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11.21(목) 17:37
문화일반 문학/출판 문화화제 전시 연주 공연 영화 연예 특별기고 예술인동정 이슈
2019년 11월 22일(금요일)

박갑로 영남 이순신연구소 소장

난중일기 꼼꼼히 살펴 ‘이순신과 함께 한 인물’ 찾아
호남사람 보다 호남 사람을 더 많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
2019. 08.12(월) 14:13확대축소
박갑로 영남 이순신연구소장
호남사람보다 호남사람을 더 많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 박갑로(朴甲魯. 59) 영남 이순신연구소장.
“왜 이순신 장군께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했는지 알았습니다. 정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을 겪으면서 호남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일본말을 쓰는 일본백성으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박갑로 소장은 그래서 늘 호남과 호남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인물이 대략 2천여명인데 이 가운데 출신지역을 알 수 없는 사람이 1천여명이고 나머지 1천여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0여 명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출신지역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전라도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출신지가 밝혀진 500여명 가운데 고흥이 150명으로 가장 많고 순천 140명, 보성과 해남, 장흥이 각 20명, 광양 14명, 여수, 나주, 영광, 영암 10명, 광주가 7명, 화순과 곡성이 각 5명, 함평 4명, 장성 2명 등으로 당시 전라도 사람들이 얼마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지 숫자적으로 확실히 알 수 있다.

“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의병장과 의병, 또는 이순신과 함께 수군으로 참가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조국인데 지금 그 후손들이 그 사실 조차를 알려고도 하지 않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선조들이 족보에서도 사라지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박소장은 난중일기를 연구하면서 후손들이 조상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일례로 통영 한산도에 제승당이 있는데 당시 이순신과 함께 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도 없다는 것. 조상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만으로도 많은 관광객을 창출할 수 있는데 그런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제승당은 한산도에 있는 사당으로 이순신 장군의 해영(海營)이 있던 곳이다.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당포승첩(唐浦勝捷) 후 왜적과 세 번째로 접전하여 적을 섬멸시키고 해상권을 장악하고 해상보급로를 차단시켜 적의 사기와 전의(戰意)에 큰 타격을 준 곳이기도 하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전라도 사람 500명

10여년동안 난중일기만 독파하고 잇는 박소장
그뿐 아니다. 해남 명량해전 기념관에도 참전자 이름이 없다. 난중일기에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고흥군 같은 곳에서 녹동지역 또는 첨산전투지에 ‘이순신과 함께 한 고흥사람들’이라는 비석을 세워 기념하면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건물이나 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명량해전기념관, 남해 이순신 순국공원, 완도 고금도 이순신 체험관, 군산 선유도 등에 이순신과 함께한 분들, 즉 각 해전에 참전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전시공간을 마련해야한다. 그러면 관광으로 연결되어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10년이 넘도록 거의 날마다 읽고 있는 난중일기와 장계 등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난다. 등장하는 인물에 밑줄을 긋고 그 사람의 출신지와 본향, 그리고 선조와 후손들까지 빽빽하게 기록해 놓았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해인 1591년 1월 1일부터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의 기록문으로 친필 초고가 충청남도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장계(狀啓)는 조선시대 관찰사·병사·수사 등 왕명을 받고 외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거나 청하는 문서다. 난중일기와 장계만 자세히 살피면 당시의 활약상을 파악할 수 있다.

“사실 하루 내내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난중일기에 매달리다보니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낸 세월이 여러 해다.
그는 왜 난중일기에 목숨을 걸었을까?
우연한 일인 것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가족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함양 박씨인 그는 안향 선생의 후학인 치암 박충좌 선생의 23세손으로 경북 예천군 용문면 대제리(큰맛질)가 고향이다. 선조 가운데 6대조 박한광이 5천여석을 했는데 그 아들 미산 박득령- 손자 박주대 박주학으로 이어지는 가문에서 6대에 걸쳐 120년간 이어져온 ‘저상일월(渚上日月)’이란 일기문이 전해지고 있다. ‘저상일월’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번역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박주대·박주학 형제는 의병장과 부장으로 한말의병전쟁에 참여했다. 예천 의병장 박주대는 초대 예안 의병장인 향산 이만도와 초대 안동의병장인 권세연(봉화 닭실마을 출신 석주 이상룡의 외숙)과는 벗이며 인척간이다.
500년 역사의 예천 맛질의 미산고택은 지금도 그 모습이 당당하다. 이 고택은 안동 내앞 마을 백하 김대락(망명일기 백하일기를 남김) 선생의 외갓집이며, 임청각 종손이며 상해임정 초대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처외가로도 유명하다.

