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행복이란 무엇인가

2010. 11.27(토) 00:09

목요일은 강의를 하는 날이다. 광주대에서 언론사상사를 가르친다. 강의의 끝부분은 학생들의 발표시간이다. 그날 가르친 내용 중에서 생각거리를 하나 골라, 그에 대한 학생의 생각을 말하도록 하는 자리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지난주에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주었다. 15분 동안 자기생각을 가다듬어 한사람씩 강단에 나와 얘기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가난하면 불행하지 않느냐? 행복하려면 물질도 중요하다” “물질보다 만족을 느끼는 마음이 행복 아닐까”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졌다.

몇 명은 체험담을 했다. 일반론보다 귀에 더 잘 들어온다. “일 년 전 심한 중이염을 앓았다. 머리를 감을 수 도 없었다. 불치병일까, 두려웠다. 다행히 두어 달 후 병이 나았다. ‘낙엽을 보는 것도, 걸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었다’” 다른 학생은 어렸을 때 독감을 앓았던 일을 되살렸다. “‘이 병만 나으면 최고로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었다. 병이 나으니 정말 날아갈듯 행복했다”

행복이야기가 병 앓은 이야기가 되었다. 건강한 사람은 마치 우리가 끊임없이 공기를 마시면서도 공기의 존재를 못 느끼고 있는 것처럼 건강이 행복이라는 걸 잊고 산다. 역설적으로 병을 심하게 앓아 본 사람일수록 일상에서 더 오래 깊은 행복감을 느낀다.

역시, 부(富)나 권력보다 가장 가까운 몸과 건강이 첫 번째 행복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니 나도 지난해 5월, 아픈 적이 있다. 넘어져 오른쪽 눈 각막을 살짝 스쳤다. 안과에 갔더니 ‘하루 이틀이면 나을 수 있다’며 반창고로 눈을 봉하고 주사를 놓았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주사 맞고 약을 먹어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사흘 만에 안대를 떼었다. 오른쪽 눈에 안개가 낀 듯 물체가 약간 흐릿했다. 먼 곳 간판 글씨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겁이 덜컥 났다. 이러다가 한쪽 눈이 영 흐릿해지지 않을까.

평소 하지 않던 기도도 했다. ‘제발, 예전처럼 보이게 해 주세요’ 딱히 누구에게 드리는 기도는 아니다. 신기하게 다음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에서 안개가 사라졌다. 남에게 말하기도 쑥스러운 작은 일이지만 그동안 큰 눈병한번 앓지 않았던 나로선 큰 충격이었다. 그 후 눈이 잘 보이는 것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행복은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입으로 맛볼 수도 없다. 추상적 개념이다. 그래서 확실하게 느끼려면 불행이라는 반대개념이 필요하다. 환하고 밝은 낮은 캄캄하고 어두운 밤이 있어야 밝음을 느낄 수 있고 춥고 매서운 겨울을 지내보아야 따뜻하고 온화한 봄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불행을 느껴보지 않으면 행복을 모른다? 결국 행복하려면 항시 불행을 그림자처럼 옆에 끼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단맛을 보기위해 일부러 모험과 고행의 쓴맛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나 불행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러 병에 걸릴 수는 없다. 병을 앓은 후에 느꼈던 행복감도 몇 달 몇 년 지나면 다 잊어버린다. 그 기억을 하루 24시간 되살리며 살 수도 없다.

남의 행복을 부러워하고 기뻐해주면서 우리는 ‘대리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잘못,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가’ 오히려 상대적으로 비참하게 여기는 경우도 생긴다. 또 부와 권력 등 행복기준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부탄이나 티벳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행복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다 확실하게 행복을 잡기 위해 정반대로 해보면 어떨까. ‘대리불행’을 느껴보는 것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다음 단계이다. 남이 병 걸린 것을 내가 걸린 것처럼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공감단계에 그치지 않고 그가 내대신 병을 앓아준다고 생각한다. ‘대리불행’이다.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말이 있다. 악마사전에나 나올법한 말이다. 그렇지만 반어법으로 반면교사가 될 만하다. 대리불행을 느끼면서 나는 오늘, 이 순간을 행복감으로 채운다.

김종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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