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배젓

2011. 10.01(토) 21:16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비감(悲感)과 희감(喜感)이 교차한다. 비감은 이렇게 해서 또 한 해가 가버린다는 무상감(無常感)이다. 왜 이렇게 세월은 빨리 가는가. 그러나 인생에는 무상감만 있는 게 아니라 희감도 따라온다. 계절이 새로 올 때마다 새로운 음식을 꼬리에 달고 오기 때문이다. 음식은 창자로 들어가서 몸속의 온 세포를 자극한다. 세포를 자극하므로 그 효과와 기쁨이 확실하게 전달된다.

가을이 올 때마다 몰고 오는 음식은 ‘전어’(錢魚)이다. 돈 ‘전’(錢)자가 들어가는 생선은 전어뿐이다. 전어의 특징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어 요리의 코스는 크게 세 가지이다. 회로 먹는 방법과 석쇠에 구워서 먹는 방법 그리고 초장과 채소를 같이 넣고 회무침으로 먹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가운데 구워서 먹는 게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내가 초가을에 전어를 먹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는 곳이 보성군의 율포(栗浦)이다. 율포는 옛날부터 전어 산지로 유명하다. 전어도 전어이지만 율포에서 ‘득량만’을 바라다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보성군 건너편으로는 고흥반도의 산들이 활처럼 둘러싸고 있고, 그 사이에 약 30㎞ 길이의 득량만이 자리잡고 있다. 만(灣)은 바다와 호수의 장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 호수의 잔잔함과 바다의 스케일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밑바닥은 뻘과 모래로 되어 있어서 각종 고기들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푸르고 잔잔한 득량만을 코앞에 바라다보면서 전어 코스 요리를 먹다 보면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무상감은 사라지고 희감이 몰려온다.

전어는 젓갈도 유명하다. 전어의 창자로 만드는 젓이 ‘돈배젓’이다. 전어 1마리에서 나오는 창자는 어른 새끼 손톱만큼의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전어는 그 창자가 귀했다. 그래서 옛날부터 젓갈 중에서도 귀한 젓갈로 대접 받던 것이 ‘돈배젓’이다. 임금님에게 진상되던 젓갈이기도 하다. 약간 쌉싸름한 맛이 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늦여름에 보리밥과 함께 상추쌈에 싸먹는 최고의 반찬이 돈배젓이다. 이 가을에는 전어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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