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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5일(목요일)

<현동칼럼> 어떻게 해야 일이 즐거울까
2012. 03.20(화) 10:31확대축소
6주마다 한 번씩 머리를 깎는다. 십 수년째 같은 이발소에 간다. 동네목욕탕에 딸린 이발소는 이름도 없다. 남탕 탈의실 한 쪽을 칸막이하여 이발의자 두 개에 이발사 한 사람뿐이다.

이발사는 남탕 청소도 하고 탈의실 허드렛일도 맡아한다. 남탕 관리인인 셈. 십년이 넘게 다니는 동안 이발사가 두 번 바뀌었다. 두어 달 전 새로 온 이발사가 나에게는 세 번째 이발사이다. 다들 60대 후반을 넘긴 노년층이다.

지난번 이발사는 67세인데도, 머리를 까맣게 염색해서 처음 볼 땐 50대 인줄 알았다. 팽팽한 피부에 목소리도 쨍쨍했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줄줄 잘도 펼쳤다.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게 탈이었다. 술타령 하느라 자리를 비운 적이 여러 차례 있었던 모양이다. 주인과 틀어져 그만 두었다.

이번 이발사도 젊어(?)보였다. 막상 겉모습과는 달리 우리나이로 일흔 둘이었다. 지난해 2월에 고희연을 치렀단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노익장이다. 하프마라톤 대회에 나가 여러 번 상도 탔다. 상을 받고 있는 사진을 액자에 넣어 이발소 큰 거울위에 걸어놓았다.

TV 옆에 책을 세워놓았기에 무슨 책인가 했더니, 자신이 직접 쓴 자전적 수필집이라고 보여준다. 고희연때 출판기념회까지 겸했는데 기자들이 몰려와 큼직하게 신문 기사도 내주었다고 자랑한다.

자랑 끝에 하는 말은 뜻밖이었다. “돈이 없어, 칠십 넘도록 이 고생을 합니다.” 난 말은 못 했지만 그 분의 다복이 내심 부러웠다. ‘칠순에 마라톤을 할 만큼 건강하고, 수필집을 낼 정도로 글 잘 쓰고, 자녀들에게 손 안 벌려도 될 만큼 전문기능까지 있는 다복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그 이발사는 ‘돈 없어 고생’을 한단다.

만약 그가 돈이 생겨 이발사 일을 그만 둘 수 있다면 무얼 하려는 걸까. ‘매일 아침 6시부터 저녁6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새로 생겨난 자유 시간에 무얼 하고 싶은 걸까. 아무튼 이발사는 지금 하는 일이 그렇게 즐겁거나 행복한 것 같지는 않다.

성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돈 얘기는 없다.

자기 일을 즐기라? ‘생활의 달인’ TV프로에 나오는 ‘달인’들이 그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아닐까. 예술처럼 물호스를 돌리는 물세차 달인, 땅위에서 3,4층 높은 아파트 호수별로 척척 신문을 던져 넣는 신문배달달인 등등, 세상에는 달인들이 많다. 그들이 하는 일은 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다들 자기가 하는 일을 즐긴다. 밝은 얼굴, 긍지와 보람이 느껴진다.

물론 그 일은 돈을 벌기위해 하는 일이다. 돈을 버니까 즐거움이 따라왔을까, 아니면 일이 즐거우니까 돈이 따라왔을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쓸 데 없는 논쟁 같다. 달인이 되면 돈은 따라오겠지. 그러나 돈이 잘 벌린다고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니니 돈이 우선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달인이 돈을 넘치게 벌어 그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어찌될까. 달인일지라도 자기가 하는 일이 지겹다고 느껴 그만 즐거움을 잃게 될까.

잘 아는 퇴직 교수 한 분이 생각난다. 이름난 안과의사로, 말하자면 그 직종에서 달인이다. 젊었을 때 개업해 돈도 꽤 벌고 말년엔 대학교수를 지내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사람이다. 이 분이 정년을 하고 조그만 노안연구소를 열었다.

‘퇴직한 후에는 그냥 취미활동을 할 생각이었는데 평균수명들이 하도 높아지다 보니 최소한 10여년 더 무언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이렇게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실 요즘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향년이 대개 80대 후반이다. 90대도 적지 않다.

그는 요즘 날마다 새 직장에 다니는 일이 즐겁다. ‘매일 손님 두세 명’이 목표란다.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서 즐거운 것일까. 그럴 것 같다. 돈 벌어도 좋고 안 벌어도 좋고 그러니 쉽게 즐거울 수 있겠다.

역시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즐기려면 돈 문제는 뒤로 돌려야할 것 같다. 놀이터에 간 어린이는 세상걱정, 돈 걱정을 다 엄마에게 맡겨버렸다. 시간가는 줄 모른다. 어린이 마음을 가진다면 일이 놀이처럼 재미있어질 터이다..

그러나 돈이란 게, 일에서 돈 문제를 떼어낼 만큼 돈에 자신있는 사람은 드물다. ‘돈 좀 있다’는 기준은 어디인가. ‘굶지 않고 살만큼은 있다’는 생계형 기준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결국 일을 즐기려면, 달인이 되든지 돈 목표를 낮추든지 할 수밖에…. 일이 즐겁지 않게 된 이발사의 돈 목표는 어느 정도일까?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김종남<언론인>

지형원 mtong@mto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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