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순 : 꽃과 여인의 이미지 속에 담긴 이상적인 미
| 2011. 09.30(금) 12:47 |   |
서양순의 그림에는 이상향을 거닐고 있는 자의 환희가 담겨 있다. 그 환희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꿈꾸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희는 열정적인 삶의 표정이자, 이상을 실현하는 데 대한 확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는 그처럼 삶과 예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그 자신의 삶과 예술에서 비롯되는 환희의 감정이 그림 속에 온전히 녹아들고 있다는 인상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에는 그런 감정을 감상자에게 감염시키는 힘이 있다.
그는 오랜 동안 꽃과 여인이라는 소재 및 대상을 탐닉해 왔다. 물론 더러는 여행지의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는 일도 없지 않으나, 그럴 경우에도 꽃이나 여인을 외면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가 꽃과 여인을 제재로 택한 것은 순수미에 대한 열정이자 헌신의 표현이었다.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하는 꽃과 여인은 가공하지 않은 본래의 모양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감정을 자극한다. 아름다운 존재를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의 발로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세계를 추구하는 그에게 꽃과 여인은 필연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꽃과 여인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감정을 선물하는 최적의 소재인 까닭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 그대로 옮겨오는데 그치지 않고, 그 자신의 미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조형세계를 실현하기 위한 독자적인 조형어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적인 이해 및 미적 감수성으로 실제보다 승화된 조형미를 탐색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보면 꽃이든 여인이든 일관된 형식미로 통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형식미는 어쩌면 실제와 다른, 아니 실제보다 미화된 형태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보다 미화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실천이자 증표이다.
꽃을 소재로 하는 그림의 경우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장미 모란 무궁화 해바라기 목련 양란 수선화 릴리 연꽃 따위의 소재에서 알 수 있듯이 꽃모양이나 꽃잎이 큰 꽃들 일색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재의 선택에서 의도적으로 크기가 큰 꽃에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꽃이 크면 아기자기한 맛은 없으나 반면에 시각적인 넉넉함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큰 꽃은 형태해석, 즉 조형적인 변주 또는 독자적인 형식미를 실현하는데 보다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떤 목적에 의해 큰 꽃을 선호하든지 간에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그의 미적 감수성에 의해 재해석된 형태미, 즉 그림으로 변환한 그 자신의 이미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그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흡족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은 그림 속에 보이는 대상 및 소재들이 당당하게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 당당함은 물론 현실과 다른 이상적인 형태미를 부여받았다는 데 대한 스스로의 만족감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그림 속의 형태미는 대상 및 소재 스스로의 꿈과 일치하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의 그림은 선이 굵다는 인상이다. 선이 굵다는 것은 형태가 크다는 데서 오는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스스로의 미적 감각이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기에 소재 및 대상이 무엇이든지 시원스럽고 호쾌한 인상이다. 실제로 구도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그대로 반영된다. 꽃을 소재로 하든 또는 여인을 대상으로 하든 시각적인 압박감을 줄 정도이다. 이는 소재 및 대상이 화면 공간에 놓이는 공간장악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꽃이나 인물은 화면공간을 압박할 만큼 가득 채우는 구도가 다수를 차지한다.
그런가 하면 여인의 대상으로 하는 인물화의 경우 거의 어김없이 꽃이 부제로 등장한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과 여인을 동시에 배치함으로써 아름다운 시각적인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증폭시킨다. 아름다운 소재 및 대상이 만나는 화면은 눈을 시원하게 만들고 감정을 고조시킨다. 꽃과 여인의 이미지는 현실에서 옮겨오는 듯싶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의 미적 감각에 의해 실제보다 미화된다. 다시 말해 그 자신이 설정해 놓은 이상적인 조형미에 합당하게 변환하는 것이다. 꽃의 형태도 그러하거니와 여인의 얼굴도 그러하다. 달리 말하면 보다 더 아름답게 각색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림 속의 형태미는 사실성을 초월하는 이상적인 미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아무리 아름다운 존재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이성적인 눈으로 비쳐보면 어딘가 미흡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미흡한 부분을 찾아내고 그를 보완하여 이상적인 미로 완성시키는 것이 다름 아닌 화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말하는 이상적인 미는 화가 자신의 주관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화가의 미의식 및 미적 감각에 의해 선별되는 미는 보편적인 가치로서의 미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여인의 얼굴은 모두가 미인들이다. 그런데 그림 속의 여인들은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어딘가 공통점이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 공통점, 즉 어느 부분인가 닮았다는 점이야말로 그 자신의 이상적인 미에 일치시키려는 의지의 결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실제로 최근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다. 그 자신의 미적 감각에 의해 조성된 이상적인 미인상에 일치시킨 순수 조형의 결과물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비너스상이나 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내는 사이버미인과 같은 의미인지 모른다. 그는 여인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에서 더 이상 현실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현실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이상이다. 그러므로 그는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세계,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것이다. 현실의 미는 자연미의 소관이고, 이상적인 미는 조형미의 영역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그림은 세상에 대한 화가 자신의 주관적인 이해방식일 수밖에 없으며, 조형미 또한 개인적인 미적 감각의 산물일 뿐이다.
그는 꽃과 여인이라는 소재 및 대상을 통해 그 자신만의 이상적인 미를 구현하고 있다. 비너스상이 구현하고 있는 영원한 아름다움처럼 그 또한 꽃과 여인의 이미지를 통해 이상적인 미의 세계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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