들이 필름 끊기듯 토막토막 나타나는 정도이다.
‘꿈에서 깨어난 노생은 넋 잃은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여옹에게 절을 올리고 주막을 떠난다.’ 부귀영화의 헛됨을 깨닫게 해준데 대한 감사의 절이다. 우리 보통사람들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불가능한 욕망을 노생처럼 꿈속에서라도 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실제 삶을 살면서 헛된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 제대로 된 긴 꿈을 꾸어보고 싶다. ‘한단지몽 같은 길몽을 한 번 꾸어보자.’ 잠들 때마다 입속으로 염원을 뇌어본다. jnkim45@korea.com
김종남 <언론인>
mtong@mtong.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