교도관직 그만두고 이순신 연구에 몰두

박갑로 소장은 경찰관의 아들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안동고등학교와 경북전문대학(행정과)을 졸업하고 86년 교도관시험에 합격해 수원과 안동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하다가 9년여 만에 사표를 내어던진다. 교도관으로서의 생활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교도관일기’인 감방일기를 ‘범털과 개털’이라는 책을 통해 교도소비리를 폭로하고 교도관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박갑로 소장이 쓴 '범털과 개털'

‘범털’은 이른바 끗발이 있는 재소자를 일컫는 말이며 ‘개털’은 힘없고 빽 없는 일반 재소자를 가리킨다. 범털을 대상으로 한 교도관들의 비행을 차마 볼 수 없어 이를 세상에 고발하고 교도소를 뛰쳐나온 것이다. 그러나 버젓이 잘못을 저지른 상사가 인사조치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마저 느끼게 된다.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고 살다가 갑자기 사표를 던진 뒤 그의 인생은 여러 가지로 뒤틀리게 된다. 그래서 한때 택시운전을 하는 등 갖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늘 그의 머릿속에는 구한말의 독립운동이 궁금했고 그것을 연구하다가 의병전쟁사를 읽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난중일기와 이순신연구, 족보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2년전 경북 예천군 은풍면 율곡리에 허름한 집을 한 칸 사서 ‘영남 이순신 연구소’를 차렸다. 예천읍내에서 살다가 책이 많아지고 조용히 공부할 곳을 찾아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이다. 그의 서재에는 이순신 장군의 비망록과 수군 통제에 관한 비책, 부하들에 대한 상벌, 충성과 강개의 기사, 전황의 보고, 장계 및 서간문의 초록,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 제6으로 「임진장초(壬辰狀草)」와 1968년 이은상(李殷相)이 친필초고본을 대본으로 삼고, 망실된 부분은 『이충무공전서』의 내용으로 보충해 현암사(玄岩社)에서 간행한 책 등이 가득하다. 그는 이런 책들을 구하기 위해 전국을 다녔고 지금도 인터넷 등에 자료가 뜨면 곧바로 연락을 취한다.

“이순신이 영웅인 것은 맞지만 혼자 한일 아니다”

이렇게 하여 살림방을 제외한 방 한 칸이 온통 이순신 연구서적이다. 특히 그가 이순신을 연구하면서 기록한 메모노트를 들여다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사람을 찾아 그가 어떤 벼슬을 했고 난중일기에는 몇 번 이름이 나오고, 그의 족보에 이름과 내용이 있는지 없는 지까지 찾아서 기록해놓았다.
일례로 이순신 장군의 조카사위인 온양정씨 정제 장군은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 참전하였으나 후손들도 모르고 있었고, 연구자들도 잘 모른다. 그래서 그가 문중에 이를 알렸고 비문까지 찬(撰)해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무의공(자는 입부)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 무덤이 광명시에 있다. 무의공은 충무공 막하의 중위장으로 옥포해전을 비롯해 당항포, 한산, 부산포 등의 해전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으며 충무공이 노량해전해서 사망한 뒤 경상우수사로 개선한 장수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280여회 등장하는 순천부사 권준 같은 경우도 논문한편이 없을 정도로 문중과 지자체, 지역대학들이 무관심하다. 이밖에도 아직도 미공개 일기문 등이 많이 남아 있을 터인데 관심이 없어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이순신 장군이 위대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일을 혼자서 했겠습니까? 이순신 장군만 성웅으로 만들어 놓고 나머지 많은 고귀한 희생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한 것이 사실입니다.”
박갑로 소장은 “어찌 나라를 구하는데 호남과 영남이 따로 있겠습니까. 많은 전라도 장수들이 진주성에서 목숨을 바친 것은 진주가 호남의 관문이었기 때문”이라면서 누구 한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온 백성들이 하나 되어 이룩한 위대한 결실이라고 말한다. 결코 영호남을 나눠 말할 필요가 없으며 어느 한쪽만 알고 말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난중일기 모르고 호남학 말하면 안 돼”

