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누구를 위한 ‘쓸모’인가
| 2011. 01.31(월) 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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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문장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듣는 글이다. 그런 글을 쓰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밥을 먹는데 갑자기 불이 꺼져 깜깜하더라도 밥 먹는 숟가락을 코에 넣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부터 그리 된 것은 아니다. 수천 번 되풀이해서 익힌 결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연습 없이 하루아침에 뚝딱 글 잘 쓰는 사람은 없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왜 나왔겠는가,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1만 시간 정도 연습해야 달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1만 시간이라면 하루 세 시간씩 10여년이 걸리는 세월이다.
좋은 방법은 일기든 잡기든 메모든 매일 글을 많이 쓰는 것이다. 한 학기가 끝나면 마지막 시간에도 잊지 않고 되묻는다. 첫 시간에 했던 물음이다. “일기 쓰는 사람?” 기껏해야 두세 명. 첫 시간과 달라진 게 없다. 늘어 봤자 한 두 명 정도다.
일기는 남이 읽어주는 글이 아니다. 일기쓰기는 재미가 없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는 일도 힘들다. 꼭 그렇게 고생하여 글을 잘 쓸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글은 웬만큼 쓰면 세상 사는데 불편하지 않다.
글쟁이가 되려면 다르다. 글쟁이는 글을 잘 써야한다. 피아니스트도 마찬가지이다. 피아노를 잘 쳐야 한다. 야구선수도 그렇다. 공을 잘 때리고 잘 받아야 밥벌이를 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잘해야 세상에서 남에게 쓰일 일이 생긴다. 쓸모가 있다.
‘쓸모’란 나 혼자가 아닌 남,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줄 때,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할 때 생겨나는 ‘쓸 만한 가치’이다. 그러나 ‘잘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다는 필요조건일 뿐이다. ‘쓸모’의 충분조건까지는 못 간다.
노자 도덕경 11장은 ‘비어있어야 쓸모가 있다’고 말한다.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되 거기가 비어있어서 그릇이 쓸모가 있다. ------ 그러므로 있음이 이로움의 바탕이 되고 없음은 쓸모의 바탕이 된다(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그릇은 속이 원래 비어있다. 그릇의 쓰임은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움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비어있어야 한다고 비움만을 강조할까.
노자이야기를 사람이야기로 바꿔보자. ‘찰흙’이라는 사람이 천도가 넘는 고열을 견디는 수련을 통해 달인 즉 ‘그릇’으로 변했다. ‘무엇인가를 잘하는 사람’인 ‘그릇’의 마음속도 태어날 땐 비어있었다. 남의 이로움을 채울 바탕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자기만을 이롭게 할 이기심 같은 것들로 차오르는 일이 많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 경우를 경계하려고 비움을 강조한 것 아닐까.
얼마 전 6~7년 된 컴퓨터의 속도가 너무 느려져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부팅하는데만 5~6분씩이나 걸렸다. 이동통신사에 고장 수리 신고를 했다. 컴퓨터를 살피던 사람은 “오래 사용하면서 잡동사니 프로그램들이 늘어나 용량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렇다”라고 말한다.
마치 혈관에 혈전이 끼어 핏줄이 좁아지거나 낡은 수도관에 녹이 늘어 붙어 물이 찔끔찔끔 흐르듯, 컴퓨터도 바이러스들이 용량을 잡아먹어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그릇이라면 ‘비어있음’은 실제 쓸 수 있는 용량이다. 그 비움을 잡동사니들이 메워버린 것이다. 용량만 차지하고 있는 바이러스프로그램을 지웠더니 조금 나아졌다.
나는 일기를 쓴다. 날마다 한 장씩, 비어있는 하얀 공간을 글자로 채운다. 그러나 일기는 남을 위한 글이 아니다. 일기쓰기는 ‘남을 위한 쓸모’가 못된다.
일찍이 한 사람을 사랑해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만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한다. 그 ‘한 사람’은 이타심의 시작이다. 나 아닌 남이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 한 사람은 나일 수 있다. 남을 사랑하는 이타심의 뿌리는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심일 테니까. 나를 사랑해야 나아닌 다른 한 사람도, 만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근본으로 돌아가 본다. 나를 사랑하는 글을 써본다. 일기를 쓰는 지금이 즐겁다.
김종남<언론인> jnkim45@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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