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龍을 사랑한 여자, 박소빈씨
연필 하나로 뉴욕을 놀라게 하다
| 2010. 03.29(월) 18: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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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의 동양 여인이 연필 하나로 10미터가 넘는 대작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경이로움에 가득 찼다. 반신반의했던 사람들은 작품 아래 수북이 쌓인 연필밥과 필통 가득한 연필들을 보며 ‘Perfect!'를 연발했다.
지난 11개월간 뉴욕미술계를 용(YONG)으로 감싼 여자, 박소빈(39) 작가는 용과 사랑하는 사이다. 용은 그녀의 삶의 원천이자 에너지 그 자체다. 동양의 작가 가운데는 더러 용을 얘기한 사람들이 있지만 감히 ‘용과의 사랑’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용은 동양문화에서 신비의 존재이고 수호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출신의 ‘당돌한 여자’ 박소빈은 미술대학 재학시절부터 용과의 사랑을 꿈꾸다 드디어 그 꿈을 현실화시켰다. 깊은 두려움으로 만났던 용을 사랑하는 일상의 동반자 관계로 발달시킨 것이다. 무수한 선을 통해 형체를 만들고 그 속에 깊숙이 안기고 말았다.
바로 그 장면에 많은 사람들이 전율을 느끼며 박수를 친 것이다. “어머” “어쩌면” 등의 감탄사가 흘러나왔고 여기저기서 창작스튜디오 입주를 제안하고 초대전을 열어주겠다고 손짓했다. “ 눈을 떠보니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더라.”라는 것처럼 동양의 무명작가는 현대미술의 본고장 뉴욕에서 먼저 유명해졌다.
잠시 귀국해 있는 동안 문화전문인터넷 신문사 편집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 사랑은 영원한 예술의 테마입니다. 동양의 설화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로 세계를 두드리고 싶어요"
그렇다. 그녀가 줄기차게 그리는 ‘용’도 실상은 사랑이다. 아주 건강한 사랑, 그 것이 용의 형상으로 살아났을 뿐 가슴속에 흐르고 있는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광주출신의 박소빈은 어릴 때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유일하게 ‘잘한다.’ 칭찬받은 일이었다. ‘잘 그렸네, 잘한다.’라는 칭찬이 즐거워 그리고 또 그렸다. 목포대학시절 구례 화엄사에서 대웅전을 타고 오르는 용을 보았다. 어느 날 화폭에 용이 담아보자 마음먹었다. 어느 누구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용이 그녀의 손끝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이후 그녀는 꾸준히 용에 바탕한 설화와 전설에 심취한다. 1993년 졸업과 동시에 가진 첫 개인전에서 용과 여인의 사랑이 녹아있는 작품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벌거벗을 여인을 껴안고 있는 용, 서로 입맞춤하고 있는 여인과 용 등은 당시 광주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연필하나로 표현해내는 그녀의 작품에 “소묘일뿐이야! ”라는 말에 상처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니야, 결코 내 작품을 소묘에 머무르게 하지 않겠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상황에 따라서 들쑥날쑥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계획아래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1995년 조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할 때 ‘용의 상징성과 조형성에 대한 연구’ 논문을 썼다. 그림만 그리기보다 이론적인 소양을 쌓아가며 자신과 용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연필작업에 색조를 가미하던 작품에서 2005년 색을 배제하고 온전히 연필만으로 이미지화했다. 2004년부터는 영상작업도 잠깐 했지만 주는 연필작업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작품 속의 용이 움직이게 하는 영상을 1년에 1 회 제작해왔다.
“ 자기의 색을 가진 작가가 되고 싶다”
2006년 그녀는 뉴욕의 자비이스 센터 아트페어에 참가한다. 그 아트페어 참가가 그녀의 인생향로를 바꾼 계기가 되었다. 당시 뉴욕에서 파견 근무하던 장경화 (현 광주시립미술관 상록분관장)씨의 소개로 뉴욕 화랑가에서 엘가 갤러리를 운영하는 엘가위머 관장과 탈리야를 소개받았다. 이를 계기로 엘가 위머 갤러리 기획전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광주팔각정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작업하고 있을 때 탈리아(Thalia Vrachopoulos) 교수의 방문을 받는다. 탈리아는 맨하탄 중심지에 있는 텐리갤러리의 명예관장으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미국 미술계에 소개하고 뉴욕을 근거지로 각종 전시비평, 강연을 하는 전시기획자이다. 탈리아는 그녀의 작품에 매혹됐고 뉴욕 미술계에 선보이길 원했다.
연필로 마무리까지 완성하는 그녀의 작품에 대한 신선함과 그 속에 여인과 어우러져 녹아있는 ‘사랑’이라는 세계만인의 공통분모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이듬해 뉴욕 텐리 갤러리에서 ‘미녀와 야수’라는 주제로 성공적인 전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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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아와 엘가 위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2009년 미국 뉴욕 시각예술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ISCP(국제스튜디오& 큐레이터 프로그램)으로 확정되었다. 2008년에도 더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사정상 포기하고 2009년 미국행을 결행 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했던 반응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녀의 오픈 스튜디오에는 뉴욕미술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10m가 넘는 종이 위에 연필하나로 용과 여인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는 한국여인에게 경탄과 찬사가 넘쳤다. 당시 스튜디오를 방문한 첼시뮤지엄 관계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초대전 형식의 전시를 열었다. 12월 말까지 계획된 전시를 한 달 더 연장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서양에서는 징그럽고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용의 한계를 극복해 반투명하고 부드러운 피부의 아름다운 여성을 함께 해 매우 섬세한 용의 화폭을 일구어냈다며 ‘아트뉴스’와 ‘아트 인 아메리카’ 등 미술 전문지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녀는 광주에서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모든 시스템이 낯설었지만 이겨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도전해야 한다.” 고.
순간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전시가 성공해도 기뻐하지 못했다. 주위에서 이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말할 때에도 맘은 내내 불편했다. 그림이 의도대로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이는 작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견고한 고독’ 같은 것이다. 그녀는 이제 그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유명작가가 되었다.
“신선한 작품이란 재료와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다”
연필은 흔해빠진 물건이다. 그런 흔한 것으로 그녀는 신선한 작품을 창조해낸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애인과 대화하듯 선 하나하나를 긋는다. 수만, 수 백만 번을 긋는 선은 박 씨의 사랑이고 염원인 것이다. 커다란 화면 속에서 태어나는 작품은 그녀의 그림을 향한 사랑인 것이다. 선묘낭자가 의상 대사를 사랑한 것처럼....
첼시 뮤지엄은 매년 2월 초 후원자들을 위한 멤버십 파티를 연다. 2010년의 메인전시로 ‘새로운 여성의 신화창조를 향하여’라는 주제의 박소빈의 작품을 남겨두며 선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뉴욕전시 성과를 발판으로 홍콩전시를 계획 중이다. 오는 5월에는 이탈리아의 유명작가 육성프로그램인 빌레마떼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40여일 간 참여한다.
하반기에는 뉴욕의 LMCC(Lower Manhattan Culture Council)스튜디오와 보먼트 등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엘가위머와 탈리아의 기획으로 뉴욕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박소빈은 이제 용을 타고 지구촌을 자유롭게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광주인, 박소빈 작가에게 신의 ‘특별한 영감’을 빌어본다.
박소빈 홈페이지 http://www.parksobin-gallery.com
편세라 기자 psr@mtong.kr 편세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