그는 또 “임진왜란사를 모르고 호남학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호남학의 시작은 난중일기 연구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조심스럽게 밝힌다.
사실 그가 연구한 이순신 연구 10년은 교수들이나 연구자들의 30년에 해당하는 긴 세월이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팠으니 난중일기와 이순신에 관한한 누구와도 토론할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그 결과로 요즘은 곳곳에서
‘이순신과 함께 한 지역인물’에 관한 강의요청이 들어온다고 한다,. 오는 6월에는 영주문화원에서 ‘이순신과 함께한 영주 인물’을 강의한다. 그리고 경북도청과 협조하여 ‘이순신과 함께한 경북인물들’이라는 책도 만들려고 협의중이라고 한다.
“전남도청이나 한국학호남진흥원 등에서 요청하면 언제든지 달려가 이순신과 함께한 그 고장의 인물에 대해 알려줄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서 위대한 인물들이 다시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것으로 연구자의 보람을 찾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박갑로 소장은 이 세상에 태어나 작은 일이라도 하나 남길 수 있어 보람스럽다면서 지금은 경북을 찾는 사람들에게 경북의
역사나 하회마을 등에 대해 설명하는 문화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형원 mhtong@hanmail.net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개)
이 름 비밀번호 이메일
이모티콘
제 목
내 용
인터뷰 주요기사
박갑로 영남 이순신연구소 소장판소리 女流唱者 김연옥
우영인 보성 우종미술관장소프라노 정수희
팬 플루트 연주자 조우상소프라노 윤한나
우암학원 조용기 학원장(學園長)강수경 광주여대 교수- 2천여명의 미용전문인력 …
이 순 한국미용박물관장-20대 후반부터 미용…김진숙 미용명장 1호 - 미용사로 출발해 대학교…
최신 포토뉴스

호남대학교 산업디자…

'30년간의 오월전…

김주희가 부르는 박…

'작은, 큰 숲의 …

수능생을 위한 힐링…

특집기사 전라도문화수수께끼
통발굴 전남의 마을 1박 2일
인물 해외통신원 리포트
 2019. 11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1일 2일 3일 4일 5일
6일 7일 8일 9일 10일
윤수자 3시집 ’ 상처는 아물 때…
돈에 대한 우리 마인드는 어…
제 11회 묵취회전
세계 최초 여성 오케스트라 지휘자…
'30년간의 오월전 아카이브-파랑…
창작활동 결과보고전 ‘복암리 소나…
김남삼 가곡 발표회
전통국악앙상블 ‘놀音판’의 ‘굿…
박종석 작품전 “비가(悲歌)! …
수능생을 위한 힐링음악회
웰빙 라이프
광주-서울 항공요금 4만 1천원으…
한국공항공사(사장 김석기)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에어부산과 함께 23일부…
광주-제주 저가항공 신규 운항 시…
호남권 최초 저비용항공사인 티웨이항공이 4일 오전 7시 TW901편을 시작으로 …
인사말 | 회사개요 | 회원약관 | 개인보호정책 | 청소년보호정책 | 공지사항 | 광고문의 | 기사제보 |

Copyright ⓒ . 제호 : 문화통. 관리자에게 mhtong@hanmail.net for more information

사단법인 광주문화발전소 발행인 겸 편집인 : 지형원 등록번호 : 광주아 00031 등록일자 : 2008년 12월 31일

주소 : [61475] 광주광역시 동구 중앙로 196번길 8 오송빌딩 301호 제보 및 각종문의 : 062-226-5511 FAX : 062-226-1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