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제대로 맞는 옷 입고 있나

2010. 11.06(토) 20:29

며칠 전 예식장에 갔다. 친구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넥타이도 매고 오랜만에 정장을 했다. 신랑신부는 서른이 훌쩍 넘은 동갑내기 의사였다. 그래서인지 하객들이 많아 식장이 유난히 붐볐다.

식장 안에 뷔페를 마련, 예식 후에 식사를 하게 돼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빨리빨리 문화는 여전하다. 식이 끝나기도 전에, 음식대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는 바쁠 일도 없어 뒤쳐져 나갔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 윗도리에 하얀 크림이 묻었다.

휴지로 닦아냈지만 기름기가 지지 않아 얼룩이 남았다. 손수건에 맥주를 묻혀 여러 번 문질렀다. 자세히 보아야 보일 정도이다. 또 남들이 눈여겨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치 피부에 무엇이 묻은 것처럼 신경이 쓰인다.

‘옷은 피부의 연장’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20여 년 전 일이다. 미국에서 십 수 년 공부하던 선배 한 분이 전남대 교수가 되어 귀국했다. 색깔 바랜 청바지에 운동화차림으로 교문을 들어서는데 경비아저씨가 “학생”하고 불러 세우더란다. 머리는 더펄더펄하고 배낭까지 짊어졌으니 ‘불량학생’ 쯤으로 보지 않았나 싶다.

남의 옷차림에 관대한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들 복장까지 간섭할 정도로 옷에 까다롭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유교전통사회를 천여 년 겪어온 탓일 것이다. 옛날에는 옷이 신분이나 예절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으니까.

조선조 효종이 돌아가셨을 때 ‘조대비가 상복을 1년 입어야한다’ ‘아니다, 2년 입어야한다’며 남인과 서인들이 싸웠다. 상대편을 몰아내고 줄줄이 귀양 보냈다. 10여년 후 효종비가 세상을 떠난 때에도 또 ‘옷을 얼마동안 입느냐’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마치 달걀을 먹을 때 ‘위부터 깨야한다’ ‘아니다, 아래부터 깨야한다’며 전쟁까지 벌였던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소인들 전쟁’이야 지어낸 소설 속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복상문제服喪問題’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건을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배우면서 ‘옷 입는 일’이 당쟁의 빌미가 되고 권력 상층부가 바뀌는 실마리가 되었다는 데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었다. 역사가들은 ‘허례허식을 너무 숭상했다’고 일제히 나쁜 평가를 내린다. 좋은 점은 하나도 없었을까.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삶의 세 가지 요소’를 쓸 때 ‘의식주衣食住’ 라고 옷衣부터 쓴다. 서양에서는 '먹는 것(feeding)’을 옷 앞에 세운다.
사회학자 한 분께 물었다. ‘의식주에서 왜 옷이 제일 먼저인가?’ “밥은 없더라도 며칠 견딜 수 있지만, 옷은 없으면 당장 견딜 수 없으니까” 농담식 답변이지만 일리가 있다. 사회생활에서 옷이 없으면 집 밖에 나갈 수도 없다.

‘옷 사건’이후 삼백 오십년이 지난 오늘, 이런 해석도 해본다. ‘옷 입는 문제가 큰 정치이슈가 될 만큼 우리선조들이 옷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너무 억지인가.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들의 옷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여전히 높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기온변화가 심하니 다른 나라보다 옷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체면을 중시한다. 옷은 날개다.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옷에 대한 선별력 감각은 기막히게 잘 발달되어있다. 감식력이 둔한 사람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의류 패션산업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밑바탕이 될 만하다.

나의 옷은 몇 벌인가. ‘왜 이렇게 옷이 많나’ 자주 짜증이 난다. 정말 이렇게 많은 옷들이 필요할까. 그러나 모임이 있을 때는 무슨 옷을 입어야하나 고심한다. 어느 경우엔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추운 날에 너무 얇게 입지 않았나, 더운 날에 너무 두꺼운 옷 입지 않았나, 내 나이와 처신에 맞는 옷인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지 않았나, 어느 모임에 가든지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옷이 제대로가 아니면 피부에 얼룩이 묻은 것처럼 불편하다. ‘제대로’의 기준은 무엇인가. 옷으로부터 좀 더 편해질 수 없는가, 평생 안고 가야할 과제이다.

김종남<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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