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진정 목말라 본 적 있는가
| 2010. 08.20(금) 17: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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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사람이 거의 다니질 않아 잡초가 무릎까지 올라 왔다. 그런대로 갈림길마다 표지판이 방향을 잡아주어 정상까지 틀리지 않고 올라갔다.
문제는 내려올 때 생겼다. 중간쯤 내려오자 마음을 놓았던지 길을 잃었다.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길이라 뻔해 크게 어긋날 수 도 없는 길이다. 웬만큼 헤치고 내려가면 길이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대밭 속으로 들어가 헤매다가, 또 덤불속으로 들어가 얼굴과 팔 다리를 긁히고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雲水스님이 내려가는 길을 묻자, 大梅선사가 ‘따라 흘러가라(隨流去)’고 답했다는 선문답이 생각난다. 사람의 몸은 물이 아니다. 자유자재한 물을 따라 흐를 수 없다. ‘물의 흐름을 따라가라’는 뜻이겠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땀이 많은 체질이라 겉옷까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들고 간 생수병 2개도 바닥났다. 다행히 30여분 헤매다 길을 찾아 나왔다. 출발한 자리로 돌아오니 4시간 반이나 지났다.
길가 가게에서 막걸리를 한 사발 가득 들이켰다. 갈라진 논에 물이 스며들듯 찜통더위 속 목마름이 단숨에 녹아든다. 바로 옆에 중국식당이 있다. 자장면을 시켰다. 탁자에 놓여있는 냉수를 통째로 들이켰다. 감로수맛이 이런 것일까. 고작 서너 시간 땀 흘렸다고 이렇게 물이 당기나. 만약 하루 종일 물을 먹지 못했다면 어찌될까. 그러고 보니 최근 이렇게 목말라 본 경험이 없었다. 등산할 때나 운동할 때나, 여행할 때나 언제든 가까이 마실 물이 넘치게 있었다. 목마를 틈이 없었다.
너무 흔하니 귀중함을 잊고 있었다. 물의 참맛을 느낄 기회도 없었다. 우리 몸은 70%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水則載舟 水則覆舟)’. 맹자는 물은 민심, 배는 위정자란 뜻으로 이 말을 했지만, 우리의 몸은 물위에 떠있는 배처럼 한시도 물에서 떨어질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만병통치약은 하루 2리터의 물’이라는 격언도 있다. 가장 가까운데 가장 흔하게 보약이 있는 셈이다. 물은 몸의 목마름, 몸의 병까지 해결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목마름도 물로 풀 수 있을까. 목마름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몹시 바라는 것’이다. 욕망이다.
마음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으면 화(火)가 난다. 친구 중 성형외과의사가 있다. 섬세한 데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그 친구는 화가 나면 샤워를 한다. 스트레스를 물로 푸는 것이다. 나도 배워서 때때로 시도를 해본다. ‘화(火)’는 ‘마음이 언짢아서 나는 성’이다. ‘불’과 한자로 똑같은 게 우연이 아니다. 화는 불처럼 마음을 태우고 몸도 태운다. ‘마음의 불도 물로 꺼야 한다’가 정답인 것 같다.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다(人性如水)’고 <경행록 景行錄>은 말한다. 몸이 있고 나서 마음도 있는 것이니 마음도 몸을 닮는 것이 당연하다. 몸이나 마음이나 다 물을 닮고 물과 같다면 물처럼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삶일 터인데--.
물처럼 살아가는 것? 낮은 데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라는 말 아닐까. 물은 웅덩이를 채우면서 낮은 데로 나아간다(水不盈科不行). 웅덩이가 크든 작든, 네모지든 세모나든, 채우고서야 다음으로 나간다. 물이 가는 곳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바다이다. 바다 못 미쳐 구름으로 변해 하늘로 가기도 한다.
산에서 길을 잃은 스님이름이 왜 하필 ‘구름 물(雲水)’이었을까. 그 이름대로 ‘구름처럼 물처럼 따라가라’고 선사가 답한 것이었을까. 길 잃어, 물의 참맛을 한 순간이라도 맛본 염천의 산행이었다.
김종남<언론인> jnkim45@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