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2011. 03.24(목) 22: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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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이건 모인 사람들이 빠짐없이 말을 하기란 어렵다.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해 얼굴만 비치고 가는 경우도 많다. 또 뒤풀이에서도 앞뒤나 옆에 앉지 않으면 몇 번 만나도 얼굴과 이름을 익히지 못한다.
다양한 얘기들이 쏟아졌다. 요즘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는지 근황,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새 상품을 개발했다고 소개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아들이 군대를 마치고 직장을 얻었다고 말한다. 좋은 소식에 모두들 박수를 쳤다.
한 분은 일어서자 ‘최근에 외우고 있는 시가 있다’면서 시 한수를 낭송했다. 그러고 보니 연전에 ‘일주일에 시를 한 수씩 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핸드폰에 저장해놓은 싯귀를 보여준 적이 있는 분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시를 외우고 있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매화꽃 지니 해당화 피는구나---” 꽃에 관한 시였다. 그런데 낭송이 끝나자, 이어 다른 분이 일어났다.
“나도 꽃에 관한 시가 하나 생각납니다” 시 한 수를 읊었다. 갑자기 시낭송회에라도 온 느낌이다. 잔을 기울이며 시를 들었다. 잔잔한 감흥이 일었다.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시가 이렇게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줄 수 있구나. 글쟁이 생활 삼십년이 넘은 나는 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돌이켜 보아진다.
몇 년 전 여럿 앞에서 시를 외웠던 일이 한 번 있었다. 그해 초겨울, 사업을 하는 친구가 동창회에서 약속을 했다. ‘첫눈 오는 날, 술을 내겠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대학 때 국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었다. 단 하나 조건이 있었다. “시를 한 수씩 외워오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외우고 있는 시가 하나도 없었다.
고교생 때 국어교과서에 나왔던 이육사의 ‘청포도’라는 시를 전부 외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것도 토막토막만 생각난다. 무슨 시를 외워갈까? 그 때 신문에 김춘수 시인이 타계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의 대표 시 <꽃>도 실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짧지 않은 시였지만 구절구절이 쉽게 가슴에 와 닿았다. 처음엔 ‘첫눈 오는 날에 <꽃>이라, 생뚱맞지 않나?’ 생각되었지만 여러 번 읽어 보니 ‘김춘수의 꽃’은 봄여름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그런 꽃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눈이 내렸다. 동창들이 약속된 식당에 모였다. 이십 여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초대한 친구가 막상 “시 외워 온 사람?” 하고 운을 떼자, 모두들 눈치만 보며 아무도 나서질 않는다. 뜻밖이었다. ‘첫눈 오는 날, 시를 읊는다’는 낭만적인 기분에서라도 다들 준비해올 줄 알았었다.
이창동의 영화 <시>는 깊은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개봉한지 사나흘 밖에 안 된 때 보러 갔었다. 그런데 그 너른 극장 안에 관객이 4명뿐이었다. 흥행에는 실패했다.
혹시 시는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속담처럼 쓰디쓴 한약 같은 것일까. 아니면 ‘이뭣고’처럼 어려운 화두 같은 것일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좋은 줄 알면서도 잘 접근하지 않으려는 걸 보면 이 두 얘기가 다 맞는 말일지 모른다.
약은 쓰더라도 꾸준히 매일 먹어야 보약이 된다. 화두는 한 시도 쉬지 않고 되새겨야 깨달음을 얻는다. 시도 주문처럼 수없이 외우고 부르면 두터운 무지의 땅을 뚫고 ‘샘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생에 지쳐 두렵고 불안하고 외로워 몸과 마음이 들끓을 때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약수 같은 샘물이.
김춘수의 시<꽃>을 이렇게 바꿔 부르고 싶다. ‘내가 시를 불러주기 전에는/ 시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시를 불러주었을 때/ 시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종남 <언론인> jnkim45@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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