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둠 너머의 빛을 생각하지요"
윤광렬 전 광주예총회장
| 2010. 09.02(목) 15: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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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측이 밝힌 병명은 폐렴이라는 것이었지만 아무런 원인도 모르고 눈을 잃어버렸다. 청천벽력이었다. 병원 측과 싸움도 해봤지만 결국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을 수 없어 합의해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사랑했던 따뜻한 방송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필자는 신문사 문화부 근무하며 문화를 말했고 윤회장은 ENG카메라로 예술을 담았다. 그는 실명했고 필자는 신문을 떠났다. 그렇게 서로 잊고 지내다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는 생각으로 만났다. 옆자리엔 그의 세상의 눈인 연극인 박윤모씨가 앉았다. 제 8회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하는 9월 2일 광주시 동구 고려조 삼계탕집에서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후배의 손을 잡고 반가워했지만 필자는 가슴이 찔끔했다. 뭔가 모를 미안함이 엄습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얘기에서부터 근황까지를 눈에 보듯 읽어냈다. 시력을 잃어버렸지만 눈은 그대로 뜨고 있어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주 맑은 날 형체의 윤곽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져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 앞 못보는 나를 위해 후배들이 ‘수요회’를 만들어요.
매주 수요일 만나 점심을 하는 모임으로 윤회장의 바깥나들이를 돕는 의리의 용사들이다. 연극인 박윤모, 김종진, 조영철씨가 바로 그들이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날이 아니면 어김없이 만나 안부를 확인하고 세상얘기를 나눈다. 인생에서 수요일이 가장 즐겁다는 윤회장의 말에서 이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게 느껴진다.
한사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모든 것을 비웠다고 말하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을 만나고 싶고 손을 잡고 싶고, 그리운 사람들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주 찾아오거나 전화라도 걸어주는 사람들의 이름을 낱낱이 불렀다. 선배인 박보융 전 국장, 친구인 성수신 기자, 후배인 최명균씨, KBC 임채형 PD...이문석 전 광주문화방송국장...
그는 오지 않는다고 누구를 원망해본 적이 없지만 비교적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만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그냥 잊고 지낸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지금 더 급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아침 10시에 기상한다. 사실은 8시쯤 눈을 뜨지만 ‘세상이 아직 어두워’ 누워 있다. 이는 출근하는 아내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냥 눈을 감고 있다. 주위가 조용해지면 일어나 물 한컵 마시고 면도하고 런닝머신을 붙잡고 올라 한 시간 정도 걷는다. 그는 런닝머신에 올라 제주 올레길도 생각하고, 지리산 둘레 길도 떠올리고 아내와 함께 무수히 올랐던 무등산도 생각하면서 옛길를 머리에 그리기도 한다.
점심을 마치고는 조용히 음악을 듣는다. 꿈많던 방송국 프로듀서 시절 좋아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며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 그때 만났던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과의 추억을 생각한다. 그는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이야기를 혼자 꺼내들고 웃다가 울다가 한단다.아내가 퇴근하면 좋다. 적막이 걷히고 사람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부인은 중앙여고 보건교사다. 사고 이후 지금껏 불평 한마디 없이 그림자가 되어주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잊을 수 없는 한쪽이다. 어쩌다 손주라도 찾아오는 날은 세상 사는 것 같다. 슬하에 3녀를 두었는데 큰 딸은 결혼해서 광주에서 살고 둘째는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막내는 아직 미혼이다.
저녁을 먹고는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본다. 아니 듣는다. 더러 아내가 건네주는 햇과일을 먹으면서 내려 놓은 생의 의욕 같은 것을 다시 느낀다. 아내의 손을 잡는다. ‘아내의 손이 따뜻할 때’라는 전후 일본 최고의 문화비평가 에토 준의 글을 떠올리며 아내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는 방송국 재직시절 ‘문화마당’이란 프로그램을 기획해 지역 예술인들을 ENG카메라에 담았다. 그래서 예술인들과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다. 지금은 거의 만나지 않고 지내지만 그의 기억 속에는 그들의 이름, 그들의 약속이 또릿하게 남아 있는듯했다.
-눈을 잃어버렸지만 얻은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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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건강하게 지냈더라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을, 인생의 깊이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물을 수는 없지만 그것은 사실인 것 같다. 커다란 산을 넘은 자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안도와 평안이 보였다.
연극인 박윤모씨가 그를 위해 수요회를 만들었던 것처럼 그는 박윤모의 ‘아버지’를 좋아한다. 창립공연을 봤고, 서울공연도 봤고, 지난 2008년에는 앞을 보는 가운데 100회 공연도 관람했다. 볼수록 깊이와 한이 느껴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윤회장은 자신을 대비하고 있는 듯했다. 미국공연 이후 광주에서 갖는 앵콜공연도 관람할 생각이다.
고흥 출신인 윤회장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군제대후 광주문화방송 프로듀서로 입사해 편성부 차장과 부장, 부국장을 거쳐 1995년 KBC 광주방송 개국과 함께 편성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3년 반 재직하고 퇴사했다.
대학시절 실험극을 하기도 했고 광주연극협회장 시절에는 ‘햄릿’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 인연으로 1999년 광주예총회장 선거에 출마해 회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더 이상의 치료는 중단하고 ‘걷고 생각하고 잠자는’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아니 꼭 만나서 식사라도 하자-
1945년 고흥출생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1973년 광주MBC방송국 입사
1990년 광주연극협회장
1995년 KBC 편성국장
1998년 KBC방송국 퇴임
1999년 광주예총회장(2001년까지)
지형원 대표 mtong@mto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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