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동칼럼> 무얼 내려놓아야 하나

2010. 08.31(화) 08:23

천주교 성지인 ‘미리내’ 부근에 ‘有無相通’이라는 실버타운이 있다. 산 중턱에 성처럼 우뚝 솟은 건물이다. 친지가 머물고 계셔 몇 차례 들렀었다. 고개를 넘어 멀리 보일 때마다 어떤 찔림 같은걸 받는다. 옥상 꼭대기에 “놓아라”라고 큼직하게 써 붙인 글자가 주는 충격이다.
‘짐을 내려놓아라?’.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니 당연히 ‘근심과 괴로움을 다 내려놓아라!’는 종교적의미일 것이다. 내게는 ‘有無相通(유와 무는 서로 통한다)’과 함께 ‘놓아라’도 화두처럼 다가온다.

건망증이 있어 난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KTX 를 타고 서울 갈 때다. 머리 위 선반에 가방을 얹어놓고 그냥 내려버렸다. 한 번 더 그런 일을 겪은 후에는 짐을 손에서 뗄 때는 잊지 않으려고 두 번 세 번 눈으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실제 물건은 내려놓았지만 마음의 짐은 풀지 못한다.

자동차도 그렇다. 차를 갖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영화구경을 갔다. 주차장이 없어 도로변에 세워놓았다. 영화 보는 두 시간 내내 걱정되었다. ‘불법주차라고 딱지를 떼지 않았을까. 가다가 누가 긁지나 않았을까?’ 지금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한다.
마음에서 짐을 내려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물건을 버리면 된다. 마음에 짐을 얹어주는 원인은 물건이니까. 자동차가 없으면 불법주차니, 긁히니, 마음 걱정도 없을 것이고 가방이 없으면 선반에 얹을 일도, 마음 쓸 일도 없다. 간단하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의 짐은 버리고 싶어도 그 원인이 되는 물건은 버리기 싫다. 그게 얼마나 필요한 물건인데···. 그걸 버리면 얼마나 불편한데···. 그걸 갖고 있으면 얼마나 즐거운데···.

우리는 ‘물건을 많이 가질수록 행복하다’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모두들 더 많은 물건을 갖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싸운다. 그런데 이상하게 물건이 많아져도 물건에 대한 욕심은 줄지 않는다. ‘더 많은 물건을 가진 사람’을 쳐다보며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린다. 모두들 더 큰 물건, 더 좋은 물건, 더 새로운 물건을 찾아 계속 뜀박질이다. 끝이 없다.

물건이 적어 죽는 사람보다 마음이 괴로워 죽는 사람이 더 많아진 세상이다. 마음의 짐이 무거워 스트레스로 병을 앓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간다. 물질 지상주의의 병폐이다. 행복하기위해서는 물건만 많이 가지는 것이 최선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물질만능 사회를 대신할 ‘미래의 대안사회’로 ‘무소유 사회(야마기시즘 실현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모든 물건을 공유하는 ‘무소유 공동체’를 만들어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수 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무소유사회가 정말 물건에 대한 소유욕과 마음의 짐을 한꺼번에 내려놓을 해결책이 될 것인가? ‘무소유’라면 불가가 지향하는 삶 아닌가법정스님의 <무소유> 한 구절이 기억난다. “비 온 날 난蘭 화분을 밖에 내놓고 외출했다. 해가 쨍 떠오르자 늦게야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달려온다. 축 처진 난 잎을 보며 마음이 상한다. ...3년간이나 애기 다루듯, 정성들여 키우던 난을 남에게 주어버린다. 해방감을 느낀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벗어던진 후련함이다. 법정 스님은 하루 한 가지씩 버리는 ‘무소유 삶’을 말씀하신다. 매일 하나씩 버리라! 무얼 버려야하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쓴 한비야는 큰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힘든 일은 짐을 줄이는 일이라고 말한다. 몇 주일 전부터 짐을 싸놓고 고민고민하면서 하나씩 둘씩 빼낸다. 필요 없는 것이 있을 리 없다. 살을 깎는 결심으로 덜 필요한 것을 들어내는 것이다. 짐을 줄여 가볍게 하는 것이 여행을 즐겁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인생 여정에는 길고도 험한 고갯길이 수없이 많다. 분수에 넘치게 무거운 짐 보따리를 멘 사람은 허덕거리다 쓰러진다.
무엇을 들어 내야하나! 나에게 덜 필요한 물건은 무엇인가. 마음의 괴로움을 덜기위해, 아니 인생을 즐기기 위해 무슨 물건을 내려놓을까!

김종남<언론인> jnkim45@korea.com


mtong@mtong.